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각과 선택은 내가 하는 것
당신의 삶의 행복은
당신의 생각의 질에 달려 있습니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여러 매체나 우리의 삶 속에서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를 흔히 듣게 된다. 가스라이팅을 당했다는 뜻은 무엇일까? 가스라이팅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상황 조작을 통해 타인의 마음에 자신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켜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듦으로써 그 사람을 정신적으로 황폐화시키고 그 사람에게 지배력을 행사하여 결국 그 사람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심리학 용어이다.
가스라이팅을 똑똑한 사람도 피해 갈 수 없다며 가스라이팅을 하는 사람을 좋지 않은 이미지로 그려내는 단어이다. 나도 마흔이 될 때까지 그렇게 알고 살았다. 강요나 조언이 강압적이거나 위협적으로 들린 적도 있으며 왠지 그 말을 따라야 할 것 같은 상황들이 많았다. 가스라이팅을 당할 당시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게 가스라이팅이었던 것을 알게 되면 가슴속 깊은 곳에서 빡침이 올라왔다. 그러나 이미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그 가스라이팅을 한 나르시스적인 상대는 온 데 간데없고 상황도 종료된 시점이었다. 점점 어른이 되고 많은 사회적 관계들을 이어 나가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 속에서 때로는 짧게 때로는 긴 시간 동안 가스라이팅을 당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유뷰브 채널 [아는 변호사]님의 아류논어 이립 수업을 듣기 전까지 나는 어떻게 하면 나르시스들의 쉽게 구분하고 피할 수 있을지 많은 영상을 보고 공부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는 변호사]님의 이립 수업을 듣으며 '가스라이팅 당했다'는 말은 이제 쓰지 않기로 했다.
현대인들은 생각이 많다. 하지만 그 생각의 깊이가 있는지는 의문이 든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그랬다. 온갖 걱정거리 생각들을 쫙 펼쳐서 생각하곤 한다. 그러다 너무 많은 생각이 떠오르면 어느 순간 생각을 끝까지 치열하게 해서 이치에 맞는지 상식에 맞는지 판가름 내지 못하고 중간에 생각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스라이팅을 당했다는 것도 이와 비슷한다. 누군가 나에게 가스라이팅을 하려고 할 때 그 순간 내가 뭔가의 이득에 눈이 멀고 귀가 멀지 않는다면 그 가스라이팅에 동조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가스라이팅에 혹하고 넘어가는 이유는 나의 욕심도 한 몫한다. 그 욕심은 단순히 물질적인 욕심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 가스라이팅에 내가 혹하면 물질적이던 정신적이던 신체적으로 편안함이 오던 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사리분별력 있게 그 말을 생각하고 따져볼 생각을 멈추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도록 하겠다. 사귄 지 1년이 넘은 연인이 있다. 남자와 여자는 결혼을 약속한 예비부부이다 남자는 자꾸 결혼을 하면 아이를 제일 먼저 갖고 여자를 가정생활에 충실해 주길 지속적으로 바란다. 여성은 자신이 하던 일을 결혼 후에도 할 생각이 있고 아이는 나중에 낳고 싶지만 사랑하는 남자 친구의 지속적인 설득에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지 못하지만 아이를 낳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하여 아이를 갖기로 한다. 서로를 좋아하는 감정에 가려져서 또는 깊게 생각해 보지 않고 결혼을 하면 당연히 더 늦기 전에 아이를 꼭 낳아야 된다는 압박감에 사로 잡히고 마치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가 결혼을 함과 동시에 형성된다. 그리고 남성은 지속적으로 여성이 하는 일은 존중하지 않고 2세가 태어난 후에도 여성이 아이를 양육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어떨까? 그렇게 남녀가 부부로 산지 10년쯤 지난 후에 여성은 경단녀가 되고 왠지 남성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해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못하고 전업 주부로 전락했다고 원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잘 따져 보면 여성은 남자가 결혼할 때 여자에게 요구했던 말을 들었다. 자기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하고 초점을 맞추는 예비 남편을 보고도 여성은 어떠한 설득이나 반대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물론 그 이유는 다양할 수 있다. ' 이 사람이 좋으니까?' , '에이 설마 진짜 그렇겠어? 나도 그냥 일을 할 거야..' 등등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결혼을 하기로 선택하고선 나중에 남편에게 가스라이팅 당했다고 말하는 게 옳은 것 인가? 혹시 일하고 싶은 마음을 이야기하면 상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생각과 선택을 보류한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소위 우리가 마흔을 불혹이라 한다. 불혹의 뜻은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 하지 않고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 공자가 40세에 이르러 직접 체험한 것으로 [논어] 위정편에 언급된 내용이다. 하지만 나이만 불혹이지 정말 우리가 마흔이 넘어 혹하는 것이 없는지 각자 자신에게 물어보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물어보고 참고를 할 순 있지만 모든 선택은 자신이 내리는 것이다. 강제로 아이를 낳고 집안일에만 충실할 것을 강요한 사람은 없다. 누군가에게 가스라이팅 당했다고 말하지 말고 '매사문'하지 않은 자신의 선택을 먼저 뒤돌아 보아야 한다. 그렇게 선택하고 그렇게 행한 것은 누가 뭐래도 본인의 선택이었다. 혹하지 않았다면, 다시 말해 자신이 얻을 이득과 욕심이 눈멀지 않았다면 당하지 않았을 가스라이팅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몸과 마음을 건강한 상태로 가꾸어야 한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을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 그리고 언제나 선택은 당신에게 있음을 기억하라. 그 사람과 함께 할지 그렇지 않을지는 생각을 끈을 놓지 않고 심사숙고하면 가스라이팅을 당하지 않을 선택을 할 수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방향과 가치가 다르다면 즉시 떠남을 선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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