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내 삶의 1순위를 양보하지 말라
내 삶에 북극성을 잃어버린 후
나는 무수한 밤을 우울과 불면증으로 시달려야 했다.
내 인생에서 주인이 되어야 할 내가 내 인생의 1순위가 아닌 순위밖으로 밀려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내 인생 45년의 서사들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고통스럽고 혼란 그 자체였다. 부족한 것이라고는 가정환경과 경제적인 여건이 좋지 않았을 뿐 내가 도전하거나 계획하는 모든 것들을 해내는 악바리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모든 것이 한 번에 순탄하게 풀리고 편안하게 이루어 냈다면 거짓말이다.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은가? 절차탁마(切磋琢磨) 하지 않고서는 과탑도 전공을 살린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의 사회 초년생의 모토는 '포기'란 배추 셀 때나 쓰는 거라고 생각하며 내가 가진 백그라운드에서 최고의 성공을 위해서 나는 앞만 보고 달렸다. 소위 내 나름대로 계획한 성공의 반열에 올라 보니 내가 꿈꾸던 대기업의 일은 만만치 않았다. 큰 조직에서 다양한 성격의 많은 부류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일을 하는 것은 학생 때와는 또 다른 결의 어려움과 고충을 수반했다.
맨 몸하나로 성실함과 노력하나로 대기업에 입사한 나는 다시 타인에 의해 평가가 매겨지는 신세가 되고 엄격한 위계질서에 또 한 번 살아남기 위해 긴장을 해야 했다. 조직은 개인 삶과는 달리 나 혼자만 잘한 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원하는 회사에 입사를 하고 그 회사에 뼈를 묻을 것처럼 일을 하던 나는 3년을 못 채우고 퇴사를 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남편과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유학의 길에 올랐다. 2년 반 만에 졸업을 하고 나는 외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외국인 신분으로 정규직 일자리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기혼한 여성의 의무감을 빨리 벗어던지려는 듯 2세 준비에 돌입을 했지만 졸업 후 4년 동안 임신은 되지 않았다. 해외 취업 그리고 2세 만들기까지 몇 년의 고배를 마신 나는 내 인생에서 내가 해서 안 되는 것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모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나의 오만이었다.
나의 우주에 선명하게 떠있던 북극성이 점점 희미해지고 깜빡거리다 완전히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오던 나는 나의 북극성이 사라진 뒤 내 인생의 방향과 목적이 모두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나는 내 생애 최초 이석증과 불안증 그리고 공황장애를 차례대로 겪게 된다.
무수한 밤을 나는 지금 누구이며 어디이고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원초적이고 정답이 없는 질문들이 내 머릿속에서 핑퐁을 했다. 그렇게 잃어버린 북극성을 다시 제 위치로 돌려놓을 방법은 없어 보였다. 그때부터 나의 삶의 1순위를 타인에게 양보한 사람처럼 살았다. 반듯하고 착실하던 똑순이는 어딜 가고 인생의 낙오자가 되어버린 것 같은 헛똑똑이만 남아 삶의 의미를 잃고 우울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 되었다.
열심히 공부만 했기에 다른 경험이 전무한 나의 인생이 너무 허무했다. 교육과 내가 배웠던 것만 해오던 삶에서 내가 해보지 않았던 인생의 역할들이 늘어만 갔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 7년 만에 아들을 낳은 후에는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며느리, 그리고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야 했다. 모든 것을 책으로 배우고 익혔던 나로서는 아이를 양육한다는 것은 대단한 어려움이었다. 갑자기 현저히 변해버린 삶의 패턴에 나는 헤매고 또 헤맸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시기에 나는 육아서적을 열심히 읽고 공부하여 좋다는 양육법을 내 것으로 만들어서 아이에게 정성을 쏟았다. 나의 북극성을 잃은 나는 아들이 마치 나의 북극성인 것 마냥 올인을 했다.
나만의 북극성을 잃은 나는 점점 모든 면에서 나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결정장애를 겪었다. 나에 대한 의심은 나의 생각과 선택을 멈추게 했다. 그럴수록 나 다움의 색은 모두 바래 희미해지고 타인의 생각과 결정이 나의 삶을 지배했다. 나의 삶의 1순위를 타인의 기준으로 가득 채운 나의 삶은 이리저리 흔들리고 휩쓸렸다. 그럴수록 나는 무엇이 문제 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우울과 공황장애 탓을 했다. 그리고 다 나은 것 같다가도 다시 잊을만하면 고질병처럼 내 삶에 끼어드는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나를 짚어 삼키고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 그리고 그런 삶에 정점을 찍은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바로 내 아이가 ADHD 진단을 받았다. 그쯤 되니 나의 삶은 실패와 희망도 끝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나의 생각과 판단과 모든 선택은 멈춰졌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침대와 한 몸이 되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 내 삶은 끊임없이 추락했다. 더 이상 나라는 사람은 온 데 간데없고 한 사람의 아내, 그리고 한 아이의 엄마로 24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아이의 주의력 결핍과 과잉행동 장애 때문에 타인으로부터 비난을 들어야 했으며 무슨 범죄자가 된 것 마냥 숨죽이고 조용히 살아야 했다.
북극성을 잃은 내가 양육하는 아들도 나의 감정과 나의 심리를 그대로 닮아가는 것을 느끼고 나는 그제야 심리치료 센터를 찾게 됐다. 아침에 일어나서 심리치료 센터까지 가는 것 자체가 미션이 돼버릴 만큼 나는 무기력했고 나의 정서 상태는 최악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힘이 라도 짜내야 했다. 나의 감정과 선택이 아들한테까지 여파가 간다니 나는 반드시 그 정서의 대물림을 막기 위해 힘을 내야 했다. 그리고 심리치료 1년 반 남짓 만에 나는 알게 되었다. 내 인생의 주최인 내가 내 인생의 1순위가 아닌 순위 밖 저 멀리 떨어져 나간 것을...
내와 같이 살고 있는 배우자도 내가 낳은 아들도 타인이다. 나 아닌 타인이 내 삶의 1순위가 되면 내 삶의 질서와 내 삶의 질서가 무너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북극성을 다시 내 우주에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짝이는 새로운 북극성을 새로 세우고 내 인생의 1순위를 타인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타인에게 나의 1순위를 양보하지 않을 것을 다짐해 본다. 나의 결혼과 나의 출산이 나의 정체성과 내 인생 모두를 입증해 주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의 북극성이 잘 보이는 자리에 나를 나의 삶의 1순위로 위치해 두고 타인들을 적정한 거리에 재배치를 하고 있다. 여러분의 북극성은 여러분만의 하늘에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나요?
오늘도 우울과 공허함 그 어디쯤에 감정이 표류하고 있음을 느끼신다면
여러분의 북극성이 마딸이 있어야 할 지리에 위치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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