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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Mar 08. 2024

깜짝 파티

 잠깐 낮잠을 잔다는 게 너무 많이 자버려서 헐레벌떡 강의실로 뛰어갔다. 역시나 선생님이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죄송합니다. 선생님).     


 막 수업을 시작했을 때 나보다 더 지각한 학생이 양손 가득 무언갈 싸 들고 왔다.     


 그것을 받아 든 숙녀 1.     

 “선생님. 오늘은 수업 조금 일찍 마쳐야겠는데요.”


 선생님이 궁금한 눈으로 숙녀 1을 바라봤다.


 “숙녀 5께서 시화집이랑 먹을 걸 잔뜩 들고 오셨네요.”

 우와아!!!”     


 순식간에 교실 안이 환호성으로 물들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수업을 진행할까, 싶었다. 그러나 나의 예상과 달리 곧바로 수업이 시작됐다.      


 선생님은 판서까지 하시며 열심인데 내 마음은 그저 콩밭에 가 있었다.     

 

 ‘시화집엔 무슨 시가 실려 있을까. 그림은 어떨까?’     

 선생님의 제자가 출간했다고 하니 호기심이 더 컸다.     


 ‘혹시? 나도? 언젠가?’

 불타는 야심으로 집중을 못 하는 사이 한 시간이 지나갔다.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숙녀 1이 사물함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도대체 저것은 무엇일까, 쳐다보는 와중에 상자를 싸맨 금색 보자기가 풀렸다.      


 오~~     


 그것은 오만 가지 도구가 들어있는 보물상자였다. 상자 안에서 전기 주전자, 일회용 접시, 칼, 휴지 기타 등등 물건이 쏟아져 나왔다. 저 크기에 어떻게 이 많은 물건 들어가 있었는지 신기했다.    

  

 상자의 정체가 드러나자 갑자기 학생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누구는 포트에 물을 담아 오고 누구는 과자를 나눠주고 누구는 차를 탔다.      


 숙녀 5가 가져온 엄청난 양의 과일을 몇 이서 나눠 들고 씻으러 갔다. 내가 포도와 사과를 씻어 올 동안 이미 몇몇 접시에 예쁘게 썰린 망고와 용과가 놓여있었다.      


 포도를 받아 든 숙녀 3이 나에게 부탁했다.      

 “바람님. 이 배 좀 깎아주세요.”


 손이 부족했던 것이다.


 “네”

 대답을 하고 배를 잡았다. 아~~ 불안했다. 배가 축구공만큼 컸다. 칼을 잡은 손이 떨렸다.    

 

 “그렇게 하지 말고 일단 반으로 잘라봐요.”

 낑낑거리는 나를 본 숙녀 2가 말했다.      


 “네”     

 그런데 과도가 짧아 배를 이등분할 수 없었다.     


 깎아둔 과일을 배분하고 돌아온 숙녀 4가 옆에서 지켜보다 말했다.

 “아이고~~ 제가 할게요.”     


 아! 내 손은 고양이 손보다 못했던 것이다. 차를 나눠주고 돌아온 숙녀 3이 그 꼴을 보더니 활짝 웃었다.      

 “그새 손이 바뀌었네요.”     


 그렇게 나는 과일도 못 깎는 인간으로 낙인 됐다.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간식은 맛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


 우리는 배를 채운 후 시화집을 구경했다. 한 면엔 그림, 다른 면엔 시가 적혀있었다.


 그림을 배운 적도 없다는데 숙녀 5가 손수 그린 그림은 참으로 따뜻했다.      


 한눈에 무엇을 전달하는지 알 수 있었고 색감이 곱고 자유분방했다. 이건 달리 같고, 이건 뭉크 같고 저건 모네 같고… 그림에 대한 평이 이어졌다. 여기에 그림과 깔 맞춤한 시까지 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시는 그리운 부모님, 사별한 남편, 백조 같은 손녀, 늙음에 대한 생각을 노래했다. 그림만큼 예쁜 언어로 표현됐다.      


 우리는 눈과 가슴, 입까지 달달한 시간을 함께했다.   

   

 그림과 시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마치고 숙녀 5가 말했다. 시집을 내고 보니 마음 자세가 달라졌다고. 급하게 만든 거라 부족하지만 앞으로 2권도 계획하고 있다고.      


 숙녀 5의 이야기에 마음이 뭉클했다. 올해 76세라는 그녀는 여전히 꿈꾸는 소녀의 얼굴을 하고 있다.   

   

  나는 그녀의 시와 그림에 감탄하고 첫 시집을 낸 시인의 표정에 감동했다. 우리는 모두 그녀의 두 번째 시집을 응원했다.      


 그리고 잠깐의 휴식 후, 수업은 평소와 다름없이 진행되었다. 시인들의 열정이란.      





붉은 입술 매화가 인사하면

개나리 샛노랗게 기지개 켜고   

  

겨우내 심심했던 박새

하늘 높이 봄을 그릴 때

담장에 기대어 공중제비 구경하던 목련

홀로 흥겨워 하얀 꽃잎 놓쳐버린다  

   

난데없이 떨어지는 봄에 심술 난 하늘

바람과 비는 이때다 싶어 장단 맞춘다



* 꽃들이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봄이 왔네요. 반짝 찾아온 꽃샘추위에 두꺼운 옷을 다시 꺼내 입으며 시를 썼습니다. 변덕스러운 날씨라도 봄이 오니 참 좋습니다. 설레는 봄. 여러분과 함께 누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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