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엄마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

실의에 빠질 시간도 쓰러져 울 시간도 허락되지 않는 엄마의 시간

by 이도연 꽃노을

오늘 반나절만 절망할게



나는 아이가 최종 ADHD 진단을 받은 날까지 쉬는 날도, 아픈 날도 허락되지 않는 끊임없는 육아의 굴레에 빠져 있었다. 5살부터 7살까지 누구보다 열심히 아동발달 센터에 모모를 데리고 다녔다. 제발 ADHD가 아니라는 결과가 나오기를 매일 같이 소망하면서 아이와 센터를 오갔다.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나이가 아닌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한 달에 120만 원 남짓한 센터비용이 들어가도 아이만 기관에 적응하고 잘 지내면 좋다고 생각했다. 뚜벅이인 나는 모모가 발가락 뼈가 골절되었을 때도 난 아이를 유모차를 태우고 하루도 센터 수업에 참여했다. 앉아서 할 수 있는 치료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모는 발가락 뼈가 골절된 상태에서도 쉴 새 없이 돌아다녔고 선생님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다른 곳에 관심이 빠져 있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매일 센터 CCTV로 본다는 것은 매일이 지금 일어나는 일이 진짜가 아니길 바랐다. 매일 아침 작은 희망으로 일어나고 바뀌지 않는 아이 모습에 좌절을 반복했다. 그렇게 고통의 3년을 보내고 결국 아이가 ADHD 진단을 받고 나니 나는 죽고 싶었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 놓고도 오늘은 어떤 일이 펼쳐 질지 조마조마했고, 모모아빠와 모모가 집에 없을 때 나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순탄하지 않았던 나의 어린 시절 그리고 부모님의 이혼 그리고 공황장애를 이겨내며 낳은 나의 아이가 ADHD라니 난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50권가량 읽던 육아 서적을 책꽂이에서 다 내던지며 울었다. 아이만큼은 나처럼 외롭지 않게 잘 키우려고 노력했던 나의 시난 날들이 모두 부질없게 느껴졌고 내 인생이 크게 실패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의 울음은 어느새 엉엉에서 야수가 울부짖듯 알 수 없는 소리를 냈고 난 그렇게 그동안 붙들고 있던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놓고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그때, 친정엄마가 집에 우연히 오셨다가 그런 나를 발견하셨다. 엄마도 한 번도 보지 못한 나의 모습에 당황을 하셔서는 이혼한 아빠에게 전화를 거셨다. 그리고 이혼한 지 15년 만에 엄마와 아빠는 나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 우리가 이혼만 안 했어도 네게 덜 힘들었을 텐데.. 그러면 불안장애니 공황장애니 뭐니 하는 병들도 얻지 않았을 것 같고 기어이 우리가 너를 망쳤구나! "


그렇게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는 셋이 부둥켜안고 울었다. 내 불안장애나 공황장애가 아이의 ADHD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임을 알면서도 우리 셋은 서로 자신이 잘 못 한 것만 생각하면서 후회하고 자책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바탕 눈물바다가 되었던 집은 조용해지고 나만 여전히 흐느낄 때쯤 모모의 하원 시간이 돌아오자 엄마와 아빠는 나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 그래도 약이 있다잖니 일찍 발견하고 센터도 다니고 했으니까 그리 절망적이진 않을 거다. 세상엔 약이 없어 불치병으로 살아가는 환자들도 많은데, 그까짓 주의 집중력이 좀 떨어지면 어떠니? 전두엽이 다른 아이들보다 늦게 발달될 뿐 다 발달되면 괜찮아진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잖아... "


그렇다 엄마 아빠가 하는 말이 다 옮고 다도 들어서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말들은 내게 아무런 위안이 되지 않았고 답답함만 차오르는 것 같았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전두엽이 몇 살쯤 우리 모모가 다 발달을 하게 된다는 것인지 누구도 몇 년이 걸린다고 명쾌하게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아는 것이 병이라고 ADHD의 20% 정도는 성인 ADHD로 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고 하니 숨이 막혀왔다. 아이 대신 내가 아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찰나 모모가 하원을 하였다. 7살 해맑은 모모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한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이 나서 발을 구르고 뛰고 한 껏 상기된 기분을 몸으로 표현했다. 아직 눈치가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다시 나의 감정을 추슬러야 했고 다시 아무렇지 않은 모모의 엄마로 돌아와야 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모모가 등원을 하고 나면 오늘은 별 트러블이 없이 유치원 생활을 잘할 수 있을지 좌불안석이었다. 그리고 모모가 하원을 하고 나면 긴장은 최고조에 달았다. 모모의 유치원 담임 선생님이나 다른 친구들 엄마들의 항의 전화가 오는 건 아닌지 늘 난 긴장해야 했다. 저녁 9시가 넘어서야 모모는 잠이 들고 나는 좀 안정을 찾았다. 9시가 넘으면 더 이상 내게 전화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이는 잠이 들고 나는 매일 ADHD에 대해 공부했다. 답답할 때면 ADHD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들이 모여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에 들어가면 정도와 양상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지만 어찌 내 아들과 비슷한 아이들이 많은지... 밤마다 우울했다. 내일 아침 해가 뜨지 않고 이 고요한 시간이 멈춰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번번이 했다.



그렇게 매일 불안하고 우울한 감정들을 가슴에 품고 모모를 양육하던 때였다. 어느새 나는 없던 습관이 생겼다. 손톱도 모질라 발톱 심지어 발바닥까지 다 뜯어서 피가 났지만 난 그 행동을 멈출 수 없었다. 상처 난 발로 걸으면 아프고 피가 나왔지만 난 그 습관을 내 맘대로 멈추지 못했고 난 모모의 정신과 의사 선생님에게 찾아가서 나를 진료를 받게 되었다. 다면적 인성검사도 했으며 상담을 하고 상처 난 발을 보여드렸을 때 의사 선생님은 내게 약과 정신과 상담을 권하셨다. 우울증 약과 우울증 상담이 필요하다는 소견이 나왔다. 아이도 ADHD인데 나까지 우울증에 걸리다니 진짜 절망에 끝은 어디인지 좌절의 연속이었다.


" 모모 어머니, ADHD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하루 이틀에 끝날일이 아닙니다. 어머니 먼저 힘을 내시고 건강하셔야 아이를 올바르게 케어할 수 있습니다. 모모는 ADHD 약을 먹고 전두엽이 발달해지면 분명 좋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볼 때 어머니의 모습은 아주 위태롭습니다. 약물 치료가 시급합니다. 반드시 상담치료도 병행하셔야 합니다. 저는 모모보다 어머니가 더 걱정스럽습니다... "


공황장애도 단약하고 모모를 낳았는데 다시 정신과 약을 먹는다는 것이 썩 달갑지 않았지만 난 불안장애와 공황장애를 겪으며 약이 필요하다면 먹고 서서히 트레이닝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난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약을 복용해야 아이한테 불안과 우울로 어쩔 수 없이 가는 짜증과 화를 좀 줄일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 나는 내가 약을 먹는 것은 아무렇지 않았다.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이를 바로 고칠 수 없다면 나라도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걸어가야 하기에 난 주저 하지 않고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모모가 다니는 아동발달 센터에서 성인상담 치료도 시작했다.


아이가 아프다는 것, 이 것은 부모가 제정신으로 살 아 갈 수 없는 고통이라는 것을 나는 그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현재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약을 잘챙겨 먹이고 아이의 기관이나 동급생의 부모들로 부터 항의 전화를 잘 받아 맞서는 일 밖에 없다는 사실이 가슴에 뜨거운 바위 덩어리를 안고 가는 느낌이었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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