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병원 갈 일은 없을 줄 알았다. 발길을 끊은 지 몇 년이 지났고 우울씨와의 조우 후 자신을 잘 돌봐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심이 통하지 않는 공격적인 분위기에 휩싸이자 나는 와르르 무너졌다.
게다가 사무실 내에서의 자잘한 폭력 사태까지 있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급하게 병원을 알아봤다. 이전에 다녔던 병원이 문을 닫는 바람에 다른 병원을 검색해야 했다.
응급을 호소하며 퇴근길에 바로 병원으로 갔다.
방문한 병원은 포근한 분위기였다. 간호사, 의사 선생님 모두 배려심 많고 친절해 마음이 놓였다. 짧은 상담을 마치고 다음 예약을 잡았다.
지난번보다 경과가 좋았다. 비상시를 대비해 약 처방을 받았지만 조금밖에 먹지 않았고 두 달간의 상담으로 많이 호전되었다.
아마도 긴 시간 단련해 온 좋은 습관들이 회복탄력성을 높였던 것 같다.
선생님의 조언도 큰 도움이 되었다. 선생님은 깊은 통찰력을 가진 분이셨고 정곡을 딱 집어내는 스타일이었다.
나는 덕지덕지 쌓아둔 관념들로 흐려진 솔직한 감정을 마주할 수 있었다. 가끔은 뼈아픈 각성에 민망하기도 했으나 현실을 직시하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선생님이 다소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요지는 대충 이랬다.
“힘든 건 이해하겠는데 당신의 직위, 나이를 고려할 때 부하 직원의 태도에 왜 그렇게 많이 휘둘릴까요? 바람님은 왜 모든 구성원을 자로 잰 듯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이 질문은 오래도록 회피해 온 기억을 불러들였다.
나를 미워했던 오빠의 새파랗게 날 선 모습, 거의 매일 반복되던 폭력.
당시는 체벌을 당연시하던 시절이라 아이들 간의 폭행쯤은 단순한 싸움으로 치부되는 분위기였다. 그랬기에 상처받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냥 철없는 한 인간의 분풀이 대상이 되어 억울한 정도?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해결할 수 없는 두려움과 무력감으로 고통받았고 상황을 견디기 위해 별일 아니라 여겨왔던 것이다.
사무실 내에서의 폭력 사태는 꽁꽁 숨겨두었던 감정을 깨어나게 했고 그로 인해 나는 극도의 두려움에 시달렸다.
게다가 오빠의 지독한 미움은 딸바보인 아빠의 편애로 시작되었기에 나는 특이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상대가 어떤 식으로 행동하건 모든 대상을 동등하게 존중하고 아껴야 한다는 신념이었다. 차별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상담을 통해 나는 나의 상처를 이해하게 되었고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그사이 여차여차 구성원들의 분쟁도 일단락 났다.
그리고 나는 파란만장한 삼 년간의 직장생활을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잘 정리되었다면서 굳이 왜?
첫째는 지나친 피로감 때문이었다. 그대로 더 있다간 인간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완전히 잃어버릴 것 같았다.
두 번째는 변호사 업무와 나의 부조화를 해결해야 했다. 일에 대한 나의 사고방식이 바뀌든지, 다른 길을 찾든지…
여하튼 나는 변해야 했다. 무한 반복 소모전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