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한 것인가? 선택당한 것인가?
인생은 선택의 문제이며, 모든 선택이 당신을 만듭니다.
[존 C. 맥스웰]
계절이 바뀌면 옷장을 정리한다. 특히 봄이 되면 두꺼운 옷은 정리한 후 따듯한 봄 볕에 나갈 옷을 입으려고 옷 장을 열면 한 참을 고심한다. 옷들이 많이 걸려있는데도 입을 옷은 늘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뭇가지엔 새싹이 돋고 벌써 봄 꽃은 꽃망울이 맺혀 더 늦기 전에 옷 정리를 하려고 클로셋을 열고 내 옷들을 바라보았다. 겨우내 즐겨 입던 은장 버클이 있는 검은색 패딩도 있고, 15년 전 아이를 낳기 전에 유학시절에 입었던 꽤 두꺼운 집업들도 여러 개 눈에 띈다. 분명히 정리해 두었고 이사를 다닐 때마다 오랫동안 입지 않았던 옷은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내 옷장이 낯설게 느껴진다. 엄마가 두 개 샀다며 내게 준 보라색 꽃무늬 실크 스카프도 보이고 아들과 함께 입으려고 같은 캐릭터가 그려진 담요 재질의 잠옷도 눈에 띄었다. 평소엔 별 이상함은 느끼지 못하고 입곤 했지만 지금 옷장 전체를 한 걸음 물러서서 보니 여기저기에서 오합지졸 옷들을 모아 놓은 것 같았다. 심지어 내가 선호하지 않은 색의 모자부터 몇 년 전부터 나이와 스타일과 때에 맞지 않아서 모셔두었던 밍크코트도 보였다. 새 옷에 가까워서 아까워서 못버리던 옷도 앞으로는 내 취향이 아니어서 입지 않을 오시지만 고이 모셔둔 옷들을 이번에 기필코 정리하기로 했다. 정리를 하면서도 몇 번을 망설이고 버릴 옷과 버리지 않을 옷 더미 사이에서 여러 번 오가는 옷들도 있었다.
결국 기준은 명확하게 새워놓고 옷을 한 개씩 정리할 때마다 기준을 넘나드는 다양한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 아이 학교에 갈 때는 이런 옷이 한두 개쯤은 필요한데? '
' 내가 잘 안 입지만 요즘 유행하는 핫템을 버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
' 내 취향은 아니지만 준 것을 그냥 버리긴 아깝지 않은가? '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어느새 정리해야 할 옷들도 다시 잘 정리해 둘 옷들 사이로 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정당함을 찾아보지만 내 취향이 아닌 옷과 내 취향은 아니지만 왠지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옷들 사이에서 나는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었다.
갑자기 옷 정리를 하다 말고 2단 서랍장에 걸터앉아 그동안 내가 살아오면서 했던 많은 결정과 선택들이 떠올랐다. 전공을 정하고, 가고 싶은 대학을 정하고 또는 입사할 회사까지... 꽤나 만족스러운 선택이었고 좋은 평판을 받으며 잘 지냈지냈기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흔이 넘어 지금 다시 돌이켜 보면 내게 다시 선택할 기회가 생긴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 같은 것들도 꽤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 결정을 할 때 보다 인생을 더 오래 살았다. 또 한 번 가본 길에 대한 결과를 알고 나니 다른 길도 선택해 볼 걸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겠지만 뭔가 많이 허전하고 공허했다. 후회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때 어떤 기준으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 엄마도 아빠도 미술을 꽤나 잘하셨으니 어렸을 때 본 것이 그림리는 모습이었으니 나도 당연 그것을 해야 화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 것은 아닌지...'
' 남들이 다들 들어가고 싶어 하는 기업이니까 나도 그곳에 가야겠다고 생각해 버린 것만 같은...'
옷장들의 옷도 그랬다. 누군가 네가 이게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해서 충동적으로 구매한 옷부터, 내가 사회적 위치나 나이에 어울릴만한 옷은 이런 옷이어야 한다는 나의 얄팍한 고정관념에 구매한 옷들도 있다. 이러한 수많은 결정과 선택을 할 때 나는 나 자신에게 묻지 않았다.
' 이 스타일이 나와 어울리는가? '
' 지금 이 옷이 필요한가?'
' 내가 입고 싶은 스타일은 옷은 무엇인가? '
내 스스로가 나를 탐구하고 내 마음이 진정 원하고 바래서 결정한 것들은 관연 몇 퍼센트 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조금 더 손해 보는 방향과 사회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선택하는 것들에 익숙했던 나는 개인 취향과 성향으로 호불호를 가려낼 수 있는 것들마저 내가 선택하지 못하는 결정 장애의 연속인 일상 같았다. 개인 취향이나 호불호는 어떤 것을 선택하던지 존중받아야 마땅한 것들까지 내가 아닌 주변의 시선과 기대 등에 의존해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선택했지만 선택됨에 익숙해서 내가 직접 선택했다고 굳게 믿으며 직접 선택했으니 후회 따위는 하지 않는다는 나의 개인적 삶의 신념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럴까 저럴까 선택을 망설이던 옷들을 미련 없이 버리니 부족했던 클로셋이 넓게 느껴졌다. 그리고 남아 있는 옷들을 바라보았다. 점점 무채색을 즐겨 입고 내가 좋아하던 보라색은 포인트가 되는 잡화로 정리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필요 없는 관계를 정리하듯 절 반 정도의 옷들만 남아 있었지만 더 알차고 맘에 들었다.
매 순간 선택을 하고 그 선택들이 모여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중요한 선택의 순간들과 기회를 나의 기준이 없이 외부의 의견이나 사회적 시선에 맞춰서 이게 옳은 것이라고 자기 기만을 하고 있다면 잠시 멈춰서 생각해 보자. 지금 내가 선택을 하고 있는지 선택을 당하고 있는지.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선택을 당하기를 선택한 것은 아닌지 면밀히 따져 보아야 한다. 순간의 선택은 짧고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마흔 쯤 넘어서 생각해 보니 그 선택이 하나씩 이어지며 나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적어도 내가 먹는 음식 내가 사는 집 또는 내가 타는 차 등 내 기회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것들까지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의견으로 선택하지 않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
더 나아가서는 아들과 남편 또는 타인들에게 내가 그 들의 기호까지도 섣불리 조언하고 선택해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을 해볼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남편과 아들도 내가 아닌 타인이기에 그들이 자신이 입을 옷이나 사고 싶은 책 등을 선택할 기회가 있지 않은가? 오늘도 나는 나의 남편과 아들에게 조언과 선택에 대한 의견을 아끼게 된다. 그리고 내가 선택해야 할 것들에 대해 내게 맞는 것인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인지 나의 의견을 묻는다. 선택되어지는 삶이 아닌 조금 더 선택하는 주도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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