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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Jan 26. 2024

솔직하고 낯선 생각

 기록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일기를 쓴다 해도 ‘누군가(어릴 때는 부모. 결혼 후는 배우자, 늙어서는 자녀가) 보면 어떻게 하지?’ 걱정이 앞선다. 실제로 나는 엄마의 일기를 몰래 본 적이 있다(죄송해요. 어머니). 하지만 엄마도 그랬겠지?           


 누가 볼까, 하는 걱정은 현실이 되기도 한다. 불상사를 막기 위해 나는 어릴 때 열쇠 달린 일기장을 썼다. 어른이 되고선 문서에 비밀번호를 걸었고, 그것도 모자라 자기 검열을 거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 후에 읽어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어 쓰레기통에 버린다. 주기적으로 나의 흔적을 없애는 중이다.       

    

 그러면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글은 어떤가?      


 내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기 위해 쓰면서도 나를 들킬까 두렵다. 일반인과 다소 거리감 있는 생각을 표현할라치면 심한 제약을 느낀다. 글감으로 주변인까지 등장하면 주변인의 기분을 고려해 더 많은 검열이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종종 글을 쓰고 나서 이래저래 가지치기를 한다. 그러다 보면 이건 뭐, 아무것도 쓰지 않은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 된다. 어정쩡한 글, 의미를 알 수 없는 글을 쭈욱 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 비슷한 고민을 해 봤을 테다. 감추고 싶은 마음과 드러내고 싶은 욕구 사이의 방황. 과연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는, 모순된 요구를 전부 충족할, 그 어느 지점을 찾아 헤맸을 것이다. 지금도 좁고 높은 담벼락 위에서 이쪽으로 떨어질까 저쪽으로 떨어질까 갈등하고 있을지 모른다.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그래서 준비했다. 세 번째 작법 주제, 솔직함과 낯선 생각에 관하여…


 먼저 시는 묘사진술로 이루어져 있음을 밝혀둔다. 묘사는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는 것이고 진술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다(묘사는 지난 주제에서 살펴봤으니 그 부분을 참고하시라). 진술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은 솔직함과 낯선 생각이다.


 선생님은 솔직함이 문학의 근본적인 힘이기에 진실하지 않은 글은 어떤 미사여구를 늘어놓아도 독자를 감동시킬 수 없다고 했다. 잘난 척, 있는 척, 멋진 척 아무리 해봐도 금방 실체가 들통난다. 가면을 쓴 글은 타인의 마음에 가닿지 못하고 겉돌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글쓰기에서 솔직함을 유지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지나치게 솔직하다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토해낼까, 일기는 일기장에 쓰라는 평가를 받을까 근심할 수밖에 없다. 표현력이 좋은 것도 아니요 참신한 소재가 있는 것도 아닌 초보 작가에게 이런 고민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선생님은 대다수 사람과 다르다고 해서 자신의 생각을 남들처럼 각색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솔직하게 쓰기’는 이 지점에서 낯선 생각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시인은 아니지만, 나는 이슬아 작가를 무척 좋아한다.      


 이슬아 작가는 개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도록 글을 쓴다. 에세이뿐 아니라 소설도 아주 독특하다. 이 때문에 나는 이 작가의 세계관이 궁금하고 앞으로 나올 책도 기대한다. 어쩜 이렇게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할까, 필력에 감탄하고 남다른 사고에 매혹된다.      


 선생님도 비슷한 맥락으로 '낯선 생각'을 강조했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글은 시적 가치가 없다고, 적어도 시를 쓸 때는 매우 자유로워야 한다고 했다. 독서에 드는 노력을 고려할 때 사람들은 재미없는 훈계나 듣자고 책을 읽진 않는다. 나도 뻔한 얘기는 읽지 않는다.      


 사정이 이와 같다면 낯선 생각은 어떤 것일까.      


 천동설을 뒤집은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이런 건 천재들에게 맡기고)은 아니더라도 ‘고양이를 사냥하는 쥐, 무서운 꽃, 보이지 않는 별’처럼 어긋난 연상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땅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하지만, (달에서 관찰할 때)땅에 매달려 있는 것으로 보는 차원이라면 낯선 방식의 사고라 할 수 있겠다.     


 상상력이 부족한 나로선 이 정도의 다른 관점조차 표현하기 어렵지만, 고정관념에선 서서히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갱년기의 유일한 장점이랄까. 그땐 맞았지만 지금은 틀린 경우가, 지금이 맞고 그땐 틀린 경우가 너무나 많은 요즘이다. 쉰이면 지천명이라는데 하늘의 뜻은 개뿔, 내 마음도 오리무중 알 수가 없다.


 여하튼 선생님은 이제껏 믿어온 관념에 대해 의문을 던져보라고 했다. 美醜에 대해, 균형에 대해, 도덕에 대해…….           


 ‘솔직하고 낯설게’는 안 되지만 이번 주도 시를 썼다는 점에선 남다르긴 하다. 뿌듯 뿌듯.     

 

 새벽녘 남편의 수면 무호흡을 바라보는 아내의 심정을 그려봤다. 자랑한 김에 시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친다.           




중년, 그대           

    

잠 못 드는 밤

그대 곁에 누워 숨소리 듣는다          


이상도 하지

박자가 안 맞다          


짧게 들이쉬곤 감감무소식     


님 툭, 건드려 본다

컥 몰아 내쉬곤 가쁜 숨 들이켠다          


오려던 잠 위태로운 날숨에

저 멀리 날아가 버리고     


조마조마한 들숨에

목덜미마저 오싹하다        


이런!

오늘 밤도 뜬눈으로 지새우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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