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씨가 사라진 지 오래다.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덩달아 발목도 회복되었다. 뛸 순 없지만 걷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몸과 마음이 가뿐해지니 절로 의욕이 생겼다. 이젠 일할 수 있지 않을까.
가능성에서 의무감으로 전이되지 않았다면 좋으련만 스멀스멀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이 밀려왔다.
삶에서 일의 비중을 지나치게 높여 병이 들었는데 나는 또다시 일에 집착했다.
어떤 역할이 필요했다. 스스로를 책임진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사회적 동물의 숙명처럼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었다.
원체 가만히 있질 못하는 체질에 장기간 휴식까지 누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다시 개업할 자신은 없었다. 나는 송무의 무게를 견뎌낼 만큼 대담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으로 밥벌이를 해야 할까. 고민이 시작되었다.
4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경력단절녀를 채용할 회사가 과연 있기나 할까. 이렇게 부실한 내가 적응할 만한 직장이 있을까.
취업사이트를 뒤적일수록 부정적인 생각이 점점 불어났다. 반면 자존감은 쪼그라들어 불가능을 꿈꾸는 초라한 자신과 직면해야 했다.
어찌어찌하여 출퇴근이 멀지 않고 성별과 나이를 따지지 않는 곳을 찾았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고 간만에 법서도 꺼내 읽었다. 일 년 새 면접관에서 피면접자로의 전환이 일어났다.
심장이 콩콩 뛰었다.
‘뽑아만 주신다면 귀사에 혼신을 바쳐 일하겠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내게는 OO에 근무하는 OO 직위를 가진 이들에게 주어지는 안정감이 필요했다. 사회 구성원으로의 편입이 절실했다.
운이 좋았는지 지원한 기관에 바로 합격했다. 다행이었다.
무척이나 기뻤던 나는 결심대로 성심성의껏 일했다. 적체된 사건을 처리했고 구성원들과의 화합을 위해 애썼다. 바쁘게 일하다 보니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나는 대체로 회사생활에 만족했다. 업무의 난이도, 상사의 인품, 구성원들의 능력. 그럭저럭 괜찮았다. 월급이 적긴 했지만 근무지의 위치와 업무강도를 고려할 때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모든 장점을 상쇄할 만큼 곤란한 문제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공공기관이라 하면 고액의 연봉에 안정된 일자리를 떠올린다. 때문에 신의 직장이라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취업한 곳은 그렇지 않았다.
출근 당일부터 묘한 긴장감을 느꼈고 며칠 지나서는 봇물 터지듯 튀어나오는 불만을 들어야 했다.
내부 갈등은 손쓸 수 없이 심각했고 함께 입사한 동기들은 얼마 안 가 퇴사했다. 다른 직책의 구성원들도 입사와 퇴사를 반복했다.
막상 입사하면 어딜 가나 불만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이곳의 분위기는 남달랐다.
기존 직원과 신입 간의 갈등, 잦은 공백으로 인한 업무처리 지연, 처우개선이 요원해 보이는 환경이 불씨가 되어 서로를 지치게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