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서사보단 묘사’에서 사물화 하기를 언급한 적이 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왜? 꼭? 그래야만 할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사물화’의 의미가 정확하게 와닿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걸까?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 이 부분에 대한 수업이 진행됐다.
시는 인간의 정서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쓴다. 쓰는 행위 자체로 스스로 위로받고 치유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타인의 공감까지 얻는다면 기쁨은 배가될 것이다. 종자기가 있었기에 백아의 거문고 연주가 즐거웠던 것처럼 시인에게도 지음이 필요하다.
음악이 그러하듯 시도 소통의 도구가 될 때 그 의미가 깊어진다.
문제는 그 소통이라는 것이 엄청나게 어렵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대화를 관찰해 보면, 개떡같이 말하는데 찰떡같이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면 분쟁이 생길 리 없지요)는 전무하고 찰떡같이 말해도 개떡같이 알아듣는 경우는 종종 있다. 쿵짝쿵짝 대화를 나누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는 내 마음은 내 마음이고 네 생각은 네 생각일 뿐인 양상을 띤다.
이런 모습은 정보전달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이 옆 사람에게 열 가지 정보를 전했을 때 옆 사람은 그중 자신의 입맛에 맞는 몇 가지만 받아들인다. 게다가 그 몇 가지도 듣는 사람의 내적 상태에 따라 전하는 사람의 의도와는 다르게 변형된다. 선별과 추론을 통해 정보의 양과 질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렇게 몇 사람만 거치면 첫 사람의 말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곤 한다.
이처럼 어려운 소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시에서는 사물화라는 기법을 사용한다.
사물화란 인간의 정서와 생각과 같은 추상적인 관념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물질로 바꿔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신맛을 설명해야 한다고 가정할 때 ‘눈물이 찔끔 날 것 같이 놀라운 맛이고 이가 시리고 입에 침이 고이는 맛’이라고 해봤자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대신 레몬을 껍질째 한입 베어 물었을 때의 맛이라고 하면 바로 알아들을 수 있다. 이렇듯 신맛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레몬을 베어 무는 것’으로 표현해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만드는 것을 사물화 하기라 부른다.
사물화 하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시로는 김동명 님의 ‘내 마음은’을 들 수 있다. 이 시는 임에 대한 사랑을 옥같이 부서지는 호수, 남김없이 타오르는 촛불, 밤을 새우는 나그네, 바람이 일면 외로이 떠나는 낙엽으로 표현해 복잡 미묘한 화자의 감정을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시킨다.
이런 시를 보면 ‘아. 나는 시를 쓰면 안 되겠구나’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걷다가 갑자기 무릎이 퍽 꺾이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절필하기엔 너무 햇병아리 신세라 좀 더 기다리기로 한다.
‘내 마음은’을 필사하고 몇 번 흥얼흥얼 가곡으로도 불러보며 병아리의 마음을 달랬다. 그리고 제멋대로 널뛰고 외부 환경에 취약한 내 마음을 사물화 해보는 것으로 시의 세계에 한 발짝 더 다가가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