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안녕하세요? 경단녀입니다

엄마, 아내, 딸, 직원으로 40년을 살았다

by 이도연 꽃노을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던 리즈 시절



사원카드 휘날리며 높은 구두를 신고 뛰어다녔던 나의 리즈 시절이 있다. 대학 졸업식을 하기도 전에 L사에 신입사원으로 채용된 나는 어엿한 새내기 디자이너가 되었다. 명함에도 L사 로고가 박힌 R&D Design Center 연구원 이 OO이라고 쓰여있었다. 처음에는 나 스스로도 내 이름과 내 사진이 꼭 박힌 명함과 사원증이 생겼다는 것이 신기하고 기뻤다.



펑퍼짐하고 야간작업을 하기 위해 입었던 옷들은 모두 재활용 쓰레기 통으로 들어갔다. 사회 초년 생으로써 또는 의미심장하게 디자이너로써 어울릴 만한 옷을 사러 백화점에 갔다. 지금 돌이켜 보면 웃기지만 도대체 디자이너스럽게 보일 만한 옷은 무엇일까? 그 당시에는 오피스 룩이되 좀 더 자유분방하고 디자이너로써 센스를 보여 줄 수 있는 포인트가 될만한 옷을 고르는 것이 디자이너 다운 나의 옷차림이라 생각했다. 당시 L사는 여의도 본사에 있지 않고 역삼역에 디자인 센터만 따로 나와있었다. 그렇기에 복장 규율이 심하지 않아서 반바지에 슬리퍼만 아니면 복장은 자유로운 편이었기에 나는 청바지 하나를 골라도 뭔가 디자이너답게 보이길 원했다. 비즈가 비대칭으로 박혀있다던지 청바지에 레이스 소재가 섞여서 좀 더 패셔너블한 옷을 사곤 했다.







딸,직원,엄마,아내,며느리 말고 나를 찾아서



목표했던 회사에 합격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세상을 다 얻을 것 같았던 그때 시절은 이제 내 기억 속에만 있다. 아직 내 기억 속에 열정적이었고 자부심 있던 나의 모습은 나의 머릿속에 선명한데 현실은 누구의 엄마로 불리는 게 자연스러워지고 머리 질끈 묶고 아침 8시 20분까지 녹색학부모회에 참석해서 형광색 안전 조끼를 입고 초등학교 앞에서 교통 도우미를 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에는 도서관 사서 도우미 활동을 한다. 아이의 학교 도서관에 가서 반납한 도서와 새로 들어온 책을 정리한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2학기에 있을 아이들 생존 수영 수업의 도우미 지원을 하여 심폐소생술 (CPR) 교육을 받으러 학교에 갔다 왔다. 아이 학교에 갈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교육을 받고 집으로는 오늘 길에는 생각이 많아졌다. 비가 추적추적 오고 있어서일까 나는 급 멜랑꼴리 해졌다.


' 지금 나는 다른 사람을 구하는 심폐소생술 보다 그냥 인간 이도연으로 소생이 더 시급한데?! '







다시 젊어지고 다시 유능했던 대기업 디자이너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니, 그 시절이 부러운 것이 아니라 나는 인간 이도연 개인의 삶을 되찾고 돌보고 싶어졌다. 출산과 육아가 우선이었던 지금까지는 나의 개인의 삶보다 주어진 역할에 대한 삶을 살려고 노력도 많이 했고 희생도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의 딸,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가 아닌 그냥 나 개인 이도연으로 말이다.


경력 단절이 된 엄마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나를 불태우고 희생해서 출산과 육아를 하고 아이가 어느 정도 커 있을 때는 오롯한 나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인지했을 때는 지치고 진안한 일상에 찌든 나를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그 우울한 늪에서 건져 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제 역할의 늪에서 빠져나와 다시 우뚝 서기로 했다. 일단 그러기 위해서는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취업이나 경제적 자유가 아니었다. 내게 나를 찾기 위해 제일 필요한 것은 정신적 자유였다. 그리고 사십 평생을 사회가 규정한 속도도로 살아온 탓에 나도 모르게 서서히 진정한 나의 색을 잃어갔던 그 색깔을 다시 찾고 싶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나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인가? 나는 나에대해 얼만큼 알고 있나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마치 15살 첫 사춘기가 시작 된 그 때처럼 아주 진지하고 심오하고 예민하게....











이미지 출처: unsplash.com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