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노을의 일간 글 예찬 14
번아웃과 무기력에서 나를 일으킨 글쓰기
경쟁심도 많았고 자존심도 강했던 나는 쉼 없이 달렸다.
내가 지치고 다치고 있는지 모르고 정상만 보고 달렸다.
내가 원하는 목표지에만 가면 행복할 줄 알았다.
하루하루 현재의 시간을 내가 이루고 싶은 목표를 위해 나의 현재를 의미 없이 소진하고 있었다.
현재는 미래를 위해 희생시키는 나날에 지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자신감도 있었고 목표를 이루어도 그 목표지에 가서 보면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달랐다.
그럴 때면 또 다른 목표를 세우고 그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렸다.
좋은 결과도 냈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의 좋은 일들도 많았지만 내 마음의 충만과 만족은 없었다.
내 위치에서 내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최고를 이루었지만 나의 삶의 질은 낮았다.
그럴수록 모든 것이 귀찮고 의미가 없이 느껴졌다.
그동안 내가 이루고 싶은 목표를 위해 달려오고 이루고 나면 내가 힘들게 얻은 만큼 허무함이 밀려왔다.
내가 좋아했던 모든 것들도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나라는 사람조차 살아갈 의미가 없게 느껴질 정도로 번아웃과 무기력의 늪에서 허우적 됐다.
지인이나 가족들은 나가서 운동을 해라. 취미를 갖아라 등 나도 다 알고 있는 말들을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번아웃과 무기력 우울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운동을 할 신체적 에너지나 취미를 즐길 정신적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은 사람에게 의지나 성격 지적을
하면서 말하는 사람들의 말이 나는 폭언처럼 느껴졌다.
마치 팔다리가 없는 사람에게 뛰어라 박수를 쳐라 하는 것처럼 불가능한 것을 지속족으로 조언이나 도움이라는 이름을 쓰고 내가 비수가 돼서 날아왔다.
그때 나는 난생처음 써보는 글씨 기라는 행위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누가 내게 제안한 것도 아니고 평소에 관심 있던 분야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불현듯 지쳐있는 내게 글쓰기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둥둥 떠 다녔다.
글은 누워서 쓸 수도 있었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글로 표현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끄적이듯 쓴 글들은 지금은 읽을 수 없을 정도이다.
이불밖에 나오지도 않고 짧은 단어로 쓰기 시작한 글은 시간이 지나자 문장이 되었다.
그렇게 글쓰기는 나를 일으켜서 이불 밖으로 나와 컴퓨터를 켜서 글을 쓰게 하는 힘을 주었다.
그 힘이 마중물이 되어 나의 힘듦과 생각을 표현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생각지도 못한 브런치를 접하게 되고 작가를 도전하고 작가가 되었다.
브런치 작가 된 지 이제 6주 동안 나는 매일 글을 썼다.
매일 글을 쓰고 누우면 나의 마음은 편안했고 살아있음을 느꼈다.
우연히 발견한 글쓰기에서 나는 제대로 평온함과 위안을 얻었다.
글쓰기는 이렇게 나의 삶의 질을 높였다.
지금껏 느껴 보지 못한 정서적 만족과 영혼의 풍요를 느꼈다.
나는 그렇게 번아웃과 무기력에서 서서히 나오고 있음을 느낀다.
어느 정도 벗어나니 삶의 의미나 소소한 것에 감사한 것들이 보이게 됐다.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갈 힘도 없는 분이나 모든 것이 의미 없고 흥미가 떨어져 에너지가 바닥을
쳤을 때 누워서 휴대폰으로 손가락만이라도 움직여 보자.
그리고 쓴 것을 다시 읽어보면 그 글이 내게 희미하게 보내는 메시지들이 느껴질 것이다.
살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닌 번아웃과 무기력에 대한 현재를 느끼는 대로 적어보자.
내가 적은 글은 다시 내게 인풋이 되어 나의 삶의 의미를 되찾게 하고 다시 두 발로 설 수 있는 힘과 계기가 되고 나의 삶의 질은 올라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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