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3시. 달칵, 하고 문을 열었다. 열 명 남짓 앉으면 적당할 정도의 강의실이 눈에 들어왔다. 맞은편 창을 통해 쏟아지는 빛이 강의실 안을 환히 밝히고 있었다. 칠판 앞엔 베토벤을 연상시키는 선생님이 서 있고 선생님과 비슷한 연배의 남자 두 분이 좌석 중간쯤에 앉아 있다.
나는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얼른 뒷자리로 갔다. 노트와 필통을 책상 위에 꺼내 놓고 가지런한 필기구처럼 앉아 수업을 기다렸다. 째깍째깍 시계 초침이 움직였다. 제법 시간이 지났는데 수강생은 여전히 단 세 명. 변화가 없었다. 헐~~ 동공에 지진이 일었다.
시간이 지체되었으니 일단 수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선생님은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로 강의를 열었다.
“시의 기원은 시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춘추전국시대부터 지금까지 긴 시간 시가 쓰인 이유는 어찌 보면 시를 정의 내릴 수 없기 때문이지요. 이는인간의 감정을 나타낼 수 있다면 형식과 틀에 한정하지 않고 모두 시로 인정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선생님은 그 누구도 시가 뭔지 모르기 때문에 시를 한마디로 규정지을 수 없다고 했다. 억눌린 욕구를 분출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글이라면 무엇이든 시로 여겨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일단 써라. 무조건 써라. 닥치는 대로 써라”가 강의의 핵심이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자니 써야지, 써야지, 마음만 먹고 시작도 못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마음이 뜨끔했다. 하루 이틀 미루다 결국 쓰려던 걸 까맣게 잊어버린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같은 행태를 반복하는 사이 나는 용두사미, 흐지부지, 유시무종의 아이콘이 되었다. 심장을 콕콕 찌르는 선생님의 말씀은 계속됐다.
“속에 아무리 엄청난 보물이 있어도 꺼내 놓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되든 안 되든 막 쓰다 보면, 뭐가 돼도 됩니다.”
맞습니다. 맞고요!
생각만 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뭐라도 써놔야, 이후에 닦고 기름칠하고 광낼 게 있다. 자아비판의 시간으로 자존감이 쪼그라들고 가슴이 저릿저릿했다. 그때 어여쁜 언니들이 구세주처럼 나타났다. 나는 반가운 표정으로 눈인사를 보냈다. 그녀들은 옆 옆자리에 나란히 앉으면서 미소로 화답했다.
이제 얼추 수강생이 모였으니 자기소개 타임으로 넘어갔다. 주절주절 이전의 경력들이 나열됐다. 대부분 퇴직 후 소일 삼아 시를 배우러 왔다고 했다. 기억에 남을만한 이야기가 없어 나는 그저 멍하니있었다. 그런데 한 분의 입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아흔이 넘어 시를 쓰기 시작해 시인이 되신 시바타 도요님을 알게 되었어요. 그분을 보면서 참으로 멋진 삶이라 느꼈지요. 시를 쓰는데 늦은 때란 없다고 여겨지더군요. 그래서 저도 도전해 보기로 했어요.”
부끄러워하는 얼굴이었지만 단호한 음성이었다. 듣는 와중에 (이번엔 다른 의미로)가슴이 저릿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휴대폰으로 ‘시바타 도요’를 검색했다. 시집과 같은 제목의 시 한 편이 소개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