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 Sep 07. 2023

읽기와 쓰기, 그리고 운동

 세상 모든 일이 무상하듯 지난해 보였던 회복과정도 전환기를 맞이했다.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시간이 해결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옳았다. 끄무레한 하늘에 장막이 걷히면서 우울씨가 떠날 채비를 했다.      


 그 첫 번째 징후는 독서였다.      


우울씨가 한창이던 시절, 나는 난독증처럼 글을 읽지 못했다. 책을 펼치면 머리가 뺑글뺑글 돌고 토할 것 같아 즐겨 찾던 활자와 멀어졌다.      


 한자리에서 뚝딱 책 한 권을 해치우던 예전의 나는 안드로메다로 가버렸고 글자 울렁증에 시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 대기실에 비치되어 있던 책들이 떠올랐다. 진료를 기다리며 몇 장 넘기다 포기한 책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먹고 싶은 음식이 눈앞에 어른거리듯 책 표지가 맴돌았다. 나는 용기 내어 그중 하나를 주문했다.      


 아직은 읽기가 쉽지 않아 느릿느릿 더듬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다음 책을 샀다. 이어서 다음 책. 그렇게 심리학 관련 책과 익숙해졌다.      


 음~~ 재미는 없었다. 읽는 재미를 잊은 지 오래라…      


 하지만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몇 권 읽다 보니 읽는 속도가 빨라졌고 좋은 문장에 감응도 했다. 점차 새로운 책이 보고 싶어졌다.      


 나는 책을 통해 숭고한 인생을 엿보고, 고통을 견뎌낸 영혼에 몰입했다. 타인과의 거리 두기에 성공한 이에게 박수를 보냈고 특이한 생활 패턴을 고수한 이에게 매료되었다.      


 다양한 삶의 모습에 푹 빠져 마음의 휴식을 취할 수 있었고 차츰 그들에 물들어갔다.      


 두 번째 징후는 글쓰기(라 하기엔 다소 민망한 낙서)로 나타났다.     


 갑자기 뭔가를 쏟아내고 싶은 욕구가 차올라 빈 노트에 막 휘갈겨 적었는데, 신기하게도 속이 후련했다.      


 학생 때부터 줄곧 (선생님들의 채점을 곤란하게 만들어) 혼날 정도로 악필이던 나는 마음 편히 생각과 감정을 써 내려갔다. 여러 권의 노트가 아무도 알아볼 수 없는 글자들로 채워졌다. 악필의 장점을 톡톡히 누렸.


 세 번째 징후는 운동이었다. 느닷없이 움직이고 싶다는 강렬한 의지가 생겨 운동할 장소를 찾았다.    

  

 행동반경이 좁아진 탓에 가능한 선택지는 단 두 곳, 걸어서 오 분 거리의 필라테스와 발레학원이었다.   

   

 먼저 필라테스 학원에 전화를 걸어 수강정보를 알아보았다. 그곳은 주로 개인레슨과 소그룹 수업을 진행했고 수강료가 예상초과했다.


 어쩔 수 없이 발레학원에 등록했다. 사무실 근처에서 두어 달 배운 적이 고 상대적으로 저렴했기 때문이다. 거울에 반사된 레오타드를 걸친 굴욕적인 몸매와 허우적대는 동작을 마주하기란 실로 무안 일이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즈음 읽은 웹툰 ‘나빌레라’ 도움이 되었다. 눈물 콧물 훌쩍이며 읽은 감동이 나를 독려했다. 할 수 있다고, 가능하다고… 


 발레는 운동이 아니라 예술(나빌레라 中)이라지만 나는 예술로 구현해 낼 능력은 없었기에 운동 차원에 머물렀다. 마음속에만 아름다움을 담으며 월수금 퐁당퐁당 수업을 들었다.   

   

 여기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오랜 시간 통증과 함께한 발목에, 그토록 나를 힘들게 한 발목에 슬그머니 변화가 일어났다. 아프고 낫고 다시 아프고를 반복하면서 단련된 발목이 어느덧 튼튼해지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타인의 반응엔 무심하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