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관하는 삶
비관주의자는 바람에 대해 불평하고,
낙관주의자는 바람이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고, 현실주의자는 돛을 조정한다.
[ 윌리엄 아서 워드 ]
가정 형편이 갑자기 어려워졌던 적이 있다. 용돈은 물론 돈이 없어서 생리대를 사지 못했을 때도 있었다. 나는 그때 돈을 원망했고 남자로 태어나지 못하고 여자로 태어난 것에 대한 회의감 마저 들었다. 바뀔 수 없는 환경을 탓하고 바뀌지 않을 현실을 속에서 나는 모든 것을 불평했다. 해결방안을 모색할 생각의 힘은 내겐 없었다. 마흔이 넘고 그때를 다시 회상해 보니 난 낙담에 빠져 불평 이외의 방법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친구들과 지인들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용기 내어 도움을 줄 것을 말하지 않았다. 무조건 감춰야 되는 나의 약점으로만 느껴졌다.
그렇게 하루가 밝아오면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의 가면의 쓰고 학교에 갔고, 그 어느 누구도 나에 대해 아는 것이 싫어서 힘들고 외로운 만큼 더 신나게 웃고 더 활발하게 참여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너무 지쳤지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영혼이 없는 것처럼 멍한 눈으로 옥탑방 구석에 앉아 어둠이 내려도 불도 켜지 않고 우울로 깊이 빠져들기 일쑤였다. 반복되는 어려움과 걱정에 상황이 언젠가는 바뀔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영원히 내려앉은 어둠이 밝아오지 않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의 낙담과 불평은 비관적인 성격으로 나를 물들였다. 그렇게 여러 해를 반복하다 보니 나는 모든 게 불안하고 걱정되었다. 나는 불안하면 등을 벽에 딱 붙이고 앉는다. 왠지 등이 허공에 떠 있으면 누군가 다가와 나락으로 밀어 떨어 뜨릴 것 같았다. 그런 밤은 길고 아침이 오면 자동으로 나는 현실을 가려줄 가면을 쓰고 하루하루를 견뎠다.
마침내 끊이지 않을 것 같은 터널은 끝이 나고 사회 초년생이 되었다. 어둠 속에서 발버둥 치던 나는 조금 나아진 현실이 행복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가면을 쓰고 만든 인연들은 때로는 나를 속이기도 하고 배신을 했다. 경제적 고력이 끝나 가기도 전에 인간의 고력이 몰려왔다. 몇 겹을 겹쳐 쓴 지도 모를 만큼 나는 나를 철저히 감추고 살았기에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를 목소리 크고 잘 웃는 말괄량이로 기억할 것이다. 상처받아도 상처받지 않은 척 괜찮은 척은 나를 내 거짓 속에 가두어 놓았다. 친한 친구에게도 솔직하게 말할 용기가 없던 나는 늘 불안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내가 나의 불행을 말하면 친구들이 떠나갈 것만 같았다. 내 민낯을 잊을 만큼 두껍게 가면을 쓴 나는 나를 점점 잃어갔고 성장을 멈췄다. 내가 내가 아닌 척하면서 살아오니 나는 내게 필요한 사람들과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을 가려내는 능력이 점점 없어지다 못해 상대방에 저절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헛된 기대를 하면서 힘든 관계들을 모두 떠안고 살았다.
참 아이러니하다. 내 삶과 현실에 대한 불평은 칼 같이 하면서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끌어안고 갔다. 그렇게 살면 가까운 사람은 더 멀어지고 멀리 있던 사람들은 바보 같은 나의 성격과 틈을 노려 다가왔다. 그땐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마흔이 넘어서 생각하니 정도와 거리의 발란스를 무너뜨린 관계를 유지하려고 헛된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뭐든 지금에서 변화하는 것은 두렵고 내가 나를 감싸고 있는 껍질을 깨고 나가는 것은 더더욱 불편했다. 변화를 하는 것은 고통이 따르고 힘든 것이기에 더 이상 힘듦을 자처하기 싫다는 자기기만으로 나는 그렇게 내 인생의 사람들과 상황들에 변화와 성장을 완전히 멈추고 방관했다.
우울과 공황장애가 계절처럼 오고 지나가고를 반복했지만 난 늘 원인을 찾지 못했다. 80주 까까이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알게 됐다. 더 이상 늦으면 가면에 갇힌 나를 영영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정도와 선이 없는 선함을 멈추어야 했다. 내 주변에는 착하고 나를 표현할 줄 모르는 나를 이용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기에...
태양에서부터 행성들이 줄지어서 거리를 두고 자신만의 궤도를 돌듯, 나를 기준으로 내 주변에 꼭 있어야 할 사람들을 재배치했다. 그리고 그들이 충돌하지 않도록 거리와 궤도를 다시 설정했다. 내게 가장 가깝게 내 곁을 지키며 돌아가야 할 행성과 나와 가장 먼 거리에서 궤도를 돌지만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집중과 선택을 해야 했다.
두꺼웠던 나의 가면은 아직 다 벗겨지지 않았지만 이젠 가면 밑에 있는 내 감정과 표정이 무엇인지 비칠 정도로 얇아졌음을 느낀다. 나의 민낯이 들어나 더라도 놀라지 않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줄 수 있는 사람들만 내 삶에 남기고 있다. 나의 치부나 안 좋은 기억들까지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건 나의 민낯을 보는 사람들의 것이다. 나는 민낯이 들어 나도록 노력하는 것 까지가 나의 몫일테니...
모두가 남지 않아도 내가 나의 민낯을 바라봐 줄 힘이 생기기 시작했으니 괜찮다. 불평하고 헛된 기대로 멈춰버린 성장은 다시 재정비를 하고 있다. 어제 보다 나은 오늘이 되게 하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나를 찾아가고 있다. 둥둥떠나니던 불안정한 삶에서 이제야 땅을 밞고 현실을 현재를 느끼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글을 읽으면 불평이나 헛된 기대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와 비슷한 오답을 쓰지 않기를 바란다. 내 삶이 처한 상황에 맞게 다시 밸런스를 맞추고 현실에 머물러 한 발짝씩 걸어 나가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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