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엄마는 어떻게 하는 거지?
오은영 선생님이 책 쓴 육아 책에도 다른 유명한 육아 멘토들의 저서들에도 좋은 육아법은 차고 넘칠 정도로 공개가 되어있다. 육아책 좀 읽어본 엄마 나와서 주름 좀 잡아 보라면 잡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임신 중일 때부터 아이가 5살이 되는 날까지 육아책을 읽어가며 아이에게 좋다는 것은 다 해주려 노력했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되도록 내게 육아는 혼란스러웠고 어려웠다. 처음에는 나와 성별이 달라서 그런 것일 수 있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분명 내 뱃속으로 낳은 아들이 틀림없는데 어쩜 그리 나와 다르고 안 맞는지 내게 육아는 당황의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놓친 것이 있나 육아책들을 다시 읽어보기도 했다. 학교 다닐 때만큼이나 노트 필기에 별표를 해가면서 노력을 해도 육아는 내게 넘어야 할 큰 산이었다.
공부도 잘하고 여러 나라에서 어렸을 때 자라서 개방된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산산이 무너져 버렸다. 뭐든 내가 마음먹은 분야나 일은 나의 노력으로 이뤄내고 싶은 만큼 이뤄냈다는 생각이 오만이었다는 듯이 육아는 매번 내게 시련을 안겨 주었다.
어렸을 적 환경을 빼곤 내가 성인이 되어가면서 노력해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없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실패를 하더라도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놈의 육아는 게임의 제일 끝판왕 처럼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어렵다.
나의 첫 출산과 동시에 육아는 좌충우돌 새로운 세계로 나동그라진 것 같았다. 나의 이름 석자를 불러 주는 이는 점점 줄었고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누구의 딸로 자내야 했다. 나의 삶과 정체성 모두가 흔들리는 느낌으로 육아전쟁을 치렀다.
그걸 아는 지인들이나 가족들은 뭐가 문제인지 묻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 탓을 했던 것 같다. 남자 아이라 부산스럽다. 남자아이가 눈치가 없다. 남자아이라 늦게 큰다 등등의 이유로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세 살 버릇이 백세가 되기 전에 아이에게 엄마로서 해야 할 교육을 한다는 명목으로 아이에게 1절 2절도 모자라 좋은 교훈이 있는 동화책 읽어주기, 속담 알려 등을 하면서 보냈다. 어느 날 그 모습을 본 지인이 내게 말했다. " 어머, 호야네는 엄마가 다재다능해서 선생님을 모실 필요가 없네요. 엄마가 미술도 공부도 예절도 다 가르쳐 주니까..."
같은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끼리 함께 있을 때는 별생각 없이 흘려 들었는데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나는 머리를 한대 망치로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아이에게 엄마다운 엄마역할을 한 적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분명 밥도 해주고, 씻겨도 주고 모르는 것을 가르쳐 주고 필요한 것들도 제 때 사주었다. 분명 모자란 것이 없어 보이는 없어 보였다. 적어도 그 말을 들은 날 이전에는 늘 그랬다.
하지만 귓가에 며칠이나 그 말이 내 마음속에 속삭였다.
' 아이에게 나는 정말 필요한 것을 해주는 엄마인가?' ' 엄마는 어때야 엄마인 걸까? ' 하는 원초적이고 철학적이기까지 한 질문을 나 스스로 하게 되었다.
그 해답은 내가 육아로 번아웃이 오고 내가 우울증에 심하게 걸려서야 알게 됐다. 늘 할머니나 다른 친지들의 집을 전전긍긍하면서 더부살이를 했던 내게는 영유아 시절 엄마로서 아이에게 진짜 필요한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자랐다. 다 지난 일이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던 가슴 깊이 묻어 둔 일들이었다.
네게 엄마는 유아 때는 가끔 목소리만 듣던 사이였고 6살쯤 같이 살았어도 바빠서 얼굴을 제대로 마주하던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나의 엄마는 치열한 20대를 살았고 나는 그 사이 자라났다. 엄마 아빠가 형편이 나아지고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때쯤에는 나는 이미 20살이 넘은 성인이었다.
눈치 보면서 끼니를 겨우 채우고 착하고 예쁘게 굴려고 노력했던 나의 어린 시절 속에는 보살핌을 받고 이해를 받고 내 이야기를 경청해 준 엄마는 없었다. 육아책을 보면서 좋다는 것은 다해주고 누구보다 열심히 육아를 했는데 허울 좋은 빈껍데기만 채운 것 마냥 한 아이로서의 엄마는 온데간데없고 아이를 바르게 키워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아이를 다그치고 몰아세운 무서운 엄마가 되어있음을 발견했다.
그렇게 키운 내 아들은 점점 거짓말이 늘어갔고 엄격한 엄마말만 잘 듣고 유치원이나 학교 생활을 할 때에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일으켰다. 그럴 때마다 내가 그렇게 가르쳤는데 왜 아들은 반대로 하고 돌아다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남편이었다면 당장 별거든 이혼이든 하겠다마는 자식은 그럴 수 없지 않은가.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원망과 우울에 가득 찬 채로 아이를 양육했다.
이쯤 되니 아이를 낳을 시점에 미국에서 엄마가 우울증이나 불안증이 있을 경우 의무적으로 작성하게 했던 '지국민 보호 동의서'가 생각이 났다. 그땐 이런 미친 법이나 미친 나라가 있나 하고 미국의 법을 욕했었다. 하지만 지금 지나고 보면 엄마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한 것이었다. 그것을 늦게 깨달은 나는 나를 희생하고 나를 힘들게 하면서 까지 아이를 가르치려고 들었다.
만족하거나 행복하지 않은 마음으로 아이를 대했을 그 평범한 10년을 생각하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는 나의 아이를 잘 키워 본다고 한 것들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인지 생각하니 앞이 깜깜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일 년 가까이 심리 치료 센터에 다니고 있다.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다니고 있다. 내가 먼저 행복해야 아이의 실수나 아이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육아서적들이 꽉 차 있던 책장은 지금은 비워졌다. 그 자리에는 아들이 좋아하는 아프리카 왕달팽이와 내가 좋아하는 다육이 화분들이 사이좋게 놓여있다. 목소리도 아이를 낳기 전에 목소리 톤으로 돌아오고 아이는 더 많이 웃는다. 나는 아이를 가르치려고 들지 않고 같이 그 나이로 돌아가서 함께 달팽이와 다육이 이야기를 하면서 아들과 대화한다. 그러기를 몇 개월 아들이 며칠 전 잠자리에 들면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 엄마, 11년 만에 우리 둘 다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게 됐어 "
아이의 거짓말도 완벽히는 아니지만 많이 나아졌다. 그리고 엄하고 큰소리에 반응하는 아이가 아닌 사회 속에서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켜할 것들을 지키는 아이가 됐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엄마가 바뀌니 아이도 바뀌었다. 애초에 어떤 육아 서적에도 내 아이의 성향과 나의 어린 시절 환경까지 고려해서 맞춤으로 육아를 알려주는 책은 없었던 것이다. 육아 서적은 참고만 할 뿐 중요한 건 아이의 성향과 엄마의 정서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공할 때까지 옮다고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미련스럽게 10년이나 밀고 나간 엄마의 최후는 앞으로 10년 동안은 내가 옮다고 생각하는 틀에서 벗어나 언제나 아이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이해해 주는 엄마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없다. 이제 그 무섭다는 사춘기도 올 것이고 이제 말로 고함으로 육아를 해서 듣는 나이는 지났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내가 가르쳐 줄 것을 찾는 똑똑한 엄마를 내려놓고 조금 덜 까칠하고 약간은 허술하기까지 한 엄마모드로 오늘을 살고 있다.
여러분들의 오늘 육아는 어땠나요?
돌아서면 반성할 일들이 생기는 육아, 오늘도 후회 없는 육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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