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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차언니 Oct 31. 2020

언젠가는, 반백수 패밀리 어게인!

육아 프리랜서 듀오의 네버엔딩 스토리

- 반백수 1호_육아휴직 아빠
- 반백수 2호_전업주부 엄마
- 반백수 3호_만 1세 아기


<1호의 복귀와 월급의 귀환>


이불 밖은 위험해!! 하는 마음속 자아의 외침이 들리는 같았다. 다시 회사를 가다니. 붐비는 지하철에 몸을 싣는 나날을 보내게 되다니. 반백수 패밀리만의 이 소중한 아지트를 뒤로 한 채 발걸음을 옮겨야만 하다니.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너무 짧지 않나?'라고 생각하며 시작되었던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1호의 생활 루틴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는 구름을 타고 바다를 건너는 기분으로 집을 나섰다. 조금만 실수해도 큰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조심히 다녀오라던 2호와 3호의 인사가 이명처럼 귓가에서 끊임없이 공명했다.


여성 직원의 비율이 훨씬 높은 직장 이어서일까. 신입사원 때처럼 긴장을 한 채  출근을 했건만. 다른 남성 육아휴직자들의 복귀 후기처럼 드라마틱한 일들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너무 일상적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비현실적이었다. 1호의 책상은 멀쩡히 제자리에 놓여있었고, 팀장님을 비롯한 팀원들은 반갑게 그를 맞아주었다. 언젠가 그가 다른 여성 육아휴직자의 복귀를 환영했던 것처럼 말이다. 복귀 시기가 사업 시작 시점과 잘 맞아떨어져 업무도 자연스럽게 주어졌고, 다행히 일하는 감을 잃은 것 같지도 않았다. 모든 것이 평온했다.


그나마 조금 색다른 일이 있었다면, 지나가다 마주친 HR 본부의 부장님께서 귀감이 되는 선택을 했다며 칭찬을 해주신 정도랄까. 아, 복귀 이후 회사 동료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게 되기는 했다. 업무의 특성상 타 부서의 사람들과 큰 교류를 할 일이 없었는데, 육아휴직을 하게 된 이후 알음알음 '아, 그 육아휴직 한 남직원!' 정도로는 이름을 알렸다. 덕분에 육아휴직을 두고 고민 중인 남성 동료들의 조언자가 될 기회도 얻었고, 실제로 그중에는 용감히 육아휴직에 돌입한 사람도 있다. 조직 내 문화와 사회의 인식이 달라지는 데 다소나마 기여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한 마음이다.


복귀 이후 가장 좋은 점이 뭐냐고 묻는다면, 역시 월급날이라고 답하겠다. 알게 모르게 주머니 사정이 얄팍해질 수밖에 없었던 지난 시간들. 후회가 되지는 않지만, 아쉬운 면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2호와 3호에게 그런 부분을 보상해주고 싶었다. 그렇다고 별달리 크게 돈 쓸 일이 있겠냐마는, 그래도 쓰고 싶은 곳에 언제든 쓰라며 큰소리 뻥뻥 쳐보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다. 기대하시라, 온전한 월급이 반백수 패밀리에게 돌아왔으니!




<제자리에 남은 2호와 3호, 그리고 반백수 패밀리 연재>


아빠는?


실컷 재미있게 놀다가도 종종 1호를 찾는 3호의 모습을 보니, 2호는 어쩐지 코끝이 시큰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난 150일의 시간이 오침 중의 단꿈처럼 느껴졌다. 현관문을 열고 나서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을지 모르겠으나, 닫히는 현관문 안쪽에 남은 사람들에게 이곳은 여전히 똑같은 삶의 터전이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더 이상 1호가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뿐. 아니, 그러니 더욱 단조로운 일상이 되었다. 든 사람 자리는 몰라도, 난 사람 자리는 티가 나기 마련이니 말이다. 1호가 떠난 낮 시간의 집은 유독 휑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1호의 육아휴직 기간 동안 긍정적인 방향으로 명백히 달라진 것들이 있다. 3호가 부쩍 자라서 이제 상호 간의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 가능해졌고, 더 이상 하루 종일 안기고 싶다며 떼를 쓰지 않게 된 것이다. 덕분에 이전에는 기대할 수 없었던 급한 집안일이나 개인 용무를 처리할 여유가 조금 생겼다. 1호와 2호에게 기대하는 바가 명확히 나뉘어, 1호와 하고 싶은 놀이는 그가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 정도면 체력적, 심리적으로 부담이 되었던 요소들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손이 아주 많이 가는 신생아도 아니고, 그렇다고 몇 개월간 온 가족이 함께 했다는 추억을 오래도록 기억해줄 만큼 큰 아이도 아니었기에 '너무 애매한 시기의 육아휴직이 아닐까?'하고 생각했던 지난날이 우습기도 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에 적기가 따로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니. 함께 할 수만 있다면 모든 날들이 최적기인 것을!


2호는 행복했던 나날을 글로 남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라도 이 시간을 오래도록 추억하고 싶었다. 아무리 신나는 일이라도 한 달, 아니 한주만 지나도 까맣게 잊어버리기 일쑤였으니. 기록이라도 남아 있으면 3호가 모두 자란 뒤에도 다 같이 하하호호 웃으며 언제든 펼쳐볼 수 있지 않을까. 이왕이면 1호와 2호가 치열하게 나누었던 고민과 대화들을 가득 담고 싶었다. 부모의 입장으로 3호를 바라보는 지금의 시선을 잊지 않고 싶어서랄까. 슬펐던 일보다는 기뻤던 순간들을 더 많이 담아두고도 싶었다. 그렇게 브런치에 '반백수 패밀리'의 연재가 시작되었다.




<이제는, 육아 프리랜서 듀오!>


반백수 패밀리의 소집 해제. 시원하진 않고 섭섭하기만 했던 그날도 이제는 오래 전의 일이다. 육아휴직자가 복귀 6개월 후에 받을 수 있는 25%의 잔여 급여를 받는 때가 벌써 다음 달로 다가왔으니 말이다. 늘 멈춰있을 것만 같았던 시간이 참 빨리도 지나가 버리는 기분이다.


시간이 유영하는 속도만큼이나, 우리 모두 꽤 많은 성장을 거듭했다. '라때는 말이야~'를 놓아버리고 정말 '라테 파파'가 된 남편과 '육아 입덕 부정기'를 지나 본격적으로 '육아 입덕기'에 접어든 아내. 그리고 제법 그럴싸한 문장을 만들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있는 똘똘한 아기까지 말이다.


'육아 성장기'인 우리 부부는 다음번의 아빠 육아휴직을 꿈꾸며 살아가는 중이다. 어떤 날의 대화 속에서는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시점'을 목표로 삼기도 하고, 또 다른 어느 날에는 '아이가 아빠를 꼭 필요로 하는 때'를 기다려보자고 말하기도 했다. 둘 다 너무나 지친 하루의 끝에서는 종종 '당장 다음 달부터 다시 질러버려?'라고 말해놓고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깔깔깔 웃어버릴 때도 있다.


남편은 회사에 출근하고, 아내는 다시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해 한창 작당모의 중이다. 우리는 이제 서로를 '육아 프리랜서'로 여기기로 했다. 전업으로는 아니더라도 둘이서 함께 해 나가는 육아이니, 이왕이면 그룹처럼 그럴싸하게 보이자며 '듀오'라고 불러보자고도 했다. 때로는 아이에게 배우고 성장하기도 하니, 육아 프리랜서 트리오로 명명해야 하는 것일까? 잠시 생각해 본 것뿐인데 자꾸만 미소가 지어진다.


출처 : 반백수 패밀리



육아 프리랜서 듀오!
그래서, 오늘의 육퇴는 대체 언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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