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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Sep 16. 2023

허용의 선물

 앞의 글을 읽다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란 건 알겠어. 그런데 어쩌라고?” 볼멘소리를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이번엔 숨겨둔 감정을 허용할 때 받을 수 있는 선물에 대해 소개하겠다.   

   

 대개 ‘이래야 한다’는 기준이 많은 사람은 자신의 잣대에 부합하지 않은 감정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그 감정의 기미만 보여도 눈앞에서 치워버리려는 조급한 마음이 된다.     


 숨기는 행위는 자동반사적으로 이루어지기 마련이므로 스스로 자각하지 못할 때가 많다.      


 감정이 뭔 죄인가? 매번 외면당한 감정은 제 갈 길을 가지 못하고 구천을 맴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다른 모습으로 존재를 드러내는데 주로 불면과 악몽의 형태를 띠곤 한다.      


 그런 감정과 맞닥뜨린 우리는 장화와 홍련이 찾아왔을 때 놀라 죽어버린 원님처럼 심장이 벌렁거린다.      


 하지만 장화와 홍련은 원님을 해치려 다가온 게 아니라 억울함을 해소하고 싶을 뿐이다. 감정이 우리를 찾아오는 목적도 마찬가지다.      


 놀란 심장을 진정시키는 해결책은 현명한 신관 사또를 벤치마킹하는 것이다. 새로 부임한 강심장 사또는 자매의 간청에 귀를 기울여주고 진상을 조사해 원한을 풀어주었다.     


 자매는 편안한 마음으로 이승을 떠날 수 있었고 사또는 승진의 기회를 선물로 받게 된다.      


 내게도 어느 날 한 맺힌 자매가 찾아왔다.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매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그들은 미움과 욕망이라는 이름을 밝혔다.     


 왜 밤마다 검은 그림자가 되어 못살게 구냐고 했더니 내게 깊은 원한이 있다고 답했다.     


 처음엔 그들의 주장에 반박하려 들었지만, 줄곧 그들을 냉대해 온 과거가 떠올라버렸다.     


 어쩌다 그들이 다가올라치면 나는 경멸과 비난의 눈초리로 쫓아 보냈고 나중엔 두더지 잡기 하듯 오는 족족 때려잡았다.      


 자매는 내게 몹시 상처받았다고 했다.     


 슬그머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텐데 선입견으로 함부로 대하며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자매의 말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그래. 그럴만하지. 억울했구나. 속상했구나. 미안하다.” 이렇게 그들이 찾아올 때마다 허용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황금열쇠 하나를 던져주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 열쇠를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것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열쇠는 반짝반짝 빛나며 전지적 시점의 썰을 풀었다.      


“너는 어릴 때부터 좋아 보이는 것들을 끌어모아 성을 쌓기 시작했지. 차곡차곡 쌓은 벽돌로 성은 그 모습을 갖춰갔고 드디어 완성된 성은 단단하고 아름다웠어. 너는 그 성이 무척 맘에 들었지.   

   

성에 있으면 안전하고 안락했기에 너는 행복했고 좀처럼 밖을 나가지 않았지.      


그러다 어른이 된 너는 더 이상 밖을 나갈 수 없게 된 거야. 익숙한 곳을 벗어나는 건 엄청나게 두려운 일이거든.     


하지만 너는 알고 있어. 성은 이제 감옥이 되어버렸다는 걸.”     


 그러더니 비장한 목소리로 “미움과 욕망이 날 네게 맡겼는데, 어때? 한번 써 볼 생각은 있어?” 뜻밖의 제안을 했다.      


 나는 한참을 주저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향해 다가갔다.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고는 눈을 질끈 감고 열쇠를 꽂아 넣었다.      


 철커덩, 하고 녹슨 문이 열렸다. 열린 틈으로 싱그러운 바람이 들어와 뺨을 쓰다듬었다.      


 나는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선 한 발짝 앞을 내디뎌 보았다. 자매가 준 선물은 바로 자유를 찾아 떠날 기회와 용기였던 것이다.      


 (노파심에 사족 답니다. 여기서 말하는 허용의 의미는 타인에게 여과 없이 감정을 발산한다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알아주고 이해해 준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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