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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찬 Aug 26. 2022

아마추어의 마음으로

김새봄, <작은새와 돼지씨>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김종석 씨에게 김새봄 감독이 묻는다. "김종석 씨는 김춘나 씨가 예술가라고 생각하세요?" 이전 대답에서 자기는 예술가가 아니라던 종석 씨는, 아내 춘나 씨를 향해서는 '존경하는 예술가'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이유로 춘나 씨의 그림이 아니라, 시간을 돌려 곧장 연애편지를 언급하는 종석 씨. "김춘나 씨가 손끝으로 쓴 첫 연애편지가 내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에 예술가라고 생각해." 예술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는 아주 단순한 말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정직하게 와닿는 답변 역시 드물다고 느꼈다. 종석 씨의 대답을 영화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다.


<작은새와 돼지씨>는 영화감독인 딸이, 시를 쓰는 아빠 김종석과 그림을 그리는 엄마 김춘나가 작은 전시회를 열기까지의 과정을 카메라로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하지만 김새봄 감독이 포착한 두 사람의 시간은, 그들이 지난한 일상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애써왔던 과거의 긴 시간을 아우른다. 영화 안에는 부모를 바라보는 딸의 다정한 마음과, 경비원과 주부로서의 일상 안에서 창작을 지속하는 두 예술가를 대하는 감독의 탐구적 마음이 교차한다. 곧 <작은새와 돼지씨는> 이들의 원동력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살피는 영화이기도 했다.


59년생 돼지띠 부부 종석 씨와 춘나 씨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 사이사이에는 그들의 일상이 있다. 하지만 일상 속의 예술, 혹은 예술 속의 일상이라고 말하는 건 어쩐지 어색하다. 그보다는 영화가 그것들을 구분하지 않고 나란히 둔 것처럼 보였다. 경비실 안에서 시를 쓰는 종석 씨와 그의 뒤에 있는 밥솥은 동등한 크기로 화면을 차지한다. 춘나 씨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냄비는 팔팔 끓으며 제 역할을 다한다. 또 다른 장면. 겹겹의 문 안쪽에서 춘나 씨가 열심히 캔버스에 덧칠을 하고 있다. 꼭 마음 가장 안쪽 안전한 공간에 도착한 모습처럼. 그러나 실은 그곳이 바깥세상과 맞닿은 창가였을 줄은 그 자신도 다 알지 못했을 것이다.


예술과 일상의 관계에 대해 어떤 깊은 사유를 할 능력은 없지만 그래도 생각하게 되었다. 예술이 나의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발견해야 하는 건 일상의 조각들이 아니라 일상 자체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종석 씨는 담배 보루 뒷면이나 주민 알림지 등 이면지에 시를 쓴다. 생의 윤곽을 배경으로 삼아 글자를 타고 항해를 하듯 자유롭게. 그에게 이면지는 단지 여백이 아니라 그의 시를 완성시키는 필수적인 재료에 가깝다. "종이하고 수를 놓는 거"라고 종석 씨는 말했다. 그래서 그의 시는 '컴퓨터의 고딕체'로 옮겨질 수 없다. 시를 쓰던 노동의 시간과 장소가 종이 위에 번져있기 때문이다. 춘나 씨는 고된 슈퍼 일을 하던 때 서예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글씨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또 "힘이 있으려면 칠만 해선 안 되겠더라"며 직접 줄기를 가져다 캔버스에 붙였다는 춘나 씨. 그 기법이 얼마나 참신한지를 따지기 전에, 그에게 서예와 그림이 처음으로 자기만의 생을 피워내는 창이자 방이었다는 것만을 옮겨내고 싶다.


그렇게 작은새와 돼지씨는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을 넘어, 시와 그림을 살아가는 일을 더듬게 했다. 마지막 해변에서 카메라는 김새봄 감독과 종석 씨의 손에 차례로 들리며 그곳에서 다 함께 춤을 춘다. 카메라의 움직임이 내 안에 떨림으로 기록되었다. 그 진동 위에 펜과 붓이 아닌 삶을 가져다 대고 싶었다.


무엇보다 <작은새와 돼지씨>는 우리가 지녀야 할 삶의 태도로서 배움의 과정을 그린 영화였다. 영화 초반 작은새가 돼지씨의 발톱을 깎아주는 장면은 후반부 돼지씨가 작은새의 발바닥에 박힌 가시를 빼내 주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가장 낮고 먼 신체 부위를 상대의 손에 맡기는 두 사람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필수적으로 '함께'여야 함을 이야기하는 장면들에 마음이 갔다. 춘나 씨는 앞선 질문 -자기 자신을 예술가라고 생각하는지- 에 대한 답변으로 스스로를 '아마추어'라 칭했다. 아직 배우고 있는 중이라면서. 물론 이 아마추어란 단어는 춘나 씨가 스스로를 낮추기 위해 사용한 표현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작은새와 돼지씨는 그야말로 아마추어의 본래 뜻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들이었다. 라틴어로 사랑을 뜻하는 '아모르(amor)'에서 유래한 단어인 '아마추어'는, '진정으로 그 일을 사랑하는 사람, 스스로 좋아하며 그 일을 즐기는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본래 이 단어가 함의하고 있던 끝없는 열정과 배움의 자세를 두 사람은 저도 모르게 복원시킨 셈이다. 종석 씨는 하루 종일 일만 하고 살면서 50살이 되기 전까지 아내의 참모습을 몰랐었다고 털어놓는다. 춘나 씨와 종석 씨가 배워가는 것은 그림이자 시였고, 무엇보다 서로이기도 했다. 그것은 영화를 통해 부모이자 생활인, 예술가인 두 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배워가려는 김새봄 감독의 태도와도 다르지 않았다. 무지 앞에서 겸허해질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의 자세가, 앞서지도 뒤서지도 않고 인물을 담아내는 카메라의 위치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었다.



두 사람의 본격적인 전시 준비를 앞두고 종석 씨는 이렇게 말한다. "뭔가 이제 시작이구나 생각이 든다." 이는 표면상으로는 전시 자체에 관한 말이었지만 당연히도 그들의 앞날을 향하는 말로 들렸다. 정말 그럴 거라고, 이제 시작일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면 매 순간이 시작일 거라는 대답이 들릴 것만 같다. 처음을 체화한듯 어떤 주저함도 없이 바다에 성큼성큼 들어가는 종석 씨와 그의 재촉에 활짝 웃으며 소심하게 춤을 추는 춘나 씨가 보인다. 몸짓과 노래, 웃음이 스크린을 타고 넘어온다. "큰 얼굴에서 나의 웃음을 보내고 싶네요." 앞서 전시를 보러 온 주민들에게 종석 씨는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에 이르러 그 말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거 참 얼마나 큰 얼굴이길래 이렇게 많은 웃음을 주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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