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살아가기

초점은 당신 자신이어야 해요

by 바람
사람들을 기운 나게 하겠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단지 당신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세요. 반대로 당신 자신을 기운 나게 하는 건 뭐든 다 해보세요. 그리고 그렇게 해서 배운 것을 나누세요. 초점은 청중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어야 해요. 당신 스스로 기운 내서 열정적으로 사는 한, 당신은 그저 가슴에서 나오는 진실만 말하면 됩니다. 그게 다랍니다!
-아니타 무르자니 지음, 추미란 옮김
<나로 살아가는 기쁨>샨티- p279~280

주말내 대청소를 했다. 숙원과제였던 카펫을 빨고 겨울옷을 살균해 구석에 집어넣었다. 덥다 추웠다 하는 변덕스러운 날씨에 미뤄진 일이었으나 이제는 입던 옷이 답답하다. 입하를 며칠 앞두고 반팔, 반바지를 꺼냈다. 창문을 모두 열고 상쾌한 바람을 집안에 들였다. 소파와 침대 밑, 구석구석의 먼지를 없앴다. 고양이 화장실 앞에 두는 (볼일을 보고 나온 냥이의 발에 뭍은 모래가 사방으로 퍼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깔개도 씻어 볕에 널었다. 봄마다 사들인 작은 포트 카랑코에를 넓은 항아리에 옮기고 베란다의 어지러운 화분을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입지 않은 옷가지를 골라 헌 옷 수거함에 넣었다. 정말이지 개운했다. 여름 맞이 준비 끝.


계절 변화가 번거롭던 시절도 있었다. 철마다 바뀌는 차림새를 따라가고 절기에 맞춰 치러야 하는 행사가 귀찮았다. 시간의 속도가 빨라진 중년이 되자 신기하게도 계절의 흐름이 반가워졌다. 봄여름 가을 겨울이 나에게 헌정된 사중주처럼 느껴진다. 대청소는 리듬에 맞춘 들썩임이라고 할까. 몸을 들썩이는 김에 마음도 움직여 볼까.

아니타를 (직접은 아니고 책으로)만난 건 할머니가 돌아가신 때였다. 마지막으로 본 할머니 몸에는 할머니가 없었다. 옷만 남은 것 같았다. 1세기 가까이 입던 옷을 가지런히 개켜놓고 사라지셨다. 나는 길을 걷다 비슷한 뒷모습만 봐도 그 자리에 서서 울었다. 아니타는 사후 세계가 사랑으로 가득한 곳이며 우리는 언제나 연결되어있다는 말로 위로해줬다. 나는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를 읽고 또 읽었다.


위안이 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자신이 되는 것 밖에 없고 사랑을 얻기 위해 가치를 증명해 보일 필요가 없으며, 어떤 방식으로 건 행동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사랑받기 위해 할 일이 없다는 말이 당혹스러웠다. 그리고 ‘자신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의무교육을 포함해 장기간 다양한 교육을 받아왔지만 자기 자신이 되는 법은 모른다. 어떻게 하면 자신이 될 수 있나 고민하던 중 아니타의 신작을 보았다. 공감능력이 매우 뛰어난 사람인 엠패스(empath)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안내서였다. 제시된 구체적인 방법은 좋았으나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았고, 결국 ‘나로 살아가는 기쁨’까지 손에 들었다.


아름다운 문장이나 촘촘한 짜임을 원하신다면 다른 책을 보시라. 다만 환절기 대청소처럼 묵은 관념을 버리고 싶다면 추천한다. 다른 사람의 기분만 살피고 자신의 마음을 뒷전으로 둔다면, 그리하여 일상이 두렵고 불안하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위에서 인용한 구절은 아니타와 비슷한 일을 하고 싶어서 조언을 구한 여성에게 아니타가 무심코 한 대답이다. 그즈음 아니타는 강연에서 인간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이유로 청중의 비난을 받아 힘들어했다. 이 대을 하면서 아니타는 '누군가 그녀에게 실망했다면 그녀 자신과 다른 모습을 기대했을 뿐임'을 깨닫게 된다. 그 순간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추기 위한 삶을 그만두기로 했던 임사체험 후의 결단을 기억해내며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 그녀의 솔직한 고백이 내 마음 깊이 닿았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자신이 되는 법’을 이해했다.


아니타는, 다른 사람들이 듣고자 하는 말을 하려고 애쓰거나 그들이 바라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며 자신을 속이는 것을 우려했다. 그 무엇보다 자신에게 진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는 자신에게 진실함으로써 내가 되는 을 실천해보려 한다. 스스로를 통제하거나 거부하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나는 돌고 돌아 내 앞에 섰다. 감사해요. 아니타. 다시 시작해볼게요.


출근길 도로를 사이에 두고 플라타너스가 길게 늘어서 있다. 초록이 점점 커지는 가로수가 정겹다. 가벼워진 옷차림처럼 한결 홀가분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