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는 ‘세 문장’ 시를 살짝 맛보았다. 시식 코너를 돌아봤으니 이젠 제대로 작법을 배울 차례다. 앞으로 할 공부는 언어를 다루는 기술에 관한 것이다.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부터 어른들은 기술을 배워야 먹고살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지금은 어떨까. 언어 기술도 배우면 전업 작가가 될 수 있을까. 글로 밥벌이하는 소망을 담아 시동부터 걸어 본다. 부릉. 부릉~~ 과연 어떻게 써야 시가 될까?
첫 번째 주제는 ‘하나만 판다’이다.
왜 하나만 파는가. 우선 독자가 복잡한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뒤죽박죽 막 섞으면 글이 산만해진다. 포인트가 없는 글은 집중이 어렵다. 집중할 수 없는 글은 읽기 곤란하다. 독자는 그런 글을 원하지 않는다.
틱톡과 트위터를 이용하고, 유튜브도 쇼츠로 소비하는 현대인은 짧고 명쾌한 콘텐츠를 선호한다. 산만한 글에 매력을 느끼는 이는 드물다.
특히 습작 단계의 시인이라면 더욱 유념해야 한다. 복잡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낼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 스스로 천재라 여기지 않는 한 하나의 사건에 대해, 하나의 정서로, 하나의 주제를 쓰는 것이 좋다. 글감도 하나의 주제로 묶을 수 있는 대상에 한정하고 화자도 한 명으로 정하자.
글의 주제가 슬픔이라면 쭈욱 슬픔을 쓰도록 한다. 슬픔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반가움이 나오고, 반가움에서 뜬금없이 기다림으로 옮겨가면 안 된다. 미친 ㄴ 달밤에 널뛰듯 하면 몹시 곤란하다. 실제로 (울다가 웃으면 똥구멍에 털 나는) 어처구니없이 민망한 일이 생길지 모른다. 그러니 되도록 하나만 쓰자.
하나만 쓴다고 단조로울까 걱정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의 슬픔과 너의 슬픔은 같지 않고 나의 우울과 너의 우울도 같지 않다. 오늘의 기쁨이 어제의 기쁨과 다르고 내일의 기쁨은 또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이렇듯 구체적 상황에 따라 정서는 섬세하게 구별되므로 이것저것 섞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선생님은 차는 도로로, 기차는 철로로, 비행기는 항공로로 다녀야 하듯 시도 ‘분명한 주제’를 따라 이동해야 한다고 했다. 주제를 분명히 드러내려면 하나에 초점을 두고 써야 할 것이니 ‘시의 길’은 결국 ‘하나만 판다’로 귀결된다.
마침 이번 주에 소개하기로 약속한 두 번째 시의 주제도 ‘길’에 관한 것이다. 수업을 들으며 아마도, 시의 길은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삶의 길 찾기는 요원할지도… 어쩌면 이미 찾은 것일지도… 모를 상황에서 습작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