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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Feb 23. 2024

시의 호흡

 시를 읽다 보면 당김음을 들을 때처럼 긴장된 리듬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흐트러진 박자가 신기해서 몇 번을 다시 읽는다.    

  

 그리고 고민한다. 시인은 어째서 이 부분에서 행을 바꾸었을까.     


 “이번 시는 행을 너무 많이 나누었어요. 이건 그냥 한 행으로 처리하는 게 좋겠네라는 선생님의 강평을 들으면 또 고민한다.


 행과 연은 어떻게 나누는 것일까.     


 행과 연에 관한 수업을 들은 후에야 나는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행과 연은 호흡에 기초한 것이었다. 대체로 주어와 술어로 이루어진 한 문장을 호흡의 기본 단위로 상정하고 중간중간에 쉼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정도에 따라 행과 연을 나누면 된다.


 각 음보 사이에는 반 박자의 쉼표가, 행과 행 사이에는 2박자의 쉼표가 숨어있다.


 더 긴 여운이 요구돼 4박자의 쉼표가 필요하 연과 연으로 나누면 다.      


 전통 민요나 가요로 익숙해진 우리의 3 음보, 4 음보 호흡 때문에 시에서도 3, 4, 3, 4 음보의 리듬이 흔한 편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호흡은 시인마다 다르고, 같은 시인이라도 시마다 달리 쓴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의도적으로 긴박감을 전달하기 위해 시인은 낱말을 토막내거나 색다른 곳에서 문장을 끊어버린다.


 지나치게 규칙적인 호흡은 단조롭게 느껴지기에 이런 변주를 시도하는 것이다.      


 앞서 내가 독특하다고 했던 리듬도 변주의 한 형태였다. 당김음처럼 느껴졌던 그 부분은  '행간걸침'이라 불렸는데 앞 행의 끝 구절이 다음 행에 걸쳐지면서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시인의 엄밀한 계산 하에 만들어진 엇박자였던 것이다.


 시인들은 이처럼 시의 이미지를 낯설게 하기 위해 자연스러운 호흡에서 벗어나 의도적으로 행과 연을 나눈다.      


 시를 잘 모르는 나조차 그런 부분에 눈길이 가고 평소보다 꼼꼼하게 읽는 걸 보면 행과 연의 역할은 제법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운율과 관련해 놓치면 안 될 부분은 ‘각 행과 각 연은 그 무게가 같’는 점이다. 글자수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행과 연은 동급으로 취급다.


  한 글자로 이루어져 있건 수십 글자로 이루어져 있건 독립된 행이라면 중요도가 같. 마찬가지로 한 행으로 이루어져 있건 다섯 행으로 이루어져 있건 독립된 연이면 같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 시집을 읽으면 시가 완전히 새롭게 다가온다.

     

 다음은 이런 점을 고려해서 쓴 시 두 편이다.

  



그건     


부르면 강아지처럼 달려가는

얼굴 보면 환한 햇살

걸어가는 뒷모습에 흩날리는 벚꽃처럼

온 세상 너로 물드는 그건    

 

사랑이야          



고통의 시작     


내내

파란 하늘을 원한다면

구름 한 조각이 맘에 걸리고     


줄곧

고요한 산을 바란다면

낙엽 한 장에도 화들짝 거린다          





 첫 번째 시는 첫 연은 4행, 두 번째 연은 1행으로 '사랑이야' 이 한 줄이 앞의 네 줄과 같은 비중으로 의미가 있다.


 두 번째 시는 '내내'와 '줄곧'을 강조하기 위해 별도의 행으로 놔눴다.


 시의 호흡이 조금은 쉽게 이해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써봤다.

 

 위 시에 대한 선생님의 강평>


 첫 번째 시는 그럭저럭 볼만하지만 습작단계에서는 좀 더 길게 쓰는 습관을 들이라고 하셨다.     


 두 번째 시는 의미 전달이 잘 안 된다고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게다가 제목을 ‘고통의 기원’이라고 써서 혼났다.      


 ‘관념어 금지!’를 숙지하고 있었지만 다른 제목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썼더니…


 선생님은 차라리 ‘하늘 그리고 산’이 어떠냐고 하셨다. 그러나 나의 고집을 꺾진 못했다. 절충안으로 ‘고통의 시작’이라고 수정했다.


 난 두 번째 시가 좋기만 하구만. 쩝ㅠ


 최근 독감에 걸린 후로 많이 아팠다. 몸이 좋지 않으니 글도 써져 발행이 늦었다.


 글쓰기의 호흡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염려 중이다.


 연재 펑크내면 안되는데~~


 시의 호흡을 쓰면서 글쓰기 호흡도 회복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모두들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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