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을 떠나신 건가요?

안선유, <새들이 사는 마을>

by JC

언덕을 떠나신 건가요? 영화를 시작하는 이미지는 마을에 남은 자가 마을을 떠난 자에게 남긴 편지다. 진주가 문장을 읽는 동안 남조는 빈 집 문틈으로 안쪽을 들여다본다. 남조의 시선으로 폐허가 된 집의 형상이 나타난다. 진주는 철저한 외부인의 시선으로 마을을 구경거리로 대한다. 남조는 진주가 마을을 타자화하는 행동과 언행에 침묵으로 일관한다. 뭐라 말할 자격이 자신에게는 없다고 남조는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빈 집을 닫힌 문 바깥에서 간신히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떠난 사람'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배경이 된 이태원 우사단 언덕은 88 올림픽 즈음부터 재개발 이야기가 나돌았던 곳이다. 동네는 2000년대를 거치며 뉴타운 지구로 선정되었고, 재개발이 확정되었다. 하지만 20여 년의 시간 동안 사업은 지연되었다. 사라짐이 예정된 동네는 떠난 사람과 떠날 사람으로 주민을 이분화시켰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연의 상태로 머무는 시간이 생겨나 마을은 다시 한번 공동체의 장이 되기도 했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있는 영화의 감각이 이로부터 기인한다고 생각했다. 떠남과 머묾이 공존하는 우사단 언덕의 모습을 형식적으로 담아내려 했던 건 아닐까.


영화의 제목은 새들이 '떠난' 마을이 아니라 새들이 '사는' 마을이다. 그렇게 영화는 현재형으로 적히며 마을을 과거로 보내기를 거부한다. 남조는 언덕을 떠나며 극단을 등졌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그가 바치고자 했던 예술이었을 것이고, 그렇게 살아가는 삶의 형태 자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남조가 느끼는 스스로의 죄책감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남조를 단순히 떠난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다. 그가 활동했던 까마귀 극단의 공연은 남조와 진주의 산책 사이사이에 틈입하며 과거와 현재를 무마하는 감각으로 관객을 이끈다.


남조에게 이곳에 들어설 아파트에 함께 살자고 제안하는 진주의 무해함은, 정작 남조의 행복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진주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서글프게 드러낸다. 언덕을 떠나지 않았다면 남조는 행복했을까? 혹은 남조는 언덕을 떠나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어느 질문에도 손쉽게 답할 수 없어 언덕을 내려가는 카메라는 하염없이 흔들리고, 남조는 언덕을 자꾸만 돌아본다. 영화 후반부 까마귀 극단과 남조가 대면했을 때, 남조는 본인의 과거와 맞닥뜨린 것일까? 그보다는 있는 그대로, 여전한 현재로 남조는 극단을 마주했을 것이다.


사라지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고 영화는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는 위태롭게 뒤섞이고, 영화는 까마귀 극단의 공연을 복원하며 우리를 다시 언덕으로 이끈다. 우리는 언덕을 떠나도 그곳에 살고 있는 새들을 몇 번이고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남조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를 응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너무 큰 불행과 우울이 그를 덮치지는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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