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잡기

인생 항해에서 살아남는 법

by 바람
육체적인 힘과 정신적인 힘은 말하자면 자동차의 양쪽 두 개의 바퀴입니다. 그것이 번갈아 균형을 잡으며 제 기능을 다할 때, 가장 올바른 방향성과 가장 효과적인 힘이 생겨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직업으로서의 소설가>현대문학-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고딕체 검정 글씨가 정갈하다. 책 등을 보인 채 몇 년간 서있었다. 이렇게 멋진 제목인데 읽지 않았다니. 전업 작가를 꿈꾸며 발등에 불 떨어진 지금에야 책을 꺼내 든다.

하루키의 소설은 앞부분만 읽다 말았으니 나와 맞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주변에서 ‘하루키, 하루키’ 하는 걸 보면 내가 모르는 뭔가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안고 그의 에세이집을 열었다.


글은 ‘어서 와. 소설은 처음이지?’ 같은 환영으로 시작한다. 하루키는 ‘누구든지 드루와, 드루와. 근데 오래 버티긴 힘들 걸’하며 단서를 달았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직업을 유지할 수 있는 비법을 전수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때에 좋아하는 방식으로 할 것, 시간과 에너지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만 집중할 것, 중요한 일을 하는데 즐겁지 않다면 즐거움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제거할 것. 그 외에는 예술가이기 전에 자유인이 될 것을 추천하고, 지나친 비평에는 이렇게 밖에 쓸 수 없으니 별수 없다는 식으로 흘려버리는 상책을 제시한다. 내가 받아들인 핵심은 이랬다. 물론 하루키는 같은 내용을 매우 다정하고 섬세하게 표현했다. 직접 읽어보시면 코끝이 찡하거나 아! 하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나는 그의 호기로움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삶이라는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단단한 축을 세워두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것을 지키는 힘이었다.


처음부터 그랬을 리는 없다. 그러지 않으면 '몸이 당해내지 못한다’고 쓴 걸로 보아 그의 인생도 만만치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40년(이 책을 쓸 당시는 35년) 넘게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글쓰기를 열렬히 사랑한 탓이고, 주어진 기회를 누구보다 소중히 다루었기 때문이다. 단순한 풍운아가 아니었다.


그는 어려운 시간을 견디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달렸다. 달리기는 강건한 육체를 만들어 주었고 몸과 마음의 균형 잡기에 성공한다. 따라서 나는 책 속에서 넘실대는 감동의 문장들을 제쳐두고 위의 예문을 대표로 꼽았다.


건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몸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하면 되지, 정신이 약해 빠져서 그렇지. 뭐 이런 잔소리를 시작으로 어른들의 훈화가 ‘나 때는 말이야’까지 진행되면 정말이지 곤란하다.


실제로는 나 때는 물론이고, 요새 아이들도 몸의 소중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몸을 살피고 관리하기보단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는다고 탓하기 일쑤다

몸을 방치한 결과는 실로 혹독하다. 나의 경우는 통증이 심해 잠을 못 잤고 몇 년간 걷지 못했다. 수험생활이 길어진 것도, 사회생활을 못 견딘 것도 균형 잡기 실패의 영향이 컸다.


몸을 내편으로 만드는 것은 소설가만의 일이 아니다. 강건한 육체는 영혼이 힘든 순간을 용기 있게 맞닥뜨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육체와 정신의 힘을 고루 가진 하루키는 앞으로도 좋아하는 글쓰기를, 원하는 만큼 계속할 것이다.


읽다만 그의 소설을 다시 펼쳤다. 즐거운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쓴 글을 어찌 포기하리오. 나는 그를 더 많이, 더 깊이 알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