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듣던 명상에 관해 호기심이 한창이던 때였다. 친구가 템플스테이를 제안했다.
7월의 한여름 날씨를 고스란히 겪으며 수많은 모기에게 헌혈할 생각을 하니 선뜻 수락할 수 없었다.
머뭇거리는 순간 “바람아~ 거기 가면 명상을 배울 수 있데”라는 미끼가 던져졌다. 명상이라고?
낚싯바늘을 덥석 물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적극적인 자세로 동행을 약속하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뼈 때리는 말로 좌중을 압도하는 지대넓얕의 패널 김도인에게 푹 빠져있었다. 그녀의 이야기에 사로잡혀 언젠가 명상을 배워보리라 마음먹던 참이었다.
예습 삼아 김도인이 지은 책 ‘숨 쉬듯 가볍게’를 읽으며 템플스테이를 준비했다.
예약한 일정에 맞춰 친구가 태우러 왔다.
한 시간 넘게 고속도로를 타고 좁고 구불구불한 마을을 지나 어느덧 골짜기에 다다랐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접수처에서 한 분이 나와 우리를 수행처로 이끌었다.
오 분쯤 비탈길을 걸어 올라가니 녹음이 푸르고 예쁜 꽃들이 피어있는 도량이 나타났다.
인솔해 준 처사님은 도량에 머무는 동안의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묵언하기, 휴대폰과 컴퓨터 사용금지, 음주 가무 등 수행에 방해되는 행동하지 않기’ 등의 분부가 내려졌다. 처사님은 B사감처럼 엄격한 분위기를 풍겼다.
지시를 숙지한 후 방을 배정받았다. 각자의 방에 짐을 옮겨놓고선 절에서 제공받은 수행복으로 갈아입었다.
옷이 주는 경건함을 품은 채 동일한 복장의 사람들을 따라 잔디밭을 통과해 몇 개의 돌계단을 올랐다.
이미 많은 참가자가 법당에 모여 있었다. 낯선 사람들로 어색해진 나는 슬그머니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호탕한 표정의 스님이 쭈뼛거리는 우리를 반가이 맞아주었다.
다 함께 인사를 나눈 후 강의가 시작됐다. 스님은 마음의 근육을 키워 건강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자는 수행의 목표부터 세웠다.
뒤이어 구체적인 명상법을 설명하고 시범을 보였다.
겉보기엔 간단했다. 앉아서는 자연스러운 호흡의 변화를 살펴보고 걸을 때는 발의 움직임을 관찰한다. 문 열 때, 청소할 때, 밥 먹을 때와 같은 일상에서는 각 행위의 끝 지점을 알아차린다.
이렇게 매사를 알아차리다 보면 존재를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이 생긴다고 했다. 나는 알아차림과 올바른 관점 사이의 연관성을 이해할 순 없었으나 가르침대로 노력했다.
아. 그런데 자꾸만 졸음이 밀려왔다. 단순해 보이던 명상은 실천하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앉아서는 꾸벅꾸벅 졸았고, 걸으면서는 깜빡깜빡 졸았다. 몇 개월간 그렇게 잠만 잤는데 여기까지 와서 졸고 있다니. 자신이 한심했다.
그러던 중 수행 점검 시간이 되어 한 사람씩 질문하고 답을 듣는 기회를 가졌다.
누군가는 과거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이 어지럽다 했고 누군가는 끝없이 밀려드는 망상으로 힘들다고 했다. 나는 망설이다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잠만 자고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내 말을 들은 스님은 앉아서 자는 법을 배우는 게 수행이라며 껄껄껄 온몸으로 웃으셨다. 스님의 답변으로 나는 이후의 일정 내내 죄책감 없이 졸면서 보낼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스님!
절에선 신선하고 정갈한 식사가 나왔다. (졸기만 했으니)밥값을 못했지만 밥맛은 더할 나위 없었다.
나는 냠냠냠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오후 불식이 원칙이었으나 공양주 보살님은 간식으로 수박과 떡, 고구마, 감자, 옥수수, 수정과를 챙겨주셨다. 정성이 담뿍 담긴 건강한 주전부리는 모두를 행복하게 했다.
나는 맛난 음식 잔뜩 먹고 실컷 잠만 자다가 일정을 마쳤다. 그럼에도 신기하게 몸과 마음이 개운해졌다.
말을 줄이고, 천천히 걷고, 고요히 앉아있고, 느긋하게 먹는 시간 속에 묘한 힘이 있었던 것 같다.
기대했던 경이로운 체험이나 특별한 경지를 맛보진 못했다. 그러나 이슬로 젖은 잔디가 발목을 스치는 감각, 여명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아침의 상쾌함, 강아지의 컹컹 짖는 소리, 폴짝 뛰어가는 개구리와 빨랫줄에 내려앉은 잠자리가 깨닫게 했다.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은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어쩌면 이것이 가장 신비롭고 각별한 체험이자 경지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