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너무 덥다. 쨍한 태양 아래를 걷고 있자니 어질어질하다. 녹음 속에서 매미가 소나기처럼 운다. 박자를 맞춰 한꺼번에 울어댄다. 나는 “더워 죽을 것 같다”를 연신 내뱉으며 요가학원을 향한다.
선생님은 여름이 ‘아사나’의 계절이라 했다. 아사나가 무엇인고 하니, ‘자세’를 의미한다. 여름엔 몸이 활짝 열리기 때문에 자세를 배우기에 좋다고 하셨다. 그러나 현실은…
“제가 언제 그렇게 가르쳤던가요?”를 매일 듣고 있는 중이다.
처음 학원에 들어섰을 때 고요하고 무거운 공기가 마중 나왔다. 함부로 떠들면 혼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익숙지 않은 향내에 어두운 조명. 나무문은 뻑뻑하니 반만 열렸다. 한 명씩 드나들라는 설정인가? 문에서는 삐걱, 하는 소리가 났다.
나는 심각한 몸치임에도 동적인 활동을 즐기는 편이다. 쿵짝쿵짝 방송 댄스나 물방울이 통통 튀는 리듬 속 발레를 좋아했다. 아니면 어푸어푸 수영이나 왁자지껄 떠들며 (걷는 시간보다 맛집 탐방에 시간을 더 할애하는)시내 걷기를 했다. 그런데 요가라니.
문외한으로 요가의 세계를 방문한 나의 불찰이다. 유연성을 기르는 스트레칭 정도라 생각했다. 코로나 때문에 두해 넘게 쉰 발레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요가는 그런 게 아니었다.
요가란, 심신의 건강법 또는 단련법이자 고대 인도에서 널리 행해진 종교적 실천법이다. 심신의 통일이나 훈련 등에 의하여 물질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다음 어학사전 참조). ‘법’ 자가 무려 세 번이나 나오고 목표 또한 심오하다.
이를 어쩌나. 마음의 준비 없이 요가에 발을 들였네.
그리고는 발의 조율부터 시작한다. 사십 년 넘게 인간, 즉 오로지 두 발로 돌아다니는 유일한 영장류로살았는데, 서기와 걷기를 다시 배운다. “발바닥 전체에 체중을 골고루 싣습니다. 뒤꿈치 중앙이 바닥을 향하고 있는지 관찰하십시오. 땅을 느끼고 척추를 세웁니다(타다 아사나, 우리말로 산 자세라 함). 땅으로 단단하게 뿌리를 내립니다.” 서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흔들흔들. 술 취한 사람처럼 휘청거린다.
걷기는 더욱 곤란하다. 체육공원의 ‘올바른 걷기 방법’ 표지판이 아른댄다. 눈여겨봐 둘걸. 표지판의 존재만 확인하고 지나갔었다. 선생님은 나의 걸음걸이가 간혹 두발로 걷는 침팬지와 흡사하다 했다. 양옆으로 심하게 흔들린다는. 그렇다고 침팬지처럼 나무를 잘 타지도 못하니 몹시 비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소비하며 걷는다는 것이다.
아우웅~~~~ 힘들어서 신음소리가 절로 난다(수다쟁이 뽀뽀와의 잦은 대화-뽀뽀가 나를 부르면 냥의 발성을 따라 하며 똑같이 대답하는 것이 일상임-로 나도 모르게 힘들 때 냥이 소리를 낸다). 서기와 걷기도 잘 못하는데 고양이, 토끼, 개, 뱀, 비둘기까지 어찌 이리도 많은 동물이 나오는지, 게다가 나는 전사 1, 2, 3이 되었다가 활이 되고, 쟁기, 물고기, 메뚜기로 변신한다.
다양한 자세는 그나마 양반이다. 요가는 동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요가는 앞의 정의에서 보았듯 심신 단련법이다. 진정한 자아와 우주의 모든 것과의 결합이며 이 순간에 존재함이다. 어떤 자세에서든 멈출 수 있어야 하고 그 속에서 휴식할 수 있어야 한다(비슷한 모양을 만들어내기도 바쁜 내겐 가당찮은 요구다). 몸 마음이 연결되어있음을 확연히 알아차리고 매 순간 의식적이어야 한다.
그래서인지 태생적인지 선생님은 마블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놀라운 시각, 청각능력을 가졌다. 수많은 수강생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디가 불편한지 한눈에 알아본다.
보통 나는 직사각형 강의실의 우측 맨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눈에 잘 띄지 않도록 하는데 언제 다가왔는지 선생님은 “손목 정면요, 왼쪽 다리 더 뻗고요”하면서 지나가신다. 등잔 밑이 어둡다 하여 선생님 바로 앞의 옆쪽으로 자리를 옮긴 날도 어김없이 “가슴 들고, 배 쫌 당겨요”하신다.
더욱이 뒤통수에도 눈이 달렸다. 신입회원이 오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초반 특별 관리를 하시는데 나는 이때다 싶어 게으름을 부리곤 했다. 분명 선생님 뒤쪽에 있었건만 바로 알아차리고 다가와 지적하신다. 시야를 벗어나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한순간도 놓치지 않는 저 내공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는 열심히 굴림을 당하고, 또 당하면서 팔다리가 굵어진다.
수업 중에 가장 많이 반복되는 자세는 ‘고개 숙인 개’다. 쉬어가는 자세라는데 나는 아무래도 쉬어지지 않고 강제노역으로 느껴진다. 옆에서 보면 삼각형으로 고개를 숙이고 팔다리를 쭉 뻗어 꼬리뼈가 하늘을 향하게 한다. 다리 쪽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하지 않으면 어깨와 목이 긴장되어 많이 아프다. 뒤꿈치를 바닥으로 내리면 다리 뒤쪽이 찢어질 것 같다. 숱한 동물 중에 개가 욕설의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요가 입문자에게서 유래된 건 아닌지 의심해본다.
요가는 운동이라기보다 수행에 가깝다. 유연성을 기르려던 초기의 목적과 달라 요가를 배우는 과정에 내적 저항이 심했다. 솔직히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요가를 계속할 예정이다. 이유를 물으신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우선, 요가를 하면 처음으로 몸을 만나는 기분이 든다. 호흡, 서기, 걷기를 새로이 배우고 몸의 감각이 깨어난다. 골반이나 어깨가 한쪽으로 기울었는지, 척추를 바로 세우고 있는지, 발목은 옆으로 돌아가지 않았는지를 느끼게 된다. 몸을 빚어 만드는 과정 같다. 몸이 여기 있었네, 하면서 소중히 여기게 된다.
자세가 잘 안 될 때는 언제나 이유가 있다. 안 맞는 음식을 먹어 몸이 불편하다는 신호이거나 심리적인 문제가 몸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때문에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습관이 생기고 이는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또한 바로 서기나 뒤꿈치를 드는 간단한 자세로도 몸의 순환이 좋아진다. 꼭 어렵고 복잡한 자세를 할 필요는 없다. 홀로 있는 시간이 많고 거북목,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는 작가에게는 쉽고 빠른 건강관리법으로 안성맞춤이다.
요가는 잡생각을 싹쓸이해주는 기능이 있다. 온갖 근심에 정신 줄을 놓고 있으면 선생님의 호출 버튼이 눌려지고 임팩트 있는 잔소리를 듣는다. 엄마의 등짝 스매싱과 유사한 효과가 있다. 그래도 정신 못 차리면 물구나무서기를 한다. 발에서 머리로 피가 거꾸로 쏠려 걱정 마귀는 싹 물러간다.
요즘같이 더운 나날을 견디는데도 도움이 된다. 몸에서 땀이 뚝뚝 떨어지고, 옷이 흠뻑 젖으면 속에서부터 시원함이 번져 나온다. 표현할 길 없는 뿌듯함이, 더위에도 오늘의 할 일을 끝마쳤다는 그런 만족감이 있다.
마지막으로 불순한 의도가 있는데… 요가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예쁘고 카리스마가 넘친다. 오랜 수련으로 미인이 되었나 생각해봤다(미인이 요가를 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혹여나 요가로 어여뻐질까, 아우라를 뿜게 될까 내심 기대해본다.
아사나를 익히는 뜨거운 여름이다. 곧 호흡과 명상에 집중하는 가을 겨울이 올 것이다. 선생님은 ‘몸이 정렬되면 마음을 가눌 수 있다’ 했다. 내년쯤이면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까지 깃들어 멋진 작품을 쓸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