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문턱에 들어설 때면 저녁 산책을 자주 했다. 노을을 뒤로한 고추잠자리의 비행에 눈이 멀고 밤공기를 가득 채우는 풀벌레 소리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숲 속의 축제는 절정에 다다른다. 시스루 의상을 장착한 잠자리의 군무에 맞춰 여치는 바이올린을 튕기고 메뚜기는 비올라를 켠다. 긴 다리로 첼로를 비벼대는 방아깨비가 귀뚜라미의 실로폰과 박자를 맞추고 틈틈이 트라이앵글을 치는 개구리까지 합세하면 한 편의 교향곡이 완성된다.
나처럼 둔한 인간도 이런 순간을 맞이하면 오래오래 기억에 담아두고 싶은 마음에 뭔가를 끄적인다. 그런데 섬세한 영혼을 가진 예술가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춤과 음악은 아름다움에 대한 그들의 지치지 않은 갈구와 집착과 저장 강박의 결과일지 몰랐다.
숲 속 오케스트라가 한창일 즈음 모든 예술은자연을 베끼고자 하는열망의 결실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나의 생각이 확신으로 굳어진 건 시 창작 수업을 통해서였다.
어느 날 선생님이 ‘바꾸어 쓰기’에 대한 강의를 하셨다. 좋은 시구를 짜깁기해서 바꾸어 써보면 시 쓰기가 어렵지 않고 재밌다고 하셨다.
처음엔 그래도 될까,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완벽한 창작이라는 것은 세상에 없다는, 모든 예술은 자연의 모방에서 시작됐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곧바로 납득했다.
선생님은 자연의 모습을 보고, 자연의 소리를 듣고, 자연을 재현해 내는 과정에서 예술이 발전해 왔다고했다. 그러므로 자연을 본뜬, 그것도 아주 잘 흉내 낸 시를 연구해서 그 시를 모방하는 것은 시 쓰기 기술을 익히는데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고했다.
‘바꾸어 쓰기’는겉보기엔 간단했다. 우선 훌륭한 작품에서 모범이 될만한 문장 하나를 고른다. 그 문장을 분석한 후 최초의 문장과 아주 먼 이미지로 고쳐 써본다.
선생님이 몇 가지 예시를 들어주셨는데, 처음 선택한 문장이 몇 번의 보정을 거치자 영화 ‘트랜스포머’의 기계들처럼 완전히 다른 모양으로 바뀌었다.
오호!!! 정말 신기했다. 최초 문장의 흔적이 전혀 남지 않았다. 완전히 새로운 문장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연금술?
이해를 돕기 위해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다. 내가 모방할 문장은 문태준 님의 <구순의 입과 입술에는>의 일부분이다.
구순의 입과 입술에는 저 먼 계곡처럼 무른 구름더미가 가득하였습니다
이 문장을 바꾸어 써보겠다. 우선 사람의 입을 자연물에 비유한 원문을 따라서 ‘( )의 입에는 ( )이 있다’를 채우면 된다.
나는 ‘(아이)의 입술엔(봄볕을 쪼아대느라 분주한 병아리의 재잘거림)이 있다’로 바꾸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아이의 입술이 아니라 눈동자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그리하여 고친 문장은 다음과 같다.
아이의 눈동자 속에는 아카시아꽃 송이송이 건너 다니는 꿀벌들의 날갯짓이 들어 있다
이 문장을 보면 어떤 느낌이 떠오르는가.
봄철 약동하는 생명의 호기심이 마구마구 샘솟지 않는가(강요 중!).
한평생 화려하게 피워냈던 꽃과 잎을 다 버리고 굽이굽이 사연으로 깊어진 겨울의 고요함을 느낄 수 있는원문과는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쯤에서 그쳤어야 하는데… 짜깁기에 재미를 들인 나는 문장이 아니라 시 한 편을 모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지난번 다섯 스승 만들기 프로젝트(9화 '단기간에 시 쓰는 법 배우기')에 따라 열심히 읽고 있던 시집을 꺼내 들었다.
휘리릭 넘긴 여럿 시 중에서 ‘그리운 여우 <안도현 지음>'가 눈에 들어왔다. 당연히 이 시를 고를 수밖에(이유를 알고 싶은 분은 1화 ‘다시 시’ 부분을 참고하세요).
나는 눈도 털도 빨간 여우, 눈발을 헤치고 먹을 걸 찾아 인가로 내려온 여우를 상상하며 시를 읽고 또 읽었다.
시는 부르르 몸을 흔들어 눈을 털고 땅바닥을 탁탁 치며 작은 눈을 글썽이는 여우를 내 코앞까지 데려왔다. 하지만 모방은, 글쎄……. 머리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애만 썼다.
지나치게 잘 쓴 시는 오히려 따라 할 길이 없었다. 격차가 너무 커 손댈 엄두가 안 났다. 내게 그리운 여우를 모방하라는 것은 마치 초딩에게 레오나르도다빈치의 그림을 모작하라는 것과 같은 요구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 멋진 구절들을 음미하는 것, 그뿐이었다. 모방도 실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어찌하여 시 한 편을 썼다. 나만 아는, 나만 느끼는 그리움이 담긴 시를 완성했다.
잘 쓴 시를 모방하기 위해 여러 번 읽다 보니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겨났던 것이다. 논리적 비약은 심하지만 이로써 모방의 효과는 입증(?)된 걸로 쳐도 되지 않을까.
대보름
구름 뚫고 보름달 돋았다는 소식에 집을 나섰는데
달은커녕 하늘도 손바닥만한 것이
웃자란 건물 무성한 잡초에 갇혀
두리번두리번 아무래도 달은 없고
빙글빙글 잡초 사이 몇 번을 돌다가
기어코 낡은 전구 하나 발견했다
아파트 끄트머리 위태롭게 밝히는
44억 년 된 필라멘트
환한 밤거리가 어색한 수줍은 달이
주춤주춤 너의 눈동자에 내려앉을 때
무심코 한 사람, 네 곁에 멈춰 서
조각난 하늘 들여다본다
희미한 달이래도 달이라고
그 사람 절로 두 손 모으고
발랑발랑 산책 나온 강아지
영문 없이 주인 따라 고개 젖힌다
용기 낸 보름달이 그 달이, 손가락 끝마디에 내려앉아
지나가던 두 사람 은근슬쩍 놀래키자
예정에 없던 보름달 마주한 토끼 눈, 두 사람
더듬더듬 오랜 기억 끄집어내는데
달 따라 하얀 미소 은빛 부스러기
작은 하늘로 쏟아져 내렸다
건물이 달을, 명색이 보름인 달을
야금야금 삼키고 있을 때
두 사람 곁으로 소리소문 없이 다가선, 또 다른 사람
그렇게 사람이 모이는 동안 달은 아쉬움으로 야위었으나
남몰래 달은, 정월의 달은
쌓인 눈동자 수만큼 밝아지고 있었다
*후기
한 주간 쓴 시가 있으면 수업 시간에 제출해 강평을 받는다. 나는 위의 시를 제출하고 콩닥콩닥 설렌 마음으로 선생님의 말씀을 기다렸다.
“음~~ 이 시는 한 편에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어서 주제가 분명하지 않네요. 무얼 전달하고 싶었어요?”
역시 나만 알고, 나만 느끼는… 훌쩍훌쩍
사실 이 시는 정월 대보름을 바라보며 강강술래를 하던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쓴 것이다. 그땐 흔해 빠진 공터에서 친구들이랑 자주 놀았다. 고무줄놀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오징어 게임, 연날리기 기타 등등.
요즘은 예전같이 넓은 공터를 보기가 어렵다. 아파트 사이사이 잘 관리된 놀이터가 있긴 하지만 거기선 제대로 하늘이 안 보인다. 슈퍼문이 떴다는 뉴스를 듣고 달 보러 나갔는데 우후죽순 지어진 건물에 가려서 찾을 수 없었고, 어찌어찌 간신히 찾은 달의 모습은몹시 허무했다. 도시의 환한 불빛에 비해 존재감도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을 보고 서있자니 행인 1, 2, 3이 곁에 서서 함께 밤하늘을 봤다. 서로 말을 나누진 않았으나 그들의 마음에도 어릴 적 본 달에 대한 그리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여전히 신비로운 달을 향해 뭔가를 빌고 싶은 마음도.
그렇게 각자의 눈동자에 비친 달이 많아질수록, 각자의 가슴에 담은 달이 많아질수록, 달은 수백 수천 개로 늘어나 그 빛이 점점 밝아지진 않을까. 이런 상념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의도가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니!
내, 이럴 줄, 익히 알았지만, 서글픈 건 어쩔 수 없다.
“등장인물을 좀 줄여보면 어떨까요?”
선생님은 내용이 복잡하니 한 사람으로 주제를 전달할 방법을 모색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가지치기할 문장이 많다는 말씀도 빠트리지 않으셨다(중언부언했다는 의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