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자, 셀프 검열, 내 철칙
"완벽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훌륭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 un known ]
안되면 될 때까지, 이미 다 해놓은 일도 더 좋은 생각이나 방법이 떠오른다면 나는 그 일을 새로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이런 성격과 습관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최고 정점을 찍었을 때는 유학시절이었다. 이미 한국에서 산업디자인과를 졸업을 하고 대기업에 입사까지 했던 나는 디자인에 대한 회의를 느꼈기에 일러스트로 전공을 바꿔서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AAU( Academy of Art University)에 입학했다. 컴퓨터로 주로 작업을 해야 했던 디자이너와 달리 손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붓을 씻어가며 수채화로 채색을 하는 작업의 뒷정리는 번거롭지만 다시 미술을 처음 시작하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하나하나 여러 재로들로 표현하고 직접 수작업으로 과제를 마쳐야 했다. 한 주에 전공 4~5개를 들었기에 항상 과제에 빠져있었다. 늘 그렇듯 쉬고 싶어도 과제를 미루면 마음에 걸려 다른 일을 집중할 수 없는 성격인 나는 학교를 갔다 오고 바로 과제를 시작했다. 보통 한 개의 일러스트를 그리는데 6~8시간은 걸렸고 그날 받은 과제는 그날 끝내자 주의였던 나는 늘 과제가 나온 첫날에 과제를 끝냈다. 그리고 다음 날에도 다른 과제가 나오면 그 과제를 충실히 했지만 내 맘에 들지 않은 날에는 내 자체 검열에서 리젝을 시켰다. 그리고 다시 그리고 맘에 드는 작품이 나올 때까지 반복해서 맘에 들게 나온 최종 과제를 교수님께 제출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일찍 과제를 시작했더라도 내 셀프 검열에 걸린 작업들을 다시 하느라 늘 시간에 쫓기는 듯했다.
내게 주어진 일과 맡은 바를 열정을 다해서 최선의 다하는 삶과 사람은 참 멋져 보이던 그 시절 나는 그렇게 멋진 사람이 되고 싶어서 나를 채찍질하고 셀프 검열에 엄격했다. 뭐든지 내가 한 것은 완벽하게 하고 싶었다. 한국에서 이미 미대를 나왔다는 생각도 더 완벽해야 된다고 나를 부추겼다. 함께 유학길에 올랐던 남편은 종종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 잘해놓고도 늘 자신이 한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네가 행복해 보이지 않아...."
아직 20대였던 나는 그 말을 듣고 열심히 하는 게 뭐가 잘 못된 것이라는 것인가? 난 늘 A+를 맞고 좋은데 남편은 왜 저런 말을 할까? 하며 남편의 말에 공감도 이해도 못했다. 그리고 분명 내 눈으로 봐도 일러스트 그림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것이 보였다. 첫 번째 학기 두 번째 학기를 지나 한 학년을 마치고 나의 일러스트 대부분은 스프링쇼 (학교 자체 전시회)에 선택되고 전시가 되는 기쁨들이 짜릿했다. 그동안 내 영혼을 갈아 넣은 것들에 대한 보답인 것 같아서 뿌듯했다. 그렇게 나는 순조롭게 다음 학년에 진급하고 둘째 년도가 되었다. 그때부터는 어쩐 일인지 나의 그림은 늘지 않았고 나는 슬럼프에 빠진 것 같았다. 그래도 매주 과제를 해서 내야 했고 나는 더 많이 더 여러 번 과제를 새로 해야 했다. 내가 과제를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닌 과제가 나의 인생을 끌고 가는 것 같은 생각까지 들 정도로 나는 나의 과제가 맘에 들지 않았다. 여러 번 수정하고 다시 했지만 시간이 없어서 제일 마지막 것으로 내야 할 때는 교수님의 점수가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실망과 화가 났다.
'내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나? 내 그림은 왜 안 늘지?' 하는 생각에 조바심도 많이 났다. 마치 하루라도 성장하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수업 중에 과제를 미리 시작해야 했던 동화책 일러스트 수업 시간의 일이다. 모두 자기 자리에 앉아서 자신이 그릴 동화책 주제와 캐릭터를 정하고 빠른 친구들은 채색까지 하고 있었다. 나도 채색을 하고 있었고 채색한 색 조합이 많이 들지 않아서 채색하던 도화지를 반으로 접고 다시 밑그림을 그리고 채색을 새로 시작했다. 그런 나를 유심히 지켜보던 교수님이 내게 다가왔다. 한참을 나의 채색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 네 그림 실력이 왜 빠르게 향상했는지 이제 알겠어. 그렇지만 일러스터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앞을 멀리 내다봐야 하지. 일러스트레이터는 단거리는 뛰는 게 아니라 장거리를 뛰는 거거든. "
그때부터 나는 요즘 나의 그림 정체기에 대한 속상함을 교수님께 토로하기 시작했고 교수님도 그런 시간들을 겪었다면서 공감을 해주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 네가 보는 나의 일러스트는 내가 30년 동안 열심히 해온 결과란다. 나는 대학교 시절 너만큼 그리지 못했지. 아주 형편없었어. 하지만 나는 그 순간을 즐겼고 나를 믿었고 아직도 나의 일을 사랑하면서 살고 있지. 모든 것엔 순서가 있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꾸준히 그 순간을 즐기면서 그리는 것도 아주 중요하지. 너는 지금 이 일을 순간이 행복하니? "
그때 교수님께 대답은 못했지만 나의 내면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과제를 행복으로 하는 사람도 있나? '
그런 말을 들은 후에도 나의 작업 스타일이나 마음가짐은 바뀌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슬럼프를 극복하고 난 뒤에도 내가 세워둔 나의 철칙 속에 살았고 나에 대한 셀프 검열은 늘 삼엄했다.
그렇게 나는 우수한 성적으로 유학생활을 마쳤다. 그때 작업한 작업 물들을 지금 물끄러미 보면 많은 생각들이 든다. 내 일러스트들은 하나같이 여전히 잘했지만 뭔가 중요한 것이 빠져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빠글 하고 고군분투한 흔적이 선명하지만 난 그 일러스트를 그릴 때 순간을 즐기고 있지 않았다. 내 일러스트는 지금 봐도 뭔가 타이트하고 긴장감이 흐르는 느낌이다.
나의 완벽함을 추구하는 성격은 종종 나의 일상과 순간을 불만감으로 채워지기 일쑤였다. 불완전한 순간과 과정에 의미를 두고 찰나의 순간들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고 살았던 지난 몇십 년은 늘 열심히 했지만 마음은 공허하기 일쑤였고 뭔가 이루고 나면 허무했다. 이제 마흔이 넘어 느끼고 배우게 되었다. 인생의 모든 것을 나의 숙제처럼 반드시 시간 안에 끝내야 할 일처럼 살지 않을 것임을.. 완주해서 끝낼 경주처럼 살지 않을 것을.
그동안 완벽주의적 성격에 빠져 나를 끊임없이 검열한 결과 나는 하루도 치열하지 않은 날은 없었다. 나는 내게 엄격했고 나는 내게 다정하지 않았다. 더 잘하라고 질책하고 채찍질했다. 그러는 동안 나의 영혼은 서서히 시들어 갔다. 훌륭한 결과들 속에서도 웃지 못하는 삐에로가 된 것 같았다. 열매를 맺고 결과에만 집중한 나머지 내 기억에는 내가 지나온 과정들은 나의 효용 가치를 증명하는데 모두 써버린 것 같았다. 빈껍데기만 남은 기억들은 추억이 되지 못하고 고단한 경험들로 남았다. 무언가 몰두하고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분 각자에 맞게 다정한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고 돌보기를 바란다. 당신이 겪는 과정들까지 모두 소중하고 헛되이 지 않도록...
이미지 출처: 꽃노을 (유학시절: JEL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