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 사이의 갈등으로 소란스러웠지만 어쨌거나 내겐 소중한 직장이었다. 나는 ‘뽑아만 주신다면’을 되뇌며 열심히 일했다.
쉬는 동안 내공이 쌓였는지,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생각이 복잡할 때는 도움이 될만한 책을 읽었고, 감정이 요동치면 일기를 썼다.
거의 매일 산책을 했으며 하루 오 분이라도 명상을 잊지 않았다. 자신을 돌보는 이런 습관들은 닻이 되어 주었다. 출렁이며 다가오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었다.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사업주가 아니라 결재받을 곳이 생겼다는 점도 위안이 되었다. 스스로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입장에서 벗어나 월급 받는 생활도 좋았다.
사기업과는 다른 처리 방식, 절차 및 조직 체제가 신기하면서도 재미있었다.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는 성격이 직장생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던 중 국장님이 퇴사했다. 느긋한 성품에 정이 깊은 분이라 많이 의지했었다.
국장님의 공석으로 나는 그 자리에 지원해야 할지, 조만간 퇴사해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같은 직급의 동료들에 비해 경력과 나이가 상당히 많았던 터라 나의 위치가 좀 애매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국장 자리에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좀 더 발전된 기관을 만들고 쌓여있던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던 까닭이다.
그렇게 국장이 되었다.
조직의 장이 되자 잘못된 관행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 없었고 대립과 반목의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다.
갈등의 근본 원인이 되었던 구성원들의 처우 문제도 해결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구성원들에게 규정대로 업무처리를 하도록 요청했다. 의견을 존중하고 격려와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본부에는 처우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의사를 피력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냐고?
부지런한 상사가 위험하다는, 나는 딱 그런 케이스로 결론이 났다.
물론 잘못된 업무 관행과 구성원들의 심각한 갈등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변화가 필요했기에 몸을 갈아 넣었다.
그러나 반복되는 퇴사는 여전했고 신입이 적응하기는 점점 더 어려웠다. 아무리 챙겨주고 도닥여도 직원들의 융합은 까마득해 보였다.
지나고 보니 왜 이전 국장님이 방관하듯, 외면하듯 어정쩡한 태도로 일관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오기 전 그분도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겠는가.
다수의 사람이 모인 곳엔 각자의 이해가 얽혀 통일된 목소리를 내기가 어렵다. 자신에게 돌아갈 궁극적인 이익 보단 눈앞의 편의와 이득이 더 중요했다.
그걸 어떻게 해결해 보려던 사람이 오히려 그 자리에서 튕겨 나가기 마련이다.
애쓰면 애쓸수록 원하는 것이 달아나는 지독한 아이러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