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작가 삼락

고양이의 작가 관리법

행복한 꿈

by 바람

집사 생활 9년 차다. 우연히 두 고양이와 동거 중이다.


첫째 ‘뽀뽀’는 하얀 고양이다. 털이 없는 부분은 분홍으로 특히 코끝과 귀 안쪽, 말랑한 발바닥은 진달래색이다. 아기 때는 이마에 지도 모양의 검은 점이 있었는데, 성묘가 되면서 말끔히 사라졌다. 지금은 온몸이 뽀얀 털로 뒤덮여 있다.


나는 뽀뽀가 영재인 줄 알고 백미(白眉)라 불렀다. 영롱한 눈빛에 빼어난 자태도 돋보였으나, 무엇보다 이마에 있는 점이 범상치 않았다. 검은색 털이 만들어 낸 지도 모양의 점은 고르바초프 이마의 점과 똑같아 보였다. 러시아로 유학을 보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할 무렵 털갈이를 하면서 검은색이 몽땅 없어졌다. 그럼 그렇지. 주는 대로 먹고, 똥 잘 누고, 잘 자면 충분하지. 이내 현실을 받아들였다(웃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집사 경험자는 동의할 것이다. 앞의 요건을 충족하면 완벽한 고양이로 칭송받을 만하다).

허망한 욕심을 버리면서 백미를 대체할 이름을 찾았다. 소박한 현실에 맞게 ‘보리’로 개명했다. 그러나 조증 상태인 집사는 만족하지 못했다. 보리가 입에 붙기도 전에 다양한 음색과 어조로 변주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뽀리뽀, 뽀리뽀리로 변했다가 뽀리뽀리뽀리뽀로 늘어났다. 애정을 표현하는 건 좋은데 이름이 지나치게 길었다. 단출함을 지향하며 뽀뽀야로 줄였다가, ‘야’ 자는 시간에 닳아 사라지고 뽀뽀로 정착됐다. 첫 글자 뽀에 악센트, 뒷 글자 뽀는 길게 발음한다. 그리하여 정확한 음은 “뽓! 뽀오오오”이다.


두 번째 주인공은 은회색 작은 발의 아가씨다. 뽀뽀가 호박색 눈을 가졌다면 그녀의 눈은 연둣빛에 가깝다. 이름도 우아한 ‘소냐도르(스페인어로 몽상가)’다. 영화 드리머 속 경주마의 이름을 가져왔다. 소냐도르는 경마대회에서 1위를 한 명마였다가 부상으로 퇴출되었으나, 한 가족의 정성스러운 보살핌으로 재기에 성공한다. 그리고 ‘넌 위대한 챔피언. 네가 달리면 땅이 울리고 하늘이 열리지. 승리는 너의 것. 나는 네 등을 꽃다발로 장식하네’라는 헌사로 영화가 끝난다.


영화를 볼 때의 나는 낙방을 거듭한 고시생이었다. 비디오방에서 친구랑 보다가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영화였다. 이렇듯 장황하게 소냐도르의 유래를 설명하는 이유는 은회색 아가씨가 많이 아팠기 때문이다. 사료를 토하고, 또 토했다. 콧물을 뚝뚝 흘리며 돌아다녔고 피부병으로 털이 숭숭 빠졌다. 얼마간 회복해 건강하나 싶더니 방광염에 걸렸고, 계절성 알레르기도 앓았다. 병치레가 잦은 아가씨가 속히 회복하길, 땅이 울리고 하늘이 열릴 만큼 활기차게 우다다다 달리길 기도하며 지은 이름이 소냐도르였다.


뽀뽀와 소냐도르는 풍문으로 들은 작가의 고양이들과는 사뭇 다르다. 노동요가 흐르는 가운데 작업 중인 모니터 앞에서 잠을 자는 천계영 작가님의 냥, 작업실 문 앞에서 거리두기를 하며 기다리는 페리테일 작가님의 냥은 꿈같은 이야기다.


나의 뽀뽀는 온종일 심심하고, 소냐도르는 매 순간 배가 고프다. 뽀뽀는 무한 잔소리를 주특기로 장착하고 가는 곳마다 졸졸 따라다니며 냥냥 거린다. “놀아줘, 심심해, 놀아달라니까”라는 소리를 들으면 내 손은 어느덧 낚싯대를 쥐고 흔들어 댄다.


소냐도르는 “배고파, 밥 줘, 밥 내놔라”며 통곡한다. 밥이 나올 때까지 목소리를 계속 높이는데, 그 애달픈 곡조에 사료 통을 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렇게 먹고 나면 집사의 몸 위가 자신의 자리다. 집사가 누워있으면 배나 등, 앉아있으면 무릎 위에 올라온다.


체력왕 뽀뽀와는 방방을 돌아다니며 숨바꼭질 놀이를 해야 하고, 그렇게 지친 집사가 쓰러져 잠이 들면 소냐도르가 배 위로 슬그머니 올라온다. 놀아주다 지치고, 지쳐 누우면 과체중에 눌리고, 불편해 일어나면 다시 놀아줘야 하는 무한반복 역할극에도 점점 익숙해지는 것을 보니, 문득 체계적인 계획에 따라 정밀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하나, 아침형 인간 만들기

새벽 5시경 뽀뽀가 얼굴에 발을 살포시 올린다. 이리저리 만져보다 머리에 꾹꾹이(고양이가 앞발을 오므리고 펴며 꾹꾹 누르는 행위)를 시작한다. 신나면 머리카락을 질겅질겅 씹기도 하고 발톱으로 머리카락을 빗어 내린다. 이렇게 해도 깨지 않으면 귀에 입을 바싹 갖다 대고 우아앙,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낸다. 소냐도르는 팔 밑으로 박치기하듯 이마를 집어넣어 팔을 들어 올리거나 촉촉한 코를 볼에 갖다 댄다. 그래도 안 일어나면 볼을 깨문다. 집사 깨우기는 주거니 받거니 협업체제로 진행된다.


둘, 정서 관리

출근 시 현관문을 닫을 때까지 애절한 눈으로 배웅한다. 퇴근할 때는 유리 중문에 양발을 얹고 입장을 기다린다. 잠들 때 배 위에서 들숨 날숨 하여 명상을 강제하고, 스트레스 많은 날엔 아침까지 머리 옆에 궁둥이를 대고 숙면을 유도한다. 자다가 고개를 돌리면 털복숭이가 뭉클하게 느껴진다. 가끔은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애교를 부리고, 이름을 부르면 둘이 동시에 꼬리를 높이 치켜들고 조르르 달려온다. 가슴에 몽글몽글 솜사탕이 피어오른다.


셋, 청결한 우리 집

털뿜뿜으로 매일 청소기를 돌린다. 고양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털을 날린다. 옷이며 수건, 심지어 안구까지 침범한다. 남편의 눈에서 길고 흰 털을 뽑아낼 때는 정말이지 경악한다. 어떤 집사는 냥이처럼 헤어 볼(고양이가 털을 손질하기 위해 핥다가 삼킨 털이 위에서 생긴 덩어리)을 토할 지경이라 하니, 청소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


이불 빨래도 자주 한다. 위가 좋지 않은 소냐도르가 종종 이불에 토하기 때문이다. 살균처리까지 하므로 늘 뽀송뽀송한 이불을 사용할 수 있다.


호기심 천국인 아이들이라 새 물건이 집에 오면 물고 뜯고 맛보기를 반복한다. 빨래를 개고 잠시 쉬면 바로 달려와 앞발로 빨래를 안고, 뒷발로 팡팡 차며 가지고 논다.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 바로바로 정리하는 습관은 집사를 수납의 달인으로 만든다. 무엇보다 이들의 배변 냄새는 코를 찌른다. 냄새가 집에 배지 않도록 환기를 자주해 깨끗한 환경 조성에 최선을 다한다.

넷, 건강관리

놀아 달라, 심심하다를 반복하므로 이불과 합체되어 뒹굴던, 시체놀이 시대는 끝났다. 줄기찬 숨바꼭질과 낚싯대 흔들기, 레이저 포인터 놀이, 거울 반사 놀이 등으로 종아리와 팔뚝이 굵어진다. 요가에 능통한 냥이 자세를 따라 스트레칭 연습을 하니 유연성도 길러진다. 특히나 소냐도르는 집사 신체에서 지방이 많은 곳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 무거운 몸무게를 작은 발에 가득 실어 꾹꾹 눌러준다(그녀의 몸무게는 6.8킬로그램인데, 비슷한 크기의 냥에 비해 3킬로그램 정도 더 무겁다고 한다). 최고의 몸매 관리 시스템이다.


다섯, 출근시키기

뽀뽀는 놀아 달라, 소냐는 배고프다가 주요 멘트다. 둘의 공통점은 끝까지 조르기. 그들은 집에서 책 읽기나 글쓰기를 용납하지 않는다. 둘의 수다에 집중력은 증발한다.


어쩌다 주말에 컴퓨터 앞에 앉으면 소냐도르는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모니터에 항문낭액(영역표시를 위한 화학물질을 함유하고 있음)을 쏜다. 그야말로 충격적인 냄새다. 소독제를 뿌리고 몇 번을 닦고 환기해도 냄새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날의 작업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뽀뽀는 프린터기를 지나치게 좋아해서 전원을 켜면 밥 먹다가도 달려와 프린터기 위에 뛰어오른다. 출력이라도 할라치면 종이가 나오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발을 넣는다. 신나게 소리 내며 나오던 종이는 심하게 구겨지고, 다음 장은 밖으로 나오는 것이 두려워 머뭇거린다. 나는 짐을 싸들고 집필실로 출근할 수밖에 없다.

여섯, 예술 활동 독려

배고플 땐 둘이 동시에 목을 빼며 합창한다. 화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집사도 그들을 따라 노래 부르다 가창력이 늘었다. 감성이 풍부해지는 것은 덤이다. 사랑스러운 모습을 놓칠 수 없어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린다. 결국 뽀뽀에게는 초상화도 그려 갖다 바쳤다. 작품명은 Duke PoPo.


개략적으로 살펴보건대, 작가와 고양이는 모순된 의지를 가지고 살아간다. 양측 다 청개구리 해에 태어난 게 분명하다. 냥은 세탁기와 쓰레기통이 있는 금지구역은 꼭 들어가 봐야 하고, 비닐이나 끈 같은 금지물품에 집착한다. 작가는 읽지 말라고 하면 책을 읽고 쓰지 말라고 하면 글을 쓴다.


그들이 의기투합하는 유일한 순간은 낮잠시간이다. 나른한 오후, 작가가 몸을 누이면 한 냥은 다리사이, 다른 냥은 겨드랑이를 파고든다. 몸을 구겨 넣고 고롱고롱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잠에 빠져든다. 인간보다 체온이 2도 높아 따끈따끈하다. 겨울에는 좋지만 여름엔 솔직히… 더워 죽을 것 같다. 가끔 잠꼬대를 하거나 코를 고는데, 나는 그사이 쫀득한 발바닥을 조물거리거나 폭신한 배를 만진다. 그들이 깊이 잠들지 않으면 쉬이 만질 수 없는 영역이다.


방안 가득 잠 가루가 솔솔 날리면 작가는 고양이가 되는 꿈을 꾼다. 아니 고양이가 작가의 꿈을 꾸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렇게 조련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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