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으로부터 맨 처음 받은 선물은 ‘그리운 여우 <안도현 지음>’라는 시집이었다. 책은 야시꾸리한 제목과 매끈하게 잘빠진 사이즈로 나를 유혹했다. “언제 어디서나 들고 다니세요. 저는 자그마하고 가벼우며 상큼합니다”라며 속삭였다.
표지를 넘기면 검은색 잉크를 발라 찍은 그의 손바닥이 나온다(네, 당연히 첫사랑이죠. 다행히 지금의 남편입니다요). 지문이 잘 보이도록 찍기 위해 신문지에 여러 번 연습까지 했다고 한다.
내가 그리울 땐 가만히 눈을 감고 손을 올려봐. 귤처럼 상큼한~~ 하뚜 뿅뿅
요렇게 깜찍한 글귀도 적혀있다.
자그마치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와 그닥 가까워지지 못한 삶을 살던 내게 다시, 시. 시? 시! 가 다가왔다.
어쩌다? 시를 쓰고 싶어서? 노노노.
성숙한 작가가 되기 위해 글쓰기 수업을 듣고 싶었는데 개설된 강좌가 시 창작밖에 없었다. 주절주절 산문으로 써도 의사전달 못하는 풋내기 작가가 감히 촌철살인, 시를 쓸 수 있을까? 생각할수록 염려되고 두려운 일이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현재 인근 지역 오프라인으로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글쓰기 수업은 시 창작. 게다가 수강료가 석 달에 사만 오천 원. 그리운 여우처럼 유혹적이다. 시 창작은 자그마하고 가벼우며 상큼하다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포기해 버리기엔 아까운 기회였다. 가성비에 꽂힌 건 아닌지 의심스럽지만 결심했다. 나도 한 번 시를 써보기로.
문학의 꽃인 시를 배우면 못 쓸 글이 없지 않을까. 무한긍정 기대를 품고 평생학습센터로 달려갔다. 매주 금요일 오후 3시 강의를 듣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그날의 수업을 기록할 것이다. 등록을 마쳤으니 이제 시가 가져올 삶의 변곡점을 누려볼 준비가 되었다. 두둥. 개봉박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