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복용한 첫 날 아이가 한 말
약을 두려워 말라. 약이 없는 것이 더 두렵다.
ADHD 판정을 받고 모모의 주치의 선생님은 ADHD 약물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다. 복용시기는 초등학교 입학 2~3개월 전에 먹기 시작하자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어차피 먹어야 할 약이라면 초등학교를 학교를 들어가기 1년 전쯤인 그때가 맞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는 아이는 자기가 절제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고 이미 타인에게 말 안 듣는 아이, 규칙을 지키지 않는 아이로 낙인이 찍히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ADHD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이 자주 찾는 카페에서 아이에게 맞는 ADHD 약을 찾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 케이스들도 많이 접했기 때문에 나는 불안했다. 유치원시기는 아직 어리니까 하는 생각이 통할 수 있는 시기지만 학령기는 달랐다. 아이들은 1년이 다르게 성장하고 인지하고 발달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속에서 다른 아이들과 비슷하게 살아가야 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아이에게 맞는 약과 용량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다.
그런 나의 생각에 의사 선생님도 반대하시지는 않으셨다. 필요하다면 너무 심하다면 검진 전인 6살에도 드물지만 약을 처방받아서 먹이는 사례도 없진 않았다.
ADHD약은 실제로 아이의 몸무게와 성향이나 증상의 정도에 따라 여러 가지 약물을 혼합해서 쓴다. 그래서 두통약 먹듯 두통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 알을 먹으면 효과가 생기는 약들과는 작용과 기전이 다르다. 공격성이 있느냐 불안이 얼마나 높으냐 등을 판단하여 각 ADHD 아이들 마다 복용하는 약의 종류와 용량이 다르다. 아이의 몸이 실제 약을 얼마나 민감하게 받아들이는지 아닌지도 중요하다. 처음에 모모가 처방을 받은 약은 아빌리파이 2gm이었다. 아직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알약을 먹어본 적이 없어서 캡슐에 들어있는 약의 가루를 꺼내서 물과 함께 복용하는 방식이었다.
ADHD 약을 복용한 첫날 아이의 반응
약을 유치원에 가기 전에 매일 챙겨서 먹이는 것도 일이었지만 아이에게 그 약이 무슨 약이라고 말해 주어야 할지가 더 막막했다. 며칠 동안 아이의 눈치를 보면서 뭐라 말을 할지 고민하던 나는 그 약을 두뇌 발달이 좋아지는 비타민이라고 소개했다. 약이라는 단어도 사용하기 조심스러웠다. 혹시 아이가 유치원에 가서 친구들에게 ' 나는 두뇌가 좋아지는 약을 먹어 '라고 말할 까봐 더 조심스러웠다. ADHD가 범죄도 비밀도 아닌데 나는 우리 가족이 아닌 타인이 모모의 ADHD에 대해 아는 것이 두렵고 싫었다.
강남지역 엄마들에게는 머리가 좋아지는 약이라고 성적이 잘 나오는 약이라고 일부러 아이들에게 처방을 받아서 먹인다는데 나는 선뜻 아이에게 약을 주지 모소하고 주저하기를 여러 번 끝에 아이에게 약을 먹였다. 아무렇지 않은 척 비타민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아이에게 먹인 후 아이를 유치원에 등교시키고 난 죄책감에 시달렸다. 어차피 먹일 약이라면 맞는 약의 조합과 용량과 찾는다고 빨리 처방을 해달라고 했지만 실제 내 손으로 아이의 입에 약을 털어 줄 때 그 감정은 아무도 이해하거나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죄책감반 걱정반으로 하루를 보내고 아이가 하원할 때쯤에 맞춰서 나는 유치원 차량이 서는 위치로 가서 모모를 기다렸다.
아이는 여느 때와 똑같이 한 껏 들뜬 마음으로 하원을 했다. 소량으로 먹이기 시작했으니 아직 별 특별한 반응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아이와 아파트 단지 오솔길을 걸어서 집으로 갈 때쯤이었다.
" 엄마, 나 오늘 선생님말 잘 들었다고 칭찬받았다. 오늘은 선생님 지시에 한 번에 따랐어. 오늘은 선생님 말이 잘 들렸어. "
나는 그렇게 말하는 아이의 표정을 보았다. 늘 하원할 때쯤이면 나도 모르게 오늘 했던 부적절한 행동이나 말 때문에 엄마에게 한 소리 들을까 긴장하는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한 껏 들떠서 나 잘했지? 하면서 뿌듯함까지 느끼는 듯했다. 그런 아이의 천진난만한 표정을 보고 나는 갑자기 울컥했다.
' 이렇게 미량의 약에도 아이는 반응을 하는구나... 그래 모모야 너는 나쁜 아이가 아니야. 너도 말을 잘 듣고 지시한 데로 하고 싶지만 너의 충동을 네게 억제할 수 있는 기능이 아직 충분히 발달되지 않은 거야. 너도 칭찬받을 수 있고 이제 너도 웃을 수 있어... '
울음을 참아 보려 했지만 자꾸 눈물이 흘렀다. 선생님 칭찬 한마디에 저렇게 좋아하고 뿌듯해하는 아이가 그동안 얼마나 조절이 안 되는 자신이 답답하고 속상했을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약이 모든 걸 해결해 주지 않지만 약은 필요하다.
ADHD 약을 먹는다고 아이의 ADHD가 치료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아이의 전두엽이나 전전두엽이 발달할 동안 아이에게 복용시키는 것이다. 복용하는 동안 아이에게 가르칠 것이나 좋은 습관 등을 알려주는 시간을 버는 것이다. 약에 따라 조금 차분해지는 시간은 다르지만 약기운이 사라지면 아이는 신데렐라처럼 마술이 풀리는 것처럼 각성이 높아지거나 더 부주의 해 진다. 약의 반동 때문에 실제로 보이기에는 약 기운이 사라진 후에는 더 산만하고 짜증을 부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해야만 했다. 사실 그 반동이나 아이의 변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파서 약을 먹이지 않는 부모들도 많이 봤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실제로 불안증과 공황장애로 정신과 약을 복용해 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아이에게 약물을 조금씩 늘리는 것과 꾸준히 복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과약은 용량은 적은 용량에서 시작해서 적응과 기전에 따라 약의 종류와 용량을 조절한다. 그런데 임의대로 부모가 아이의 약을 중단하거나 줄이면 아이는 부작용을 겪는다. 약을 줄일 때에도 중단할 때에도 교체할 때에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조절해야 한다. 그렇지 않았을 때에 약물이 한꺼번에 몸에서 빠지거나 변경되면 여러 가지 부작용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어지럽다던지, 속이 울렁거린다던지 두통이 온다던지 하는 반응들이 오기 때문이다. 부작용이나 반동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것이 얼마나 고통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정신과 약을 복용해 봤던 경험이 있던 나는 그것이 어떤 느낌이고 얼마큼 견디기 힘든 것인지 알기에 꾸준히 약을 먹였다. 그리고 약기운이 사라지기 전에 약의 도움이 받아서 각성이 조금 낮아지고 집중력이 올라왔을 때 아이에게 필요한 습관이나 루틴을 만들어 주는데 집중했다. 약기운이 다 떨어지면 모두 잃어버리거나 또다시 절제가 안되어서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같아도 아이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잘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더 반복하고 더 연습하고 습관과 루틴으로 만들어 놓아야 할 것들이 많다.
모든 약은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모든 약은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비교적 안전하다고 하는 약인 타이레놀에도 복용설명서를 보면 여러 부작용들이 명시되어 있다. 아마 그 부작용들에 대해 미리 읽고 타이레놀을 복용하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타이레놀 복용이 꺼려질 것이다. 나도 모모에게 ADHD 약을 먹이고 어떤 부작용애 나타날지 두렵고 걱정이 됐다.
모모에게는 어지럽고 매스꺼워서 밥을 잘 못 먹는 부작용이 있었고 아직도 있다. 한창 성장기인 아이에게 식용부진이란 부작용은 치명적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약을 계속 먹이고 의사 선생님과 상의를 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약의 조합과 용량을 찾아내려고 애를 썼다. 예민하고 눈치가 빨라서 사서 고생인 나였지만 그때만큼은 예민하고 눈치가 빠른 것이 도움이 되었다. 모모가 약을 복용하고 보이는 여러 부작용이나 기전과 반응을 빨리 알아차리라고 의사 선생님께 약과 아이의 반응과 현상을 전달하는데 도움이 됐다.
약을 점점 아이의 몸무게에 맞게 올리고 나서부터는 아이에게 없던 틱 증상이 생겼다. 자꾸 손의 냄새는 맡는 시늉이라던지 지속적으로 배를 누르는 동작이라던지 하는 횟수가 늘었다. 그래서 오전에 먹던 약을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 먹을 수 있도록 변경도 해보기도 하고 분할해서 아이에게 맞는 용량을 찾기도 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난 시점에야 비로써 아이에게 맞는 용량과 약의 종류가 파악이 되고 어느 정도 약에 대한 안정을 찾아갔다. 약을 먹고 조금 집중력이 올라온다던지 너무 높았던 각성이 낮아 진다던지 해서 조절은 많이 됐지만 아예 아무런 일이 없도록 아이가 괜찮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약의 역할이나 기능 그리고 목적에 대해 들은 후라 놀랍지는 않았지만 나는 매일 그 약이 마법의 약처럼 모든 것을 해주기를 바랬다. 하지만 약은 절대 그렇지 않다. 증상을 일시적으로 완화시켜주는 것일 뿐 모든 노력과 실행은 아이와 부모가 약기 운이 있는 동안 약간의 도움을 받아서 일상을 조금 수월하게 넘어가는 정도이다. 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어디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 모모에게 약은 꼭 필요했고 부작용이 있더라도 복용해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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