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맛, 짠맛, 신맛, 쓴맛 매운맛 그리고 병맛
인생의 맛
단맛
내가 초등학생일 시절에는 군인 아저씨만 봐도 되게 어른 같이 느껴졌다. 어른이 되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고 나는 어른이 되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일을 하게 될지 가늠이 되지 않았지만 뭔가 어른이 되는 것은 근사해 보였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100원만 하고 슈퍼에 가서 신호등 사탕을 사 먹을 때만 해도 인생은 달콤했다. TV가 시작할 시간이면 만화영화를 보면서 만화영화 주제가를 따라 불렀고, 밤이 오면 내일 누구랑 뭐 하고 놀지 생각하면서 잠드는 게 일상이었으니까.
짠맛
첫 생리를 하고 가슴에 멍울이 잡혀 첫 브레이지어를 해야 했을 때는 점점 나는 사춘기라는 질풍노도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나는 누구인지 나는 왜 태어났는지. 죽음은 어떠한지 겪어 보지도 못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심오한 머릿속은 꽉 차고 얼굴엔 빨간 여드림이 줄지어 났을 시기의 내 일상은 짠맛이었다. 뭘 먹어도 짜서 다시는 경험하기 싫은 그런 짠맛이었다.
신맛
이미 진로는 정했고 이렇게 해서 대학은 갈 수 있는지 불투명해서 답답했던 그 시절은 한 입맛 먹어도 얼굴이 찌푸려질 듯한 신맛이었다. 이미 단맛, 짠맛을 봤기에 돌아갈 수도 없고 얼떨결에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대입준비에 입에 침이 고이는지도 모르고 대한민국 입시생들의 신맛들을 경험해야 했다.
매운맛
대학교를 가고 성인이 되어 술도 마시고 첫 사회에 첫발을 내밀었을 때는 모든 게 매운맛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하면 모든지 다 될 것 같은데 사회에 나가서부터 배우는 인간관계, 상하관계, 조직의 맛은 응급실 갈 만큼 매운맛이었다.
쓴맛
결혼을 하고 임신과 출산을 겪은 나는 육아의 쓴 맛을 봤다. 처음 해보는 육아는 끝이 없었고 정성을 다해도 티도 나지 않았다. 한 아이의 엄마로 아이를 책임지고 교육하고 양육한다는 것은 무척 부담스러운 쓴맛이다. 나의 가르침이 나의 조언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기 때문에 조심스럽기도 하고 어려운 아주 쓴 맛이다.
병맛
열심히 공부하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는데 모든 게 허무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순간순간 내가 무슨 감정인지도 잘 모르는 나는 세상 제일 똑똑한 바보가 된 느낌에 사로 잡혔다. 모든 게 무의미하고 우울의 늪에 가라앉아서 허우적 되는 느낌은 정말 병맛이다.
친구들은 그냥 살던 대로 살라고 한다. 엄마는 가정의 경제생활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보라고 한다. 시댁에서는 아들도 잘하지 않는 효도를 하길 바라는 눈치이다. 아들은 엄마가 늘 영원히 자기 곁에서 무수리를 할 것 같나 보다. 병맛 같은 인생에서 나를 구해줄 사람은 나밖에 안 보인다. 그래서 이제 나도 나를 찾아 떠나기로 했다. 앞으로 살 날 중에 오늘이 제일 젊은 날이다. 다시 일어서서 나로 우뚝 서기 참 좋은 나이 불혹이 왔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모든 역할에 충실했던 당신, 이제 오롯이 나로, 주인공으로 돌아갈 차례이다. 불혹이란 바로 그런 나이이다. 너무 어려서 무지하지도 않고 너무 늙어서 힘이 없는 나이도 아닌 뭐든 하기 딱 좋은 그런 나이다. 나는 그 첫 번째 시도로 글을 쓰기로 했다. 이 세상 모든 마흔들은 일어나라 그리고 내 삶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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