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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십편 Jan 13. 2023

반갑지 않은 며느리

< 시부모님과의 첫 만남 > 83년생의 집



결혼을 결심했으니 이제 양가 부모님을 뵈어야 했는데, 이상하게도 시댁은 본가가 아니라 시할머니 댁에서 만남을 갖자고 하셨다. "얼마 전에 이사해서 집이 뒤죽박죽 인가 봐."


약속 당일에 깔끔해 보이는 네이비색 민소매 원피스에 가디건을 입고, 손에 건강식품 쇼핑백을 들고 남편을 만나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자 남편이 어머니께 거의 다 왔다는 전화를 드렸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초인종을 누를 때 옆에서 침이 꼴깍 넘어갔다. 미지의 분들이 문 하나를 두고 계시는구나.  


딩동 소리에 문을 열며 얼굴을 보여주신 것은 시할머니셨다. 나를 보고 눈 마주치며 환하게 웃으셨다.


"네가 꽃님이로구나! 어서 들어와."

"네, 안녕하세요 할머니~~"


포근하게 맞아주시는 할머니 덕분에 긴장이 조금 풀렸다. 안쪽에 있던 아가씨와도 인사를 나누고 잠깐 멈춰 서서 있는데 시어머니,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삐삐 삐비 빅 도어록 소리가 들려왔고 문이 활짝 열리더니 시어머니께서 들어오셨다.



'어머니 시구나! 아버지는 안 오신 건가.'



나는 눈을 빛내며 어머니와 인사하기 위해 어머니를 바라보는데(제가 꽃님이요, 저랑 눈 좀 마주쳐주세요) 어머니께서는 신발을 벗으면서도 시선이 남편에게 고정이셨고 신발을 벗자마자 남편에게로 직진하셨다.


"아들~~~ 정문 쪽으로 온 거 아니었어? 내가 나갔는데.. 길이 엇갈렸나 봐."

"아, 엄마~ 이쪽으로 어쩌구, 저쪽으로 저쩌구~~"



들어오시자마자 나를 쳐다도 안 보시고 남편이랑 대화를 하셔서 나는 인사하려다가 주춤해진 상태로 대화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어른의 대화를 끊을 수는 없으니까. 대화가 멈추고 나서야 "안녕하세요 어머니" 했는데 내 느낌인가,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으시는 것 같았다.



저녁시간이라 교자상에 바로 밥상을 차려주셨다. 여느 할머니 댁이 그렇듯이 경쾌한 소리가 흘러나오는 TV가 켜져 있었다.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으면서 슬프게도 대화가 그다지 없었다. 며느리 될 손 아래 사람인 내가 명랑하게 대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런 재주도 약간 있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일단 시아버지는 불참이셨고, 어머니와 아가씨는 표정이 어두웠다. 어머니께서 신발을 벗으며 제일 처음 바라본 사람이 얼굴이 궁금한 예비 며느리가 아니라 아들이었고, 그 후로도 나에게 말을 많이 안 걸어주셔서...... 눈치 없는 척하고 해맑게 굴고 싶어도 분위기에 눌려버렸다.



'밥이 모래알 같다는 그 말... 이 말이구나.' 하며 꿋꿋이 숟가락질을 하고 있는데 TV에 어떤 꼬마 여자아이가 나와서 춤을 추는 장면이 보였다. 이때가 명절 직후라서 명절에 했던 남녀노소 경연대회를 재방송해주는 모양이었다. 출연자 중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좀 통통해서 코믹한 춤을 출 때마다 뱃살이 출렁거렸는데 그 모습을 본 아가씨가 "아 뭐야~~ " 뒷말은 잘 생각이 안 난다. 약간 다 같이 웃자는 식으로 놀리는 말을 했다. 그러자 갑자기 어머니께서 "아니, 왜! 삐쩍 말라비틀어진 것보단 훨씬 낫지. 이쁘기만 하구만."

  



그 순간 간신히 목구멍을 넘어가고 있던 모래알들이 식도 한 곳에 콱 막히는 기분이 들면서 밥이 잘 삼켜지지가 않는 것 같았다.



어릴 때부터 내 별명은 '미스 소말리아'였고 커서도 내 몸무게는 마치 체온이 일정하게 유지되듯이 항상성을 갖고 유지되었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그대로, 단백질을 먹으며 운동을 해도 나는 마른 몸이었다. 요즘도 그렇지만 10년 전에도 글래머러스하게 아름다운 몸매가 로망이었던 나는 밥상에서 그나마 몇 마디 없으셨던 어머니의 귀한 말 한마디에서 내가 어머니 취향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걸 내 앞에서 말씀하실 것까지야.



순간 눈물이 핑 돌았고. 내가 눈물이 핑 돈 난감한 표정이어도 아무도 모를 만큼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집을 나섰다. 할머니께서 택시비를 주셔서 택시를 탔는데 그 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남편에게 오빠 부모님께 환영받는다는 기분을 전혀 못 느끼겠다고 서럽고 무섭다고 엉엉 울었다...



이 일에 대해 당시 남편이 조심스럽게 여쭤봤을 때 돌아온 대답은, 그냥 어린아이니까 통통한 것도 예쁘다고 한 건데 꽃님이가 좀 예민한 거 아니냐였다. 예민한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니가 예민 한거야.'인데 이 말을 들으면 입을 다물게 되기 때문이다. 마치 여자한테 '니가 여자인 거야.'하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는 것처럼 내가 예민한 건 사실이기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이 일로 감을 잡았다. 시댁은 이 결혼을 별로 반기지 않으시는구나. 그 와중에 나의 자금 3천만 원으로 월셋집을 구하려고 하는데, 서울에서 집값이 저렴하면서도 교통이 나쁘지 않은 친정 근처에 집을 구하기로 했다.


하지만 며칠 후, 남편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랑 동생이 집을 구하려면 우리 본가랑 꽃님이 친정이랑 중간지점에 구하라고 하셨어.."


그때는 지금보다 감정이 예민하고 혈기왕성했으니 순간 반발심이 들었다. 보태주시는 것도 없으면서, 반겨주지도 않았으면서 집을 우리 친정 가까이 구하는 걸 반대하시다니. 너무하시네. 흥.



당시 나는 가전회사 교육팀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내근보다는 외근이 많아 로고가 붙어 있는 회사 차가 지급되어 있었다. 이 차로 수도권의 마트, 전자 양판점들을 다니며 직원들에게 제품 교육을 하는 일을 했는데 그 덕에 이 지역들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서울 서쪽에 있는 남편 본가와 북쪽에 있는 친정 사이에 집을 구하려고 지도를 보니 보증금 3천만 원으로 집을 구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일할 때 다녔던 경기도의 도시들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안양을 생각하게 되었다. 남편 회사에서도 가까웠다.



안양은 신생 신도시는 아니지만 오래된 아파트들도 반듯하고 정갈했다. 도로도 넓고 마트나 백화점, 시장 같은 편의시설도 잘 되어 있었던 게 기억이났다. 주거지로 인프라가 잘되어있다는 생각에 본가와 친정에서 동떨어진 안양을 택하게 되었다.



바쁜 남편 대신 회사차를 끌고, 안양에 업무를 잡은 다음 일이 끝나고 집을 구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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