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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Sep 06. 2023

타인의 반응엔 무심하게

 폐업으로 엄청나게 군소리를 들었다. 그것도 일과 전혀 무관한 자들로부터 말이다.      


 반면 폐업 때문에 불편을 겪어야 하는 분들은 내게 이해와 지지를 보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변호사가 되고 사업장을 운영하기까지 애쓴 가족과 믿고 사건을 맡긴 의뢰인, 함께 일했던 직원은 내 건강을 먼저 생각했다.      


 파산관재인과 피해자 변호사 업무로 엮인 법원과 검찰마저 나의 상황을 존중해 주었다. 나는 일과 관련된 분들의 많은 도움으로 무사히 업무를 종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없는 자들은 비난 일색이었다.      


 친하다고 여겼던 한 언니는 ‘자신은 죽더라도 그런 선택은 못할 것’이라 말했고, 어떤 선배는 ‘기껏 변호사가 되어 가지고 놀다니, 남편 등골 빼먹는 거냐’고 했다.      


 나의 동문 선배이자 남편의 친구는 ‘이혼 안 하냐. 애도 없고 밥도 네가 하는데 도대체 왜 같이 사냐?’는 말을 남편에게 했다. 그것도 대단한 농담이라도 되는 양.     


 누군가 대수롭지 않게 한 발언이 내겐 꽤 상처가 되었다. 그들은 겉으론 위하는 척하면서 은근히 경계를 침범해 왔다.      


 당시는 부질없는 관계를 매우 소중히 여기고 타인의 반응에 민감했던 시절이었다. 그런 까닭으로 무신경한 자들이 뱉어내는 말에 속절없이 휘둘렸다.      


 음~~ 요즘이라면 “너나 잘하세요”라고 쏘아붙였을 것이다.     

 

 삶의 격변기를 지나자 타인의 어설픈 간섭과 판단이 유익하지 않다는 사실을 배웠다. 오히려 유해한 측면이 더 많았다.      


 이젠 되도록 눈을 내면으로 돌린다. 타인의 반응엔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한다.     


 굳이 이렇게 유쾌하지 않은 과거를 꺼내 든 것은  종종 맞닥뜨리게 는 뉴스 때문이다.      


 방송에는 우리 젊은이들의 자살, 그것도 노력 끝에 원하는 직업을 갖게 된 청년들의 이야기가 보도되었다. 뜻하지 않은 로 직장 내 어려움을 겪다 극단적 선택에 몰린 이들.     


 어쩌다 일을 그만두는 것보다 죽음을 선택하는 사회가 되어 버렸을까.      


 우리는 무엇에 쫓기고 있을까.      


 생명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마음이 아팠다. 가슴이 먹먹했다.      


 나도 일을 그만두기까지 굉장히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우선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가 두려웠고 이미 벌여놓은 일을 어떻게 수습할지 막막했다.      


 기대를 저버린다는 죄책감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절실함이 뒤섞였다. 마음이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하다가 중단하면 아니함만 못하다’ 같은 관념으로 얼마나 자신을 옭아맸던가.  

    

 자기 검열과 질책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던 시절을 되돌아보며 어려움을 겪고 있을 우리의 친구, 동생, 자녀들을 염려한다.      


 비슷한 경험을 치러낸 자로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혹여 일이 힘들어 죽고 싶을 지경이라면 그만두어도 괜찮다.      


 더 이상 극복해야만 해, 포기하면 안 된다며 자신을 몰아세우지 말았으면 한다. 인생엔 중단하는 용기가 견디는 것보다 더 필요할 때가 있다.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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