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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작은 세계

미물의 속삭임 01

by 이도연 꽃노을



한국 토종 달팽이 중에 하나인 아재비 달팽이는 전국적으로 분포하지만 모식산지가 북한산이라고 한다. 아재비 달팽이의 개체수는 점점 줄고 있는데 그 이유는 서식처 파괴와 환경변화가 주요 개체수 감소요인이라고 한다. 인간들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도로들과 도시 개발은 그 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감소하게 한 셈이다. 우리의 인간도 자연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며 자연에서부터 왔다고 생각한다면 미물들의 개체수만 걱정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잠시 빠졌다.


아직 준성채도 되지 않은 우리 집 아재비들은 고작 해봐야 어린이 한 뼘 수준의 투명 사육장에 산다. 사육장엔 이 세상의 모든 생물이 그러하듯 숨을 쉴 수 있는 공기구멍이 뚫려있다. 아이 손바닥 만한 공간에 있어봤자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 공간 안에는 최소한으로 그들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들이 집사인 나로부터 제공받은 것이다. 보온, 습도 조절 효과 그리고 달팽이에게 충격이 가해지는 것을 어느 정도 막아줄 완충 작용을 해낼 수 있는 코코피트가 깔려있다. 이제 그들에게는 인간이 걷고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이 생긴 것처럼 아재비들에게도 자신들이 꼬물꼬물 한 배달을 딛고 기어 다닐 땅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디딜 수 있는 땅만 가지고는 살 수 없는 것이 생물의 숙명. 달팽이 집사는 아재비가 먹을 수 있는 먹이를 공급한다. 주로 잎채소나 야채를 위주로 공급한다.


이제 그들의 땅에 비가 내리는 것처럼 분무기로 미세 분무를 해주어 습도를 맞춰준다. 드디어 촉촉한 땅, 숨 쉴 수 있는 공기, 그리고 생명을 유지할 먹을 것이 해결되었다. 아재비들은 한 뼘 남짓한 조그만 투명 통속에서 살아간다. 한 참을 아재비 달멍을 하다가 문득 내 머리에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사회적인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고등 동물인 인간만큼 우리를 위해 무언가를 장만하고 갈구하고 탐욕스러운 존재도 없을 것 같았다.

타인에게서 예를 찾지 않아도 당장 나만해도 그러했다. 집에는 내 취향에 맞는 인테리어를 해야 하고 이쁜 장식들도 쟁여놓는다. 하나를 먹어도 좋고 신선하고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그리고 더 큰 집을 갖기 위해 쉴 틈 없이 일하고 돈을 번다. 하지만 늘 마음은 허하다. 계절이 지나갔는지 하늘을 본 건 언제인지 모를 삶을 살고 있다. 때로는 모두들 하니까 나도 해야 한다는 모순에 빠지기도 하고 무엇을 위해 내가 일을 하는지도 잊은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비, 눈, 추위를 피해 뉘일 곳이 있는 나의 집이 있고, 나의 표정하나 행동 하나에도 울고 웃는 나의 아들이 있다. 그리고 누구보다 나를 존중하고 같은 곳을 바라보면 묵묵히 걸어가는 남편이라는 동행자도 있는데 삶은 늘 지루하고 우울하고 즐겁지 않았다. 이미 주어진 것을 보지 못하고 갖고 싶은 것만 쫓는 욕망은 끝날 줄 모른다. 잘하고 있으면 더 잘하고 싶었고, 이미 갖았으면서 더 다양하게 갖추어 놓고 싶었다. 쉴 새 없이 구멍 난 가슴을 메꾸고 채워보아도 구멍은 매일 커져만 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난 오늘 달팽이들의 집을 청소하고 꾸며주면서 알게 됐다. 최소한의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삶. 자기에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묵묵히 살아내는 힘을...


이제 나도 계절이 바뀌는 바람의 결의 다름도 느껴보고, 오늘의 하늘은 어떤 빛깔이었는지 올려다볼 수 있는 정신적 여유를 내게 주기로 했다. 나는 무엇으로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내게 주어진 시간을 지금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는 게 맞는지 심심한 고민에 빠진다. 언젠가 이 세상을 훌훌 털고 떠날지 알지 못하지만 그 순간에 내가 있던 세상에 어떤 친구와 추억이 있었는지 어떤 색감의 하늘이 지나가고 어떤 향의 냄새들이 나를 감싸 안았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면 참으로 슬플 것 같다.


미물에게 배운 첫번 째 철학은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삶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에 내가 원하던 위치에 가더라도 그 순간 더 높은 욕망과 기대를 한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 온전히 내가 원하는 만큼 행복해 질 수있고 행복하다고 느낄까 생각해 보면 평생 그 순간은 오지 않을 것 같다. 나의 생각과 나의 시선이 달라지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흰색으로 그린 인간의 탐욕들을 지우면 온전한 내가 보인다. 그리고 조금더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나를 발견한다.









사진출처: 꽃노을 / 일러스트 꽃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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