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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마음속에도 엄마가 있었다

Ep.01

by 이도연 꽃노을


다음역은 디지털미디어시티, 디지털 미디어시티 역입니다.





모두 늦잠을 자고 있을 일요일 아침 나갈 채비를 다 마치고 아들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전 날 챙겨 두었던 밑이 넓은 대형 비닐봉지를 챙겼다. 그것도 모자라 명절에 선물 포장으로 쓰이는 황금색 보자기까지 챙겨서 아들과 집을 나섰다.


일요일 아침이라 한산한 도로에는 차들이 별로 없었다. 아들의 손의 꼭 잡고 건너편에 있는 편의점에서 버스 카드를 충전했다. 우리 집에서 엎어지면 코가 달 것 같은 거리에 아들이 다니는 학교가 있기 때문에 아들이 아들의 버스카드를 충전하는 일은 아들에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편의점 아주머니 뒤에 걸려 있는 교통가드들의 디자인을 열심히 보던 아들은 보라색과 민트색으로 된 패턴이 있는 제법 어른스러운 디자인을 골랐다. 카카오프렌즈에 등장하는 귀여운 캐릭터들이 즐비한 곳에서 아들은 왜 그 카드롤 골랐을지 나는 새삼 궁금했다.

" 네가 좋아하는 춘식이랑 다른 캐릭터도 많던데 왜 그 디자인을 골랐어? "

" 엄마가 좋아하는 보라색과 내가 좋아하는 민트색이 같이 있는 게 좋아서 "



온통 내 머릭 속에만 아들 생각으로 꽉 차있을 거라는 나의 생각은 보기 좋게 틀렸다. 아들 마음속에도 엄마가 들어있었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또는 생각 속에 나도 모르게 내가 있었다는 느낌은 나의 가슴을 촉촉하게 했다.


운전을 못하는 뚜벅이 엄마 때문에 아들도 웬만한 곳은 걸어 다녔다. 멀리 가야 하거나 아빠의 상황이 허락되면 아빠의 자동차를 타고 목적지까지 데려다주었기 때문에 느껴보지 못했던 그런 소소한 휴일 오전이 아들과 나를 감싸 안았다.






아직은 아침이라도 한 여름 땡볕이 따가웠지만 아들과 둘이 앉아있는 마을버스 정거장의 풍경은 평온했다. 마을버스가 윗동네에서 우회전을 해서 내려오는 게 보이고 아들과 나는 버스를 탈 준비를 했다. 버스가 오기 전 여러 번 아들에게 버스가 오면 계단을 오르고 버스카드를 찍는 단말기에 찍고 타는 거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막상 버스가 오고 앞에 타는 승객이 없어 아들을 먼저 버스 위로 올려 보냈다. 아들의 눈과 손을 갈 곳을 잃고 두리번거렸다. 당연한 것이 버스카드를 찍는 단말기를 본 적이 없는 아이에게 어디에 대는 것인지 눈에 익지 않아서 더 찾지 못했던 것 같다. 아들의 갈 곳 잃은 손을 잡아 단말기에 데어주고 얼마가 남았는지 금액을 숫자도 확인하는 방법을 보는 법도 알려주었다. 뭔가 새로운 것을 알아냈다는 아이는 자기의 유능감과 뿌듯함에 매우 즐거워 보였다.


아들과 보기 좋고 뒤쪽 두 명이 앉는 좌석에 앉았다. 아들은 안전벨트가 왜 없냐고 물었다. 그렇다 고속버스도 아닌 마을버스에서 벨트는 있을 리 없었다. 카싯에만 앉거나 벨트를 꼭 매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일상처럼 하던 벨트가 없는 것이다. 아이에게 마을버스에는 벨트가 없고 모두 앉거나 손잡이를 잡는다는 것을 설명해 주었다. 뭔가 자신도 카시트를 벗어나 버스를 타다니 하고 생긋하면서 우쭐해 보이는 아들 모습이 귀여웠다.

그런 순간도 잠시 버스가 여러 정거장을 지났고 타는 승객이 적은 휴일인 탓도 있었지만 문을 열고 닫기도 전에 출발하는 모습을 보고 아이는 내게 물었다.

" 엄마가 규칙은 잘 지키는 거라고 했는데 버스 기사 아저씨는 왜 순서를 안 지키는 것 같아. 문을 닫고 출발해야지. 출발하고 문을 닫았는데?"라고 물었다. 내가 보는 그 장면은 흔히 있는 일이었기에 아이에게 뭐라고 이야기할지 잠시 생각하는 중에 오른쪽 뒤편 대각선에 앉은 노신사분이 아이에게 지긋이 웃으면서 말해주셨다. " 그래, 기사 아저씨가 안 지킨 것 같구나 하지만 지금은 어떻니? 떠나려고 이미 문을 닫고 정류장을 벗어나려고 하는데 횡단보도를 막 건너던 대학생 형을 보고 기사 아저씨가 태워주셨네."

아이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다가 이내 밖의 풍경을 보고 있었다. 아이가 노신사분의 이야기를 이해를 한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알쏭달쏭한 아이를 보면서 나는 다시 설명하지 않았다. 늘 모든 걸 이해시키고 설명하고 도덕책 같이 굴었던 내가 바뀌었다. 아이를 10년쯤 키워보니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한다고 아이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요즘 느꼈기 때문이다. 처음 버스를 타고 전철역으로 가는 사이에 아이가 느꼈을 새로운 풍경을 온전히 아이가 느끼고 홀로 여러 번의 경험하면서 알게 될 것이다.

무사히 마을버스를 타고 전철역에 도착했다. 내릴 때 한 번 더 교통버스 카드를 찍는 것을 우리 둘 다 잊지 않았다.








길게 경사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역 플랫폼에 섰다. 아이는 스크린 도어 너머로 컴컴한 철로를 바라보고 전철이 오고 있는지 확인했다. 스크린 도어가 열리고 내릴 사람이 없어서 아들과 나는 전철에 올라탔다. 자리는 많이 있었지만 나는 장애인이나 유모차등 자전거를 세울 수 있는 코너에 봉을 잡고 섰다. 아들은 벨트도 없는 전철에서 이리저리 몸이 흔들리니 봉을 잡으며 전철의 자리가 많은데 앉지 않고 서서 가는 나를 어리둥절하게 보았다. 나는 장난기가 돌아서 누가 봉에서 손을 놓고 오래 두 발을 지면에서 떼지 않고 있는지를 아들에게 하자고 제안했다. 아들은 금방 나의 장난에 동참했고 둘은 전철 코너에서 짧은 놀이를 즐겼다. 그리고 이내 화제는 내가 아들만 한 때 아빠와 전철을 탔던 기억 속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 예전에는 할아버지가 엄마랑 전철을 타면 꼭 서서 가게 하셨어."

" 왜?"

" 엄마 어렸을 때는 전철에 이렇게 많은 광고대신 '나는 젊었거늘 서서간들 어떠하리'라고 쓰여있었어. 엄마가 앉고 싶다고 하면 꼭 그 문구를 여러 번 읽게 하셨고 앉는 대신 끝말잇기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셨어."


어느새 30년 넘은 어린 시절을 생각하는 사이 다른 호선으로 갈아타야 하는 정거장에 도착했다. 갈아타는 곳으로 가는 길은 다른 역과 달리 많은 물건을 팔고 있는 지하상가처럼 생겼었다. 마트나 편의점에만 가본 아이는 지하에도 상점들이 다양한 물건을 팔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나 보다.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파시는 아저씨가 오면 집에 갈 생각은 뒷전이고 병아리를 구경하듯 아들은 여성 옷가게 앞에서 옷을 보고 있었다. 웬 아이가 성인 여성 옷을 구경하는 것이 의아해했는지 점원 아주머니가 나오셨다. 아들은 갑자기 핑크색 프릴이 달린 블라우스를 보고 상점 아주머니한테 가격을 묻기 시작했다. 가격은 단돈 현찰로 2만원이었다. 아들은 나를 돌아보면서 " 엄마 이거 사자! 하고 말했다. " 나의 취향과는 아주 먼 핑크색 프릴 블라우스를 사라고 하는 아들을 바라보니 " 엄마는 맨날 내 옷하고 내신 발하고 내 것만 사잖아. 엄마가 입으면 어울릴 것 같아. 내용돈으로 엄마 사줄게 " 예상치 못한 아들의 선물을 거절하지 못했다. 여름 방학 끝나면 녹색 학부모회 참여할 때 입고 오라고 말하며 아들은 쌈짓돈 같은 용돈을 털어 엄마의 블라우스를 샀다. 실제로 방학이 끝나고 바로 다음날 우리 반 학부모들이 녹색학부모회 깃발을 들고 학교 근처에서 활동을 해야 한다. 아침부터 핑크색 프릴 블라우스에 어울릴만한 옷을 차려입고 녹색 교통 깃발을 들고 있을 나를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두 번을 더 전철을 갈아타고 휴일 긴 여정을 그토록 가려고 했던 목적지인 '디지털미디어시티' 역에 도착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객찰 구가 있는 층으로 올라와 아들과 나는 손잡이 달린 리빙박스를 들은 사람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렸다. 멀리서 봐도 아이보리색 뚜껑이 덮인 리빙박스 2개를 듣고 인상 좋은 여성분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아이는 리빙박스 뚜껑에 거꾸로 붙어서 눈자루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아프리카 달팽이에게 정신이 홀딱 빠져있었다. 그렇다. 아들과 내가 휴일 아침 일찍부터 먼 거리까지 대중교통을 타고 출동한 이유는 달팽이를 입양하기 위해서였다.


아들은 생물에 관심이 많고 뭐든 키우고 싶어 하는 아이다. 아들을 키우면서 아들 덕분에 나는 장수풍뎅이부터 사슴벌레, 구피, 마블가재 등 절대 키우지 않았을지 모르는 생물들을 키웠다. 처음엔 나도 다른 엄마들처럼 반대를 많이 했다. 반려 동물을 들이면 모두 엄마 몫이 된다는 것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 시작은 아들이 친정엄마와 마트에 가서 장수풍뎅이를 사서 무작정 집으로 왔을 때부터이다. 처음엔 벌레를 왜 돈 주고 사나 징그럽다 무섭다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이는 생물 책과 비교하면서 장수풍뎅이를 잘 키웠다. 잘 키우던 여름이 (장수풍뎅이)가 다리를 다 오므리고 죽자 아들은 여름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면 일어날 거라고 묻어주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첫 생물의 죽음을 겪고 나니 아이가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에 대해 해 보고 살아있는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이의 마음을 보았다. 동화책이나 자연관찰책을 보여주면서 생명은 소중한 것이라고 백번 말하는 것보다 자신이 직접 책임을 지고 키워보면서 알아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나의 생각을 틀리지 않았다. 일단 어떤 생물이던 입양을 하기 전에 그 생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공부를 하고 신중하게 개체를 선정하고 고른다. 이번에도 농장에서도 아프리카 달팽이를 분양하지만 집에서 달팽이 집사님의 사랑의 많이 받은 달팽이를 받기를 원했다. 친정엄마도 친구들도 검증된 농장에서 분양을 받으라고 조언했지만 이번에는 아들이 선택한 방법을 존중해 주고 싶었다. 나도 그렇게 하는 게 더 편안하고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학교와 집 근처만 다녀본 아이에게 더 큰 세상을 보여주고 경험하기 위한 최고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분양해 주시는 분에게 달팽이가 담긴 리빙박스를 전달받고 얼른 준비해 온 금색 보자리를 꺼내어서 리빙박스를 두 개로 쌓아서 명절 선물처럼 묶었다. 아이는 달팽이를 보면서 가고 싶은데 내가 보자기로 싸니 보자기로 싸는 이유를 내게 물어왔다.

" 우리는 달팽이가 귀여워서 키우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어." 그러자 아이는 " 아, 내가 강아지 무서워하는 것처럼?" 하고 물었다. 그렇지. 우리가 좋다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모두 좋은 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이 좋아하길 바라는 스타일의 나였기에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아이 덕분에 나도 한 뼘 성장했다.








황금보자기로 꽁꽁 싼 보자기를 큰 대형 봉투에 넣고 다시 갔던 길을 다시 되돌아와야하는 일이 남아있었지만 아들은 딜팽이 생각에 신이 나 보였다. 전철을 타고도 오랜 시간이 걸려 집으로 돌아올 수 있기에 달팽이를 몰래몰래 지켜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아들은 의젓하게 잘 참았다. 집에 돌아오자 휴일이라 늦게 일어난 남편은 정오가 한 참이 지나서 들어온 우리를 보고 어디에 갔다 왔냐고 물었다. 아무 대답 없이 대형 비닐에서 꺼내 황금 보자기를 풀어서 보여주니 남편은 아들과 나를 말릴 수 없다는 듯 고래를 저었지만 아무 투박하지 않고 커피를 마시러 주방으로 갔다. 아이와 나는 서로 빙긋 웃으며 대중교통을 타고 오느라 스트레스를 받았을 달팽이들을 환기를 시켜주었고 먹이를 주었다.


분양받은 달팽이의 이름은 흑미와 귀리로 아프리카 달팽이이다. 농장에서 분양을 받으면 몇 천 원에 살 수 있다. 아들과 내가 여러 번 갈아탄 대중교통 비용을 다 합치면 달팽이 농장에서 분양받는 것이 싸지만 나는 이번 아들과의 함께 했던 휴일 아침의 여정이 뜻깊었다.


엄마가 알려줄 수 있어서 기뻤고, 처음 경험을 하면서 신기해하는 너를 보았고, 내 머릿속뿐만 아니라 아들의 마음속에도 항상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가는 일상 속에서 아이와 배우고 할 거리가 이렇게 많다니 종종 아들과 시간을 보내야겠다.


" 엄마의 취향은 아니지만 프릴 달린 블라우스는 엄마에겐 어떠한 선물보다 좋았어. 항상 너의 물건만 사는 것처럼 느껴져서 엄마에게 사주고 싶었다는 너의 마음이 예뻐서 엄마의 마음은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것 같아. 사랑한다 아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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