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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삶에 들어오면
08화
시에 대한 오해와 편견
by
바람
Feb 2. 2024
선생님이 퀴즈를 냈다.
“다음 세 문장 중 어느 것이 가장 시적일까요?”
1. 바람이 분다
2. 머리에 멍이 들어 고꾸라지며 바위처럼 단단하게 검은 바람이 휘청이며 지나간다
3. 슬픔에 허덕이며 질척대는 바람은 외로움을 감추고 시위하고 시위하며
고요를 휘저으며 그늘 편다
강의교재를 그대로 옮길 순 없어 내 마음대로 각색한 문장들이다.
학생들의 답은 이랬다.
숙녀 2: 3번요
신사 1: 2번요
나: 저도 2번요
신사 3: 3번요
자. 여러분들은 몇 번을 골랐을까요?
.
.
.
우리의 대답을 들은 선생님의 반응.
“어허, 이거 큰일인데요.”
그럼 정답은 무엇일까?
두구두구두구!!
정답은 1번.
학생들은 왜 다른 걸 골랐을까?
2번엔 시각적인 표현과 비유법이 적용되어 있었고, 3번엔 이해하기 어려운 뭔가 멋질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
다.
선생님은 난감한 표정으로 퀴즈 풀이를 해주셨다.
1번은 한눈에 의미가 쏙 들어온다. 하지만 2, 3번은 몇 번을 읽어봐도 그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따라서 1번이 가장 시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
다.
허걱!!! (설마 저만 놀란 건 아니겠지요?)
선생님의 퀴즈로 시에 대한 나의 오해와
편견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아마도 어렵고 모호하여 아리송한 글을 시라고 생각해 왔던 것 같다.
그렇다면 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는 의미에서 2번과 3번의 문제점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2번엔 비유로 바람을 표현하려는 시도가 있다. 그러나 비유는 자고로 유사한 것끼리 빗대어 설명해야 하는데 갑자기 바위가 들어감으로써 유사성의 원칙이 무너졌다. 따라서 이 문장은 ‘바람다움’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겠다.
3번은 좀 더 곤란하다. 문장이 길고 그 의미 전달이 어려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문장을 분석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문장 독해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전체 문장의 서술어를 찾는 일이다. 특히 긴 문장이라면 문장을 잘게 쪼개는 것을 추천한다. 문장을
나누다 보면 쉽게 술어를 발견할 수 있다.
서술어를 찾았다면
그와 짝을 이루는 주어를 전체 문장의 주어로 생각하면
된다.
3번의 경우 전체 문장의 서술어는 ‘편다’가 된다. 그런데 이에 알맞은 주어를 찾을
수가
없다.
결국 이 문장은 주술 관계를 종잡을 수 없고 지나친 관념어가 등장하는 바람에 무슨 의미를 전하는지 도통 파악이 안 된다. 그래서 초보자에겐
되도록 단문으로 시 쓰는 습관을 기르라고 권한다.
일반적으로 시는 문장의
생략이
많은 편이라 잘못된 시인지 단순 생략인지 구별이 어렵다. 그러나 이렇게 문장을 쪼개서 주술 관계를 밝혀보면 좋은 시를 간파하는 안목이 생긴다.
이는
시
감상만이 아니라 시를 쓸 때도 유의해야 할 점이다.
선생님은 문장을 어지럽게 꼰다고 좋은 시가 되진 않는다고
했다. 정확한 문장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두세 번 읽어봐도 뜻이 통하지 않는 시는 차라리 읽지 않는 편이 낫다고 하셨다.
그러고도
우매한
제자들이 걱정된 선생님이 한소리를 덧붙였다.
“대충 써놓고 독자들이 알아서 내 시를 잘 해석해 주길 바라는 것은 우리 집 닭이 황금 달걀을 낳길 기대하는 것과 같다”
집에
돌아와
한눈에
의미가
전달되는
시를 쓰기 위해 끙끙댔다. 나는 우리 집 닭은 역시 일반 달걀 밖에 못 낳는
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리움
엄마 화장대 위
가을마다 모과 하나 놓여있다
못생긴 모양
낯선 향에
질겁했던 어린 나
기억 속 엄마만큼 낫살 먹은 지금
오목한 접시에 모과 서넛 담았다
집안 곳곳 놓아두니
꽃보다 달콤한
노란 향내
젊은 엄마 그립다
keyword
편견
오해
시
Brunch Book
시가 삶에 들어오면
06
서사보단 묘사
07
솔직하고 낯선 생각
08
시에 대한 오해와 편견
09
단기간에 시 쓰는 법 배우기
10
예술의 시작은 모방
시가 삶에 들어오면
brunch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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