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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십편 Aug 15. 2022

돈 없는 부부의 시작

< 집 값 포함 결혼 자금 4천만원 > 83년생의 집









우리 부부는 왜 이다지도 돈이 없는가? 왜 아직도 집 한채와 씨름하고 있는가? 시작부터 살펴봐야겠다.



부부의 시작이란 것이 아내 김OO의 시작, 남편 이OO의 시작이 아니라 이 둘이 결혼해 부부가 된 날부터라면

우리의 부부의 시작은 2011년 9월의 어느 날이다. 그때 우리는 스물아홉, 서른 하나였다.



처음 만난 2010년엔 스물여덟, 서른. 남편은 군대 다녀와 막 취직한 신입사원이었고 나는 변변찮은 회사에서 제대로 된 회사로 이제 이직한 신입사원으로 둘 다 모은 돈이 없었다. 앞으로 받을 월급으로 어떤 적금을 들어 볼까에 대한 막연한 기대는 있지만 실제 갖고 있는 적금은 없고, 주위에서 필수라고 성화인 청약 통장 하나 겨우 가입한 신입사원. 통장 잔고는 항상 0원이지만 그래도 월급날엔 회사에 대한 감사가 벅차오르고, 추석 상여금에 감동받아 부모님 속 썩이는 TV 하나 어깨에 힘주고 바꿔드렸던 신입사원. (그 후로 변변한 선물도 제대로 못 해 드리니 그때가 마지막 가전 선물이었던 거다.)



그런 상태에서 결혼을 하려니 부모님의 도움이 없는 이상, 우리 재산의 합둘의 학자금 대출을 합해 -2500만 원이 전부였다. 그땐 학자금 대출은 재산에 포함해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2500만 원이 아니라 그냥 아무것도 없이 0원에서 시작하는거라고 생각했었다.







제일 처음 결혼 이야기를 꺼냈을때는 결혼을 하고 싶다던 남편이 재차,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자 풀이 죽은 목소리로 나는 가진 것도 없고 집안 형편도 어려우니 돈을 모아 나중에 결혼하자,며 기다려달라 말했고 나는 그게 서운했다. 그 서운함은, 뭐랄까 결혼을 하고 안하고에 대한 문제가 아니었다.



20대에 다른 몇몇 남자들과 연애를 할 때에 '내가 이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는가'가 아니라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 사실인가, 거짓인가!'에 파고들었는데 그 취조 본능 같은 것이 발동했던 것이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처럼 스물 셋도 아니고 서른인 남자가 나를 정말 사랑한다면 결혼을 하고 싶은게 당연한거 아닌가? 하는 생각.

(그랬다. 다른 사람의 사정을 이해하려고 하지 못하는 철부지였다.)



"사랑하면 같이 살고 싶고 결혼하고 싶은거 아니야?"라는 채근에 본인은 결혼이란 걸 할 형편이 안되기 때문에 결혼할 생각이 없었지만 결혼을 하게 된다면 꼭  너랑하고 싶다고 했다.



첫인상부터 참으로 부잣집 도련님처럼 귀티가 나고, 행동에 있어서도 부족함 없이 자란 듯 티 없이 맑은 이 남자는 대체 왜 이렇게 형편이 어렵다고 하는 걸까? 하는 의문과 정말로 그의 부모님께 감춰 두신 통장이 없으신 걸까? 하는 의문을 덮어둔 채 나는 말했다.



"오빠. 원래 결혼은 방 한 칸부터 늘려 가는 거야."

그랬다. 어리고 무모했다.


"오빠. 내가 크게 성공할 거니까 걱정 마. 지금 돈 없는 건 아무 문제도 아니야."

-나를 몰랐다. 메타인지 결여.


"우리가 남들보다 없으니까 먼저 시작해서 자리를 잡아야지."

-아무래도 우리 외할머니가 자주했던 말이 머리 박혀있었던 것 같다.

(내게 무모한 용기를 심어주신 우이동 외할머니네 집도 언젠가 에피소드에 써보려고 한다.)



무모한 데다가 추진력도 좋았던 나는 쐐기까지 박았다.



"나는 이제 스물아홉이야. 오빠가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하면 그만 헤어지고 다른 사람이랑 결혼할 거야. 저~기 현대 다니는 누구도 있고.. 무슨 피디도 있고 지금 내 연락 기다리는 사람이 최소 세 명은 있어."

-뻥이었다. (모두 약간의 썸이 있긴 있었다. 그 중 한 분은 기다린다고도 하긴 했다)



남편은 내 말에 넘어왔다. 너만 괜찮으면, 자기도 그렇게 하고 싶다고. (이 순간 갑자기 남편에게 묻고 싶다. 오빠, 후회해?!)




막상 결혼 얘기가 나오면 양가 부모님들이 감춰 뒀던 통장 하나 쓱 내밀어주시진 않을까 했던 나의 희망과 바램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돈 없어."를 입에 달고 살았던 친정 부모님이 결혼에 보태라고 4천만 원을 내주셨고 (넌 네가 모은 돈 한 푼 없이 부끄럽지도 않냐?라고 핀잔을 주시긴 했지만) 시부모님께선 정말 보태줄 형편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해서 '시작'이라 함은 모름지기 '0' 이란 숫자와 어울리지만 우리는 친정에서 받은 4천만 원에 학자금 대출이 -2500만 원으로 도합 1500만 원의 자금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돈으로 결혼 준비와 집을 구해야 했기 때문에 학자금은 다달이 나가는 그대로 두기로 하고 일단 4천만 원으로 출발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 중 천만 원은 예식, 신혼여행, 간단한 살림살이를 해결하는 데 사용했고 3천만 원으로 첫 집을 구하게 되었다.




첫 집은 전혀 연고가 없고 남편 본가에서도 내가 살던 친정에서도 동떨어진 '안양'으로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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