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육아가 처음이라
엄마의 자존감은 곤두박질치고
모모가 7살이 되고 ADHD 진단을 받은 후에도 나는 모모를 아동발달 센터에 보냈다. 전두엽 발달이 느린 ADHD 특성상 지시 수행 능력이 느리고 공감 능력이 낮기에 사회성 발달에게 지연이 예견되기에 약물 복용과 함께 처방된 치료였다. 한 달에 백만 원이 훌쩍 넘는 센터 비용을 3년간 다녔는데 무엇이 나아진 것이 있느냐고 불만을 토로하는 가족들도 있었고, 센터는 아무 소용없다는 지인이나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는 아동발달센터만큼은 계속 다녔다. 횟수나 수강하는 과목은 변경되었지만 지금도 모모의 센터 수업은 7년째 유지 중이다.
그렇게 결정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오감이 모두 예민해서 사소한 생활에서도 아이는 불편을 겪고 있었다.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에서 뮤지컬이나 영화를 보러 가면 큰 음향 소리에 질려 두 손으로 귀를 막았고 특수 효과로 바람이나 연기가 나오면 불안해하며 울었다. 또 촉감은 얼마나 예민한지 목욕을 시키거나 친구들과 꼬리잡기 놀이도 하려고 어깨나 허리를 잡으면 난리가 났다. 분명 나는 살살 목욕을 시켜주고 있는데 모모는 아프다고 괴로워했고, 아이들과 조금이라도 닿으면 모모는 친구들이 자기를 일부러 아프게 했다고 오해를 해서 분란이 일어나기 일쑤였다. 모래 놀이를 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며 손에 풀이라도 묻으면 닦아 내라고 고래고래 함성을 질렀다. 물론 이런 일상들이 반복이 되면 엄마인 나는 정말 특이하고 까다로운 아이를 낳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직 어려서 그러겠거니 하면서 지내왔다. 하지만 어린이집을 거쳐 유치원에 갈 수 록 모모의 행동들에서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들이 관찰되었다. 착석을 잘하지 못한 다던가 집중을 잘 못한다던가... 혼자 놀이에 빠져 전환을 못 시키고 계속 그 하고 싶은 놀이를 계속하고 있는 일 듯이 많아서 단체 생활을 하던데 어려움이 많아졌다. 가정에서는 주양육자와 둘만 있기에 잘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들이 단체 생활을 하면서 드러나게 됐다. 규칙을 안 지킨다 던 지 착석을 안 한다던지 기다리지 못한다던지 기본 적인 문제들 말이다. 점점 아이는 또래들 사이에서도 기관에서도 유별나 천덕꾸러기가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런 아이를 지켜보는 부모의 심정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내 아이지만 나조차 외면하고 창피해서 숨고 싶은 적도 많았다. 왠지 죄인이 되어 학부모 모임에도 나가지 못하고 모모에게 당연히 제공되고 받아야 할 것들도 유치원에 요구를 못하는 상황도 있었다.
엄마의 책임감은 더욱 깊어졌다.
모모의 하원시간 이후에는 모모가 하는 말 한마디, 표정 하나, 몸짓 하나가 모두 지적과 항의 형태로 내게 보고가 되곤 했다. 때로는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때로는 또래 친구들의 엄마들로부터 어려움을 토로하는 내용들이었다. 그럴 때면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매일같이 듣고 살아야 하는지 아이가 밉고 원망스럽기도 했다.
아이가 하나인 나로서는 비교 대상이 내 어릴 적을 회상해 보는 것이 다였다. 5살 때부터 집에 혼자 있으며 연탄불도 갈고, 등교시간도 맞추어 갔던 어린 나를 생각해 보면 모모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조차도 용납이 되지 않아서 아이를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미흡한 점을 지적하고 채근했다. 그렇게 모모와 나의 사이는 점점 멀어져만 가는 것 같았다. 모든지 열정적이고 모범적이었던 내게 ADHD를 키우는 것은 너무 어려운 숙제였다. 나와는 너무 다른 기질과 특성을 가지고 있는 모모는 내게 늘 풀기 어려운 문제였다.
' 어떻게 내가 낳았는데 저렇게 나와 다를 수가 있지? '
' 왜 모모는 당연한 것을 잘하지 못할까? '
' 왜 우리는 평범한 일상을 누리지 못할까? '
나도 모르게 나의 아이가 미워지고 이 상황을 회피하고 싶어졌으며 그럴수록 난 더 지독한 우울감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점점 아이가 방학을 하기만을 기다리고 때로는 아프다는 핑계로 유치원을 의도적으로 결석을 시킨 적도 많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지 않으면 항의 전화들도 오지 않을 테니 말이다. 동급생 엄마들은 항의 전화를 해서 좋게 이야기 나누는 분들도 계셨지만 첫 통화부터 입에 담지 못할 육 두 문자부터 나오는 부모도 있었다. 때로는 새벽 2시까지 전화를 끊지 않고 하소연을 하시는 분도 계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납작 엎드려 사과만 반복했다. 아이가 ADHD 인 것은 알이지 못하고 철이 없다, 눈치가 없다, 제가 잘 못 가르쳐서 그런다 죄송하 다하면서 머리를 땅에 닿을 정도로 조아리면서 살았다. 그렇게 사는 하루는 이 세상 어디에도 우리 아이를 받아 주고 환영해 주는 곳은 없는 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 곳에 아이를 데려가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 들었다.
그러나 모모는 계속 눈치도 없이 친구들이 좋다며 유치원에 가길 원했다. 그런 아이가 안쓰러웠다. 자신이 한 행동과 부적절한 말과 대응으로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지고 피해를 보는데 아이는 전혀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너무 슬프게도 모모는 천진 난만하기만 했다. 모모의 아빠는 모모가 차라리 눈치가 없는 게 낫다는 말을 할 정도로 모모가 마음의 상처를 입을까 걱정을 하곤 했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배척하는 정도에서 끝나지만 이렇게 가다가는 왕따를 당할까 무서웠고 아이 아빠의 말대로 아이가 더 커지면 그런 자기 모습에 상처를 받을 생각을 하니 나는 한시도 시간을 허투루 써서는 안 된다는 강박감에 사로 잡혔다.
미친 듯 배우고 익히고 가르치고
그런 반복되는 일상 속에 나는 모모가 자는 밤이면 ADHD관련 영상들을 보고 미친 듯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모가 다니는 아동발달 치료 센터의 여러 선생님들이 모모에게 해주는 치료들을 어떻게든 배워서 집에서 모모에게 해주려고 노력했다. 센터 비용이 만만치 않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나는 시간을 단축시키고 싶었을 뿐이다. 집에서 배워서 내가 수시로 치료사 선생님들처럼 해줄 수 있다면 아이의 발달이 촉진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내가 엄마인지 치료사 인지 상담사인지 모르도록 미친 듯 배우고 익히고 가르치기 시작했다. 지금 돌아보면 내 자식이기에 더욱 엄격하게 더 완벽하게 가르치려는 생각으로 매우 엄하고 매우 냉정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각성이 높아서 들떠있는 아이의 각성을 낮추는데 좋다는 계단 올라가기나 등산을 싫다는 아이를 데리고 매일같이 했다. 주말이면 촉감이 예민한 아이에게 다양한 촉감을 제공하려고 모래사장이나 갯벌 그리고 물놀이 장을 많이 데리고 다녔다. 모래 알갱이 하나가 신발에 들어가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신발을 털어 달라고 하는 아이를 데리고 모래로 모래성을 함께 지을 수 있을 때까지 3년은 족히 걸린 것 같다. 누구에게는 그냥 별일 아닌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은 모모가 스스럼없이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모모 아빠도 정전 감각에 신경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치료사님의 말을 듣고 집에 그네를 설치하기도 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그네를 타기를 유도하고 회전하는 그네도 효과가 있다는 책의 내용을 보고 그네를 돌아갈 수 있게 개조하기도 했다. 모모는 영문도 모르는 채 엄마 아빠가 시키는 활동들을 해야 했다. 그렇게 감각 통합 치료를 오래 받고 노력 끝에 많이 좋아졌나 싶었을 때 또 다른 문제점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모모가 놀이 치료 수업을 듣던 어느 날 놀이 치료 선생님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우리 엄마는 선생님 같아요. 선생님 보다 더 무서워요. 엄격하고요. 기준이 높아요. "
센터에서는 아이치료가 끝이 나면 엄마와 상담시간을 꼭 갖는다. 놀이 치료 선생님이 모모가 한 이야기를 내게 해주었지만 난 그것이 뭐가 문제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난 전문가 선생님의 말을 듣고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모모는 엄마가 자기감정을 물어봐 주고 공감해 주기를 원해요. 기관이던 아동발달 센터에서 열심히 치료받고 지친 모모를 정서적으로 지지를 해주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아마... 모모는 집에도 엄마가 있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선생님이 있어서 마음을 편히 둘 곳이 없는 것 같아요. "
왜 나는 그 생각을 못했는지... 아이를 빠르게 치료받게 하고 낫게 해야겠다는 일념하나에 꽂혀서 정작 아이가 필요한 부분은 놓쳐 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후로는 아이의 치료와 교육은 전문가 선생님들께 맡기고 진짜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늘 어렸을 때 혼자 놀고 혼자 모든 걸 해결해야만 했던 환경에서 자란 나로서는 어떤 모습이 아이에게 필요한 엄마의 모습인지 혼란스러웠다. 그때부터 나는 아이에게 말하는 방법, 아이와 노는 방법 등을 다시 배웠다.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이 아닌 아이의 수준에 맞게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반응해 주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밥을 해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면 엄마의 역할을 다 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가 원하는 엄마는 나의 실수에도 눈을 맞추고 인정해 주고 응원해 주길 바랐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새삼 알게 됐다. 사랑도 관심도 받아본 사람이 사랑과 관심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 아이가 다른 사람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것이 부족하다면 아이의 거울인 부모가 보여주지 않은 면도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렇게 인정해야만 했다. 유전적인 ADHD 때문에 잘 못하는 것도 있지만 분명 환경적으로 엄마가 다 채워주지 못한 정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후 나는 아이의 정서도 몸의 건강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라 생각해서 화를 줄이고 지적을 줄이는 연습을 했다. 엄마는 또 다른 선생님이 아닌 내 아이 모모의 진정한 편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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