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겨울, 불행과 절망이 우리에게로 왔다

엄마의 촉은 빗나가지 않았다

by 이도연 꽃노을

엄마의 거짓말



2019년 *모모(아이 가명)가 태어난 1월이 되었고, 아이는 그렇게 7살이 되었다. 3년가량 주 5회를 감각통합치료, 놀이치료, 사회성 발달 치료를 받으러 아동발달 센터에 다녔다. ADHD 검사를 제대로 할 수 있다던 7살이 되던 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동시에 제발 ADHD가 아니길 바라면서 늘 두렵고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렸던 3년은 30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려 왔던 막상 그날이 되자 난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가 만약 ADHD 판정을 받게 된다면 난 살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검사를 피하고 아이를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아이가 다니는 기관은 물론 또래들 사이에서 아이가 배척당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모모에게 나는 검사 일주일 전부터 조심스레 검사에 대해 알려주었다. 아니, 난 모모에게 이렇게 거짓말을 했다.


" 모모야, 너 IQ 알지? "


" 응. 알아"


" 모모는 모모 IQ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지 않아? "


" 궁금해 "


" 그래? 그래서 엄마가 일주일 후에 IQ 검사 예약을 해놨거든..."


" IQ 검사 어떻게 하는 건데? 아파? "


" 아니,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문제 풀고 이야기하는 거야."


" 엄마는 어디에 있고? "


" 엄마는 모모가 검사할 동안 검사실 밖에서 있지 "


" 왜 엄마랑 같이 못 들어가? "


" 엄마는 검사 안 하니까 밖에서 기다리지. 외 할머니랑 같이 기다릴게. 잘할 수 있겠어? "


" 응. 선생님이랑 둘이 있는 건 싫지만 내 IQ 궁금하니까... 근데 화장실도 못 가고 오래 걸려? "


" 화장실은 검사 전에 한 번 갈 거고 검사 시간 동안에는 검사하시는 선생님 말 잘 들어야지. "


" 엄마 멘사 회원이 IQ 몇이랬지? 내가 148 이랬나? 148 넘으면 나도 멘사 회원이 될 수 있어? "


".........."



ADHD 검사라는 것을 아이에게 어떻게 말할지 몰라서 생각해 낸 궁여지책에 아이가 너무 흥미를 갖고 진진하게 나오니 가슴이 뜨끔하면서 괜스레 아이에게 미안해졌다.









기다렸지만 두려웠던 검사 당일


드디어 검사 당일이 되고 친정엄마가 우리 집으로 왔다. 나와 엄마는 서로 말이 없었지만 각자 서로 또는 따로 모모의 눈치를 보면서 모모를 챙겼다. 검사 당일 아이의 컨디션도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잠도 잘 재우고 잘 먹이고 모모의 산만한 행동에 이날만큼은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며칠 전 눈이 내린 것이 지속되는 영하 날씨에 녹지 않아 뒤뚱뒤뚱 펭귄처럼 검사를 하러 예약해 둔 아동심리 발달 센터로 향했다. 검사 시간 30분 전에 도착해서 그런지 임상 심리 검사 선생님은 아직 오지 않았고 우린 책이 꽂혀 있는 책장 앞에 자리를 잡았다. 친정 엄마와 나는 말이 없었지만 생각이 많았다.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 책을 그새 찾아서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검사해 주실 선생님이 도착을 했다. 모모는 선생님이 여자 선생님일 거라고 생각을 했는지 남자 선생님이 오자 긴장하면서 내게로 왔다. 어린이집 선생님도 유치원 선생님도 모두 여자 선생님이었던 모모에게 남자 선생님을 만나서 검사를 하는 것부터 첫 번째 난관에 부딪혔다. 그런 모모를 달래는데 10분 정도가 지연이 되고 모모는 다행히 남자 임상 선생님과 검사실로 들어갔고 검사실 문이 닫히고 묻을 걸어 잠구는 소리까지 들렸다. 아이들이 열고 나오지 못하도록 문의 상단에 설치한 잠금장치를 잠그는 소리가 모모를 영원이 못 만날 곳으로 보낸 것 마냥 무겁고 둔탁했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나니 중간 쉬는 시간이 주어졌고 아이는 안에서 검사한 문제들이 어떤 것인지 묻지도 않았는데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짧은 휴식시간이 끝나고 선생님이 부르자 모모는 가기 싫은 다리를 끌며 검사실로 향했다. 그렇게 나머지 2시간쯤 지났을 때 모든 검사가 끝나고 엄마와 임상심리 상담사 선생님의 면담이 시작됐다.


" 아이가 IQ 검사를 하는 거라고 흥미롭게 생각하면서 검사에 참여했습니다. "


" 네... 아이가 즐겨 읽는 WHY 책에서 IQ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아이가 숫자에 관심이 많아서 이번 검사를 IQ 검사라고 설명하고 데리고 왔습니다. "


" 아는 질문이나 문제는 쉽게 대답했고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는 책상 밑으로 들어가면서 집중을 못하는 모습을 보였어요. "


"네..."


" 집에서 아이를 양육할 때 특별히 힘든 점은 무엇일까요? "


" 나이에 맞게 해야 할 그런 과업들을 엄마나 아빠에게 대신해 줄 것을 많이 요구합니다. 예를 들면 양말을 신는 것이라던지 양치를 하는 것이라던지... 자신은 귀찮고 잘 못한다고 부정적으로 말하면서 대신해 달라는 요청을 많이 해요. "


" 그럴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


" 저는 양말을 찾아 주면서 신는 건 네가 하는 거라고 대치를 합니다. 아이 아빠는 크면 자연스레 하게 될 것을 아이랑 아침마다 실랑이하냐고 하면서 아이 아빠는 양말을 신겨 줍니다. "


" 아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나요? "


" 네.. 자꾸 유치원에는 엄마가 없어서 싫다고 합니다. 다른 아이들도 유치원에 엄마가 없기는 마찬가지인데 왜 아이는 자꾸 절 유치원에서 찾는지 모르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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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질문과 응답식으로 주양육자 면담을 끝나고 모모와 나와 친정엄마는 집으로 돌아왔다. 검사 결과는 일주일 후에나 나온다고 하니 궁금하면서도 답답하고 속이 울렁거렸다.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은 무슨 정신으로 일상생활을 했는지 모르겠다.











엄마의 촉은 빗나가지 않고 현실이 되었다



검사를 하고 일주일 후 아이와 친정엄마와 나는 모모의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갔다. 아이와 셋이 의사 선생님과 면담을 했고 아이는 잠시 나가 있게 되었다. 그리고 친정엄마와 나는 긴장을 하며 선생님이 하실 말씀에 귀를 쫑긋 세웠다.


" 아이를 검사한 보고서가 제게 전달되고 결과를 보았습니다. 모모는 우뇌와 좌뇌의 발달 차이가 많이 나는 편이에요. 검사 시 몰라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라는 장난스러운 어조로 응답을 많이 했으며 자주 딴 데를 쳐다보며 아예 응답하지 않는 경우도 잦았습니다... "


내가 아는 단어로 모든 것을 설명하시는 의사 선생님 말을 듣고도 난 뭔가 외계어를 듣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결론은 모모가 ADHD이라는 것인지 아니라는 것인지 더 혼란스러웠다.


" 그래서 모모가 ADHD 인가요? 아닌가요 선생님? "


" 보통 우뇌와 좌뇌의 차이가 많이 나는 경우에도 ADHD 판정을 합니다. 또 임상 선생님 관찰 보고서에. 컴퓨터화된 주의력 검사인 ATA에서는 모두 정상인 것으로 나왔지만 대면과 소통 상황으로 관찰된 모모의 모습은 음성과 청각 정보에 부주의하고, 낯설고 복잡한 정보 처리 요구에도 부주의하며, 지속적 통제를 유지하고 못하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모모는 주의-통제력 문제가 시사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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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모모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 진단을 받게 됐다.

그 순간 나는 세상이 어두워지고 무너지는 듯한 절망이 한순간에 밀려왔다. 3년 동안 아동발달센터에 열심히 다녔던 순간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지나갔으며 모모를 키우며 내가 의아해하고 어려웠던 순간들이 ADHD 증상으로 그랬던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나도 모르게 눈엔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검사 결과가 나오면 속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언제 괜찮아질 것인지 앞으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지 혼란스럽고 두렵기만 했다.









모든 비난은 주양육자인 엄마인 나에게로



남자아이들은 원래 이렇다고 말하던 남편도 정신과 의사인 아주버님도 모모의 검사 결과를 믿지 않는 눈치였다. 심지어 우리가 방문한 정신의학과 병원은 아주버님 동기분이 의사 선생님으로 계시는 곳이었기에 우린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ADHD가 80%는 유전으로 20%는 환경에서 온다는 이야기를 의사 선생님께 들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ADHD일까? 아니면 모모 아빠가 ADHD인 걸까 하는 의심에 빠져 살았다. 그러나 나도 모모 아빠도 ADHD 같진 않았다. 하지만 검사를 해야 알 수 있는 것이니 나와 남편도 검사를 해봐야 하나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의사 선생님께 모모의 아빠와 나중 누가 ADHD인 것 같냐고 묻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에서 유전이 되었는지 알아서 무엇을 하겠는가? 누구에서 유전이 되었다고 안다 한 들 모모가 ADHD인 것은 바뀌지 않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모의 ADHD 진단 후 난 나와 남편의 일상을 관찰해 보았지만 우리 부부 모두 ADHD 성향은 없어 보였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하자 나는 나를 돌아보게 됐다. 모모를 임신했을 때 난 공황장애를 앓았고 불안증도 있는 사람이다. 임신 시 태교는커녕 공황장애 때문에 숙면을 못 취하고 먹지 못한 것만 생각나면서 나는 자책감에 빠졌다. 모든 게 내 탓 같았다. 내 뱃속에 10달을 품고 있던 모모에게 문제가 생긴 건 모두 나의 불안증이나 공황장애 때문인 것 같았다.


친정엄마도 모모의 ADHD 진단에 충격적이셨는지 어린이 집을 일찍 보내서 그런 건 아닌지? 또는 내가 너무 엄하게 아이를 훈육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물어왔다. 나는 그렇게 내 아들이 ADHD 진단을 받음으로써 죄인이 되어야 했다. 아이를 낳기 전부터 육아 서적으로 보면서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순간들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 버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난 딱 살기가 싫어졌다. 자꾸 도망가고 싶어졌다. 비구니가 되던 멀리 이 상황을 뒤로하고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이 ADHD인 것도 모르는 채 자꾸 천덕꾸러기가 되고 사회 발달 및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 내 아이를 두고 도망칠 수 없어다. 누군가가 이 상황을 다시 온전하게 돌려놓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나여야 한다고 나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혼란스럽고 절망적인 상태에서 모모는 유치원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부적절한 언행과 행동으로 내 전화기는 아이 때문에 받는 전화가 지속적으로 왔다. 나중에는 전화벨이 울리면 가슴이 철렁하기까지 했으며 전화벨 공포증이 온 것 만 같았다. 아이를 챙겨야 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나는 나조차 어떻게 앞으로 살아가야 할지가 막막했으며 다시 나의 인생에 불행과 절망의 시련이 내 앞을 가로막는 것 같았다.



'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지? 왜 하필 나의 아이에게 이런 일이 생겨야 하는 것인가? '


그렇게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하고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나날들이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차라리 검사 결과를 해서 ADHD가 나오던 아니던 결과를 들으면 속이 시원하고 그에 대한 대처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결과를 받고 나니 그렇지 않았다. 더 답답해졌으며 혼란스러웠다. 2019년 겨울 난 내가 살면서 겪은 최악의 상황들을 떠올려 보았지만 그동안 내 앞에 지나갔던 불행과 고통들은 이미 아무것도 아니었다. 부모에게 내 아이가 아프거나 내 아이에게 치명적인 일들이 생긴다는 것은 최악 그 이상이기에... 세상이 무너져 버리고 모든 공기가 사라져 버린 것처럼 숨이 막혀 왔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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