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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러브스유 Mar 22. 2024

숨 쉬는 타이밍을 잊은 고래

내 감정과 나의 내면의 소리를 외면하고 살아온 나의 삶



가장 강력한 관계는 나 자신과의 관계입니다.
[ 스티브 마라볼리 ]





수요일 오전 9:45분 긴장되는 마음으로 심리치료 센터 소파에 앉아서 10시에 시작할 심리 치료 수업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여러 개의 방문 중 가장 끝방의 방으로 나는 안내되었고, 마주 볼 수 있도록 배치된 상담 테이블 맞은편에는 나보다 인생을 10년쯤은 더 많이 사셨을 것 같은 심리 상담 전문가가 나를 부드러운 미소로 맞아주었다.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시작되었고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에피소드를 꺼낼 때마다 상담사 선생님은 내게 줄 곧 이런 질문을 했다.


" 그때 기분이나 심정은 어땠을까요? "


50분 정도 진행된 심리치료에서 주된 질문은 나의 그때 감정이나 생각들을 묻는 질문이었다. 참 쉬운 질문처럼 보이지만 그 질문을 받고 지난 나의 감정을 떠 올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분명 겪은 일들이었고 나는 그 상황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내 감정을 쉽게 규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대부분 한 참을 생각해서 " 괜찮았던 것 같아요." 아니면 " 참아야 했어요 "였다.


괜찮았던 것 같다는 대답은 내가 그때 느꼈던 감정에 확실성이 없지만 상담사가 묻는 질문에 대답을 해야 했기에 쥐어짜서 대충 그쯤 어딘가에 머문 나의 감정을 이야기한 것이었다. 참어야 했다는 것은 내가 처한 현실을 팩트에 대한 설명과 대답일 뿐 무조건 참아야 했던 그때의 내 감정을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로 명명하지 못한 것이다.










몇 달을 걸쳐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끝이 나고 현재의 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을 때도 나는 같은 경험을 했다.


" 요즘 도연씨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 것 같으세요? "


" 아들이 6살 때부터 ADHD 판정을 받고 매일 아들과 전투하듯 살고 있습니다."


" 전투하듯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볼까요? "


" 매일 긴장하면서 아침을 맞아요.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부터 되고 아들의 식사와 약을 챙기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죠. 그리고 아들이 하교하면 엄마표 공부를 합니다. 그리고 가방을 혼자 잘 못 챙기고 덜렁거리는 아들의 준비물 챙기는 것을 도와줍니다. 그리고 아들이 잠들 때까지 아들에게 책을 읽어줍니다. 이런 생활이 6년 정도 반복이 되었죠. "


" 전투라고 느낄 정도이면 꽤 힘들 텐데 어떠세요? "


"........... 힘들긴 하지만 제가 낳은 아들이고 제가 다 떠 앉고 가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럼 그런 하루를 보내고 어떤 기분이 드나요? "


" 힘들죠. 근데 다른 엄마들도 다 이렇게 아이를 키우지 않나요? 아이를 키우는 것은 원래 쉬운 게 아니니까요."


내가 낳은 자식에 엄마라는 역할로써의 마땅히 해야 할 도리와 책임감에 똘똘 뭉쳐 나를 잊고 사는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때가 되면 수면 위로 떠올라 숨을 쉬고 다시 들어가 유형하는 고래가 아닌 인생의 바다에서 거친 파도를 거스르고 헤엄을 치느라 숨 쉬는 것도 잊어버린 어리석은 고래가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심리 수업을 2년 가까이 듣고 있지만 심리 수업을 듣는다고 해서 심리 선생님이 나에게 자기 계발서에 나온 명쾌한 해답을 던져 주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내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을 법한 질문들을 내게 던졌다. 처음에는 당연히 ' 힘들고 지치고 고통스러운 것을 왜 묻나 싶었다.' 들어보면 내 심정이 어떨지 연상이 안되나 싶기도 했다. 이미 시간이 지나 질문을 해도 소용없을 것 같았던 과거의 감정들이 무슨 소용인가 싶었지만 심리 치료 1년쯤 되니 난 그 질문들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기억력이 좋고 과거를 회상하는 것을 즐겨하는 내게 중요한 것은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때 느꼈던 기분과 생각들이 해소되지 않은 채 현재인 오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감정을 해소하려면 일단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인해 어떤 감정이 일었는지를 자각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 메커니즘은 바쁘게 돌아가는 일정과 많은 에피소드들에 매몰되어 나의 감정 따위는 신경 쓰고 있지 않고 살았다는 생각이 어느 날 번뜩 들었다. 그 걸 느낀 후부터 나는 감정의 단어에 대해 공부하고 내가 어떤 생각이나 어떤 일을 할 때 나의 현재 감정의 카테고리는 어디에 속하는지 분류하고 명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명명한 감정이 이리저리 해소되지 않고 둥둥 떠다니며 나를 괴롭히지 않도록 그 감정에 맞는 해소법들을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슬프면 울고, 화나면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면서 내가 맘껏 그 화를 눌러 버리지 않고 해소할 수 있는 장소나 활동을 찾았다.


그렇게 내가 찾은 감정을 해소하는 활동은 브런치 글쓰기였다. 브런치 작가에 도전해서 작가 승인이 나서 쓴 나의 글들을 보면 화풀이에 가까운 내 과거에 대한 회한들이 대부분이다. 독자들이 0명이었기에 나는 내가 느끼는 모든 것을 토해내듯 글을 썼다. 그리고 독자들이 늘어날 때마다 감사했다. 나의 해소되지 않고 잔류했던 감정이나 생각들에 공감을 받다 보니 더 치유되는 경험을 했다.








눈앞에 놓인 일생의 과제와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급급해서 가장 중요한 숨 쉴 타이밍 마저 잊고 사는 사람 같았다. 불안증을 넘어 공황장애까지 오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이치 같았다. 나의 감정과 나의 숨쉬기를 돌보지 않았던 나는 누구보다 나와 친절하고 다정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이다. 타인에게는 누구보다 친절하고 나의 삶의 시간을 깎아 먹으면서 도와주려고 했던 나의 모습에 실수가 나왔다. 나 먼저 숨을 쉬고 내가 나의 감정을 알아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에게 준비물을 챙겨주고 공부를 가르쳐 주는 것 대신에 나 자신의 감정 먼저 알아주었다면 아들에게 더 많은 미소와 안정을 선물해 주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매 순간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이 나의 가슴을 지나쳐 가는지 세심히 관찰한다. 내가 내 감정을 알아차려 주는 것 만으로 나는 나 자신과 친해지고 다정해졌다. 어떤 모양의 삶을 살고 어떤 무늬의 인생의 이벤트를 지나가던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자. 처해진 현실과 마땅히 해야 하는 일에 매몰되어 나를 돌보지 않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타인과 관계를 맺기 전에 나는 나와의 관계가 건강해야 타인과의 관계도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이미지 출처: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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