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초반에서 나를 범생이에 긍정적인 편이라 소개한 바 있다. 기본 성향은 어떻고, 마음의 바탕화면은 이러하며, 저러한 기조로 삶을 꾸려왔다고 했다.
스스로 그렇게 믿었고 주변에서도 동의했다.
그러나 마음공부를 통해 내면의 바닥이 드러나면서 대척점의 자신을 보게 되었다. 나의 민낯 그대로와 마주한 것이다.
한때 나는 친구로부터 ‘삼분의 일 쪽’이라 불린 적이 있다.
그 의미가 뭐냐고 물었더니 친구가 말했다. 대개의 인간이 ‘일(一)’이라는 감정을 지니고 있다면 나는 그 일부(三分之 二)가 삭제된 느낌이라 했다.
의미를 풀어서 얘기하자면 이렇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마음은 산천초목처럼 나무, 꽃, 호수, 사슴, 토끼와 여우, 뱀, 늑대, 늪지, 골짜기가 공존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잘 정돈된 거실 같이 안전하고 편안하지만 밋밋하고 재미없고 지루한 장소처럼 여겨진다고 했다.
특히 사회가 부정의 딱지를 붙인 시기나 질투, 미움, 증오, 기타 이와 유사한 감정을 발견할 수 없다고 했다.
괴생명체를 대하듯 이상하게 여겼으나 나는 딱히 자신에 대한 불만이 없었기에 ‘쟨 그렇게 보는구나’하며 넘겼다. 하지만 요즘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여러 반론을 제시할 것이다.
‘누울 자리 봐 가며 발을 뻗어라’는 말이 있다. 어린 시절 다양한 욕구를 드러내고 수용받은 경험이 있었다면 아마도 나는 다르게 자랐을 것이다.
내가 얌전한 성장기를 보낸 것은 원래 그런 성향이어서가 아니다.
당시 나의 부모는 몹시 힘든 상황을 겪고 있었다. 나는 부모가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 고맙고 안심할 수 있었으므로 욕구를 드러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 때문에 나는 매우 성숙한 아이인척하며 어려운 시간을 견뎠다.
부모의 희망이 되고 싶었고 자랑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외적 내적으로 충격을 받아도 내색하지 않았고 ‘난 훌륭하니까. 이쯤이야’ 하면서 버텼다.
먹고, 입고, 가지고 싶은 것을 조르지 않았다. 떼를 써도 받을 수 없는 형편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모범적으로 생활하고 학업성적을 올리는 식으로 결핍을 채워나갔다.
다행히 애쓴 만큼 좋은 평가를 받았고, 그렇게 정서적 우월감이 생겼다.
우월감은 자신의 초라함을 감출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었다. 규범적인 태도는 일종의 ‘자가 치료’ 방식이었고 그런 성향은 굳어져 갔다.
나는 어질고, 성실하고, 능력 있고, 정직한 사람이니 멋지고 가치 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허상을 붙들었다.
허상은 자신을 위로하는데 꽤 효과적이었기에 마음의 습관은 고시 생활 내내 이어졌고 변호사가 되어서도 유지됐다.
또한 감정에 휘둘리면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기에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특히 나를 힘들게 하는 부정적인 감정은 최대한 빠르게 무마시키고 공부나 일에 집중했다.
이것이 자신을 잘 관리하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자연스러운 생명의 흐름을 흑백논리로 선별해 재단하고 숨기는 것이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이라 착각했다.
이런 태도는 내게만 국한되진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단체로 합숙해 가며 같은 기술을 연마한 것처럼 모두 ‘꾸며내기’의 달인들이다. 어딜 가나 고개만 돌리면 훌륭하고 성숙한 척 꾸며대는 어른들을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다들 그러고 사는데 뭐가 문제냐’고 물을 수 있겠다. 본인이 괜찮다면 굳이 개입하고 싶지 않다.
다만 뭔가 개운치 않은 기분이 반복되고 예전과 달리 마음이 힘들다면 한 번쯤 자신을 되돌아봐주길 권한다.
일부 감정을 계속 무시하다 보면 어느새 지나치게 무감해져 버린 자신을 발견할 운명에 처하기 때문이다. 무감한 사람은 표면적으론 평온하지만 실제는 잠재적인 태풍을 꾹꾹 눌러 저축해 둔 것과 같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대체로 끝까지 무사하기 어렵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오면 자기 조절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거나 심각한 질병으로, 억압된 감정은 표출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나는 사람마다 특별히 예민하거나 무던한 영역이 있을 뿐 ‘반쪽 혹은 삼분의 일 쪽짜리’ 인간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모든 감정을 느끼게 된 지금의 내가 더 좋다. 여러분도 그렇길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