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늦바람만큼이나 무서운 늦사춘기

by 이도연 꽃노을


인생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의 10%와
그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90%입니다. [찰스 R. 스윈돌]






태어나서부터 부모님과 함께 살 수 없었던 환경 탓에 나는 여기저기 친적집에 더부살이를 해야만 했다. 그런 나의 어린 시절 내 편이 없이 친척집에서 살아남는 비결은 어른들에게 인정을 받거나 칭찬을 받는 일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어린아이가 어른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인정욕구를 넘어 엄마 아빠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무서운 세상에 홀로 남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으로부터 나를 본능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나의 생존법이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다행히 친척집의 더부살이에서 탈출하여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됐지만, 마냥 행복할 줄 알았던 영화나 TV 속에 나왔던 가족의 단란함의 모습은 우리 가족에겐 없었다. 어린 나이에 나를 낳았던 엄마는 아빠를 대신해서 경제활동을 하느라 늘 지쳐 있었고, 군대에서 막 제대를 한 아빠는 더 나은 직업을 갖기 위해 느지막하게 대학을 갔다. 나는 매일 작은 단칸방에서 홀로 남겨지기 일쑤였다. 경제적 어려움과 일찍 결혼을 한 탓인지 오밀조밀 붙어사는 다세대 주택이 떠나가도록 부모님은 하루가 멀다고 부부싸움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변변치 않았던 세간살이는 이리저리 날아다니느라 남아나질 않았다. 엄마 아빠의 싸움이 잦아지는 새벽에 나는 겨우 쪽잠을 자고 학교에 갔다. 어린 나는 마치 간밤에 일어난 우리 집 상황을 이웃이나 선생님이나 알기라도 할까 봐 나는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착해지고 똑똑해지고 싶다는 생각에 공부에 올인을 했다. 그래야 나를 아무도 무시하거나 놀리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나의 노력은 계속되었고 결국 난 내가 좋아했던 미술을 전공하고 대기업 디자이너로 입사를 하였다. 어려운 환경과 슬픈 현실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서 무언가를 일궈낸 나 스스로가 자랑스러웠고 감격스러웠다. 오랜 시간 인내와 노력들이 나에게 화답을 해준 것 같아서 온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디자인이라면 한가닥씩 한다는 선후배들 사이에서 눈치보기 고단수인 나는 동기들보다 더 좋은 과가 점수를 받기도 했고 많은 인정을 받았다. 대기업의 위계질서와 사회생활은 나를 더 욱 더 나의 환경과 민낯을 감추고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도맡아 하면서 지냈다. 그렇게 3년가량을 경주마처럼 내 영혼과 뼈를 갈아 넣었더니 나는 삼차 신경통, 신경성 위염 등 스트레스로 인해 걸리는 병들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나의 광기 어린 일중독 증상을 멈추게 한 것은 잊고 살았던 첫사랑이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났을 때였다. 나는 잘 다니던 대기업을 하루아침에 그만두고 첫사랑과 결혼을 해서 동반 유학길에 올랐다. 그때 우리 부모님도 동기들도 다들 내게 미쳤다고 했지만 나는 퇴사를 감행했다. 더 이상 타인의 시선에 갇혀서 살지 않아도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난 그렇게 도망치듯 회사를 떠났다.








내게 내 세울 것은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근성 밖에 없는 맨몸이었다. 맨 주먹으로 24살 꿈에 그리던 L사에 신입사원이 되었을 때 나는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성공했다는 생각은 3년 만에 퇴색되어 버렸다. 브레이크 없이 인정과 실적을 위해 달리는 나를 내가 멈추지 못하고 지금 남편과 결혼을 해서 샌프란시스코로 떠났다. 지긋지긋한 디자인을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난 전공을 일러스트로 바꾸었다. 그렇게 3년가량 새로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것을 공부하고 졸업을 했다. 그리고 결혼한 사람의 숙제인 것 마냥 2세를 갖기 위해 노력을 했다. 결혼을 하면 당연히 생길 줄 알았던 아이 소식은 결혼 후 7년 동안 소식이 없었다. 그때 나는 내가 도전해서 안 되는 것도 있구나를 처음 알게 되었다. 환경은 어려웠지만 뭐든 마음만 먹으면 이루어질 때까지 해내는 나였기에 내가 하는 일에 실패는 없었다. 그러나 아이가 생기지 않아 나는 실패한 것 같았다. 마치 결혼을 하면 2세는 덤으로 주어지는 행복이라 생각했었다. 마음대로 되는 것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나의 성장과 노력들이 멈춰 버린 것 같아서 괴로웠을까? 그 쯤에 나는 이석증을 앓고 불안증에 걸리게 되었다. 불안증은 불안증에서 멈추지 않고 공황장애로 번졌다.


그때 나는 인생에서 크게 한 번 넘어져 생각했다. 열심히 살아서 대기업까지 갔다가 그것도 내 발로 내가 스스로 차고 나와서 타국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때도 나는 열심히 노력하는 것에 익숙해서 2세 갖기에 걸림돌이 될 공황장애에서 벗어나려고 온갖 서적을 뒤져서 공부를 했고 약물치료와 셀프 치유법으로 공황장애를 극복하고 드디어 임신에 성공했다. 하지만 임신에 성공이 되자 완전히 나은 줄 알았던 공황장애가 다시 내게 찾아왔다. 임신 중에 찾아온 공황장애는 나뿐만 아니라 뱃속 아이까지 위협을 했다.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한 번에 잘 죽을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있었고 정신을 차려 보면 달려오는 차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까지 느꼈다. 하지만 어려운 시기들을 이겨내 왔던 것처럼 나는 또 한 번의 고비를 이겨내고 마침내 아들을 출산하였다. 나도 엄마가 된 것이 처음이라 미흡한 점도 많았겠지만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엄청난 고되고 어려운 일이었다. 경제적 어려움과 가정의 불화로 어려움을 겪었던 시절과는 또 다른 결이 어려움이었다. 그래도 나의 숙명이겠지 하면서 나는 열심히 아이를 양육했으나 아들이 7살이 되던 해 아들은 ADHD 진단을 받게 되었다. 그쯤 되니 나의 인생은 저주받은 인생 같았다. 태어날 때부터 외로웠고 힘들었는데 왜 자꾸 불행이 내 인생에 끼어들어서 태클을 거는 것인지 미치고 환장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종교는 없지만 모든 신이 있다면 다 욕해 주고 싶었다. 열심히 공부했던 공황장애 완치법 책도 아이를 키우기 위해 읽었던 많은 육아서적들도 다 갔다 버렸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헤어 나올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의 불씨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오면 내가 살아 있지 않길 바랐고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들로 무수한 밤을 보냈다. 점점 집안일도 하지 않고 침대와 한 몸이 되어서 나도 나를 어떻게 다시 일으켜야 할지 모르는 상황까지 왔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과거의 나의 선택들에 대한 후회로 얼룩져 갔고 희망 없는 미래가 두려워한 발짝도 일어설 수 없는 불가항력의 상태가 되었다. 그때 나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서 전문가를 찾아갔다. 역시 중중도 이상의 우울증으로 판결이 났고 나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심리치료를 병행할 적극 권유했지만, 내 마음속에는 부정적인 생각들로만 가득 차 있었다.


' 나의 인생은 저주받았구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면 또 운명은 나를 시궁창으로 밀어 넣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내 인생의 좋았던 기억들은 불운하고 굴곡진 경험들로 검게 뒤덮여 부정적인 생각들로 바뀌고 있었다.










과거의 좋지 않은 기억에 메립 되고 미래의 불확실한 속삭임이 항상 충돌하여야 내 마음에는 항상 거센 파도가 쓰나미처럼 밀려들었다. 모범생이었고 착하게 열심히 살아온 내게 불행만 찾아오는 것 같은 생각에 무교지만 더더욱 이 세상의 신이란 신은 진짜 없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불만 가득한 일상과 내게 주어진 역할들을 수행하기가 너무 버거움을 느낀 나는 우울과 번아웃을 선언하고 속세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내겐 이미 나의 도움을 누구보다 필요로 하는 아들이 있었고, 주의력이 없고 과잉 충동이 있는 나의 아이에게 마구 손가락질하고 비난을 멈추지 않는 냉혈한 타인들이 있었다. 나는 가버리면 그만이지만 내 아이는 태어나길 선책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엄마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에 괴로웠다. 이미 생각만 있을 뿐 나는 나 자신 스스로를 일으킬 힘조차도 없는 상태였기에 나는 아이에 대한 마지막 책임감으로 심리치료실의 문의 열고 들어가서 전문가에게 살려다라고 매달렸다.









[ 뼈 때리는 내 인생의 오답 노트 ]는 내가 2년 가까이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자각하게 된 내 인생의 오답에 대해 썼다. 어릴 때도 겪지 않았던 갑작스러운 중년의 사춘기의 시작과 숨 막히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소란스러운 지형을 가로지르는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약 2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으며 깨달은 나의 잘못된 선택과 오만, 그리고 막다른 골목으로 가득 찼던 내 삶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확실성에 굶주린 세상에서 잘못된 선택과 나라는 북극성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던 지난날들을 회상하면서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오답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답을 모른다면 오답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정답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의 외로운 여정을 글로 적었다.


인생의 막다른 길목에서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들과 씨름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다면 내가 찾은 인생의 오답들을 여러분은 선택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울과 번아웃 그리고 사춘기까지 한 번에 찾아온 것 같았던 내 삶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공감과 위로가 되길 바란다. 깨달음으로 가는 길은 함정과 함정으로 포장되어 있기 때문에 위험이 따르는 여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한 번은 내가 걸어가야 할 여정이었다. 역경의 도가니 속에, 깨어진 꿈과 깨어진 경험의 잔해 속에 구원과 갱신의 기회가 놓여있다. 나의 삶 속에서 내가 살아가야 할 의미와 목적을 잃고 헤매고 있다면 우울이 온 지금이야 말로 나를 냉철히 바라보고 진짜 나를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내면에 숨겨져 있는 파악하기 어려운 진실을 찾기 위해 잘못된 답의 미로를 통과하는 여정은 매우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꼭 한 번은 내 인생에서 겪어야 할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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