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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C Aug 31. 2022

선한 마음 씨를 지켜주기 위해

켄타, <우리집에 곰이 이사왔다>, 네이버웹툰

기쁠 때, 슬플 때, 감동적일 때, 깊이 공감했을 때, 그리울 때, 억울할 때, 힘들 때, 무서울 때 등등 눈물은 항상 예상치 못한 순간에, 하지만 가장 명백하게 흐른다. 때로는 눈물을 흘리는 순간이 정말 신기할 때가 있다. 몸과 마음을 구분하기 힘들 때가 많은데, 눈물은 마음과 몸을 잇는 가장 직관적인 선처럼 느껴져서다. 그래서 울게 되는 순간은 항상 즉각적이다. 마음에 바닥이 있다면 거기서부터 수면이 갑자기 차올라 둑을 넘어 흘러나오는 것 같다. 누구나 마음에는 정말 여러 개의 바닥이 있어서, 그 각각의 지리적 작용에 따라 갖가지 이유로 울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물론 정말 태어날 때 말고는 평생 울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도 어딘가에서 몰래 눈물을 참은 적이 있지는 않을까. 울지 못한 울음은 분명 어딘가에 고요히 모여 있지 않을까. 그게 전부 증발하기 전에 토토가 호호 군에게 해준 말처럼 그가 최대한 울어버렸으면 하고 바라지만, 이건 아무것도 모르고 내뱉는 순진한 말이겠지.


갑자기 눈물 얘기를 왜 했냐면 어젯밤에 저 웹툰 16화를 보다가 갑자기 엄청나게 울었기 때문이다(그림 속 장면은 48화다). 그냥 마음이 울고 싶었던 걸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어릴 때는 울었다는 걸 말하는 게 부끄러웠다. 남자애가 울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 수도, 그냥 좀 소심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고딩 때 친구랑 <7번방의 선물> 보러 갔는데 둘 다 겁나 울고 나와서 서로 놀려댄 적도 있다. 그나마 언젠가부터 글을 찔끔찔끔 쓰게 되면서 울었다는 걸 밝히는 게 별로 부끄럽지 않아졌다. 글 써서 올리는 게 훨씬 부끄러웠기 때문에..


<우리집에 곰이 이사왔다>를 본 건 대학교 2학년 땐가. 밤을 새우다가 시험을 몇 시간 앞두고 였다. 아직 룸메가 일어나지 않았던 이른 아침. 룸메가 깨지 않게 몰래몰래 코 풀어가며 울었던 게 기억난다. 요즘 24시간 무료 충전권으로 하루에 한 화씩 꼬박꼬박 다시 보고 있다. 아마 곧 소장할 듯. 왜 이 작품은 나를 이렇게 울릴까. 다시 볼 때도 울 거라고는 생각 안 했다. 근데 전보다 더 울어버리다니. 주인공 곰토토 요원이 나한테 마법이라도 건 것 같다.


내용은 이렇다. 인간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마법의 숲 테바에는 생각하고 말하는 직립보행 동물들이 살고 있다. 그중 작은 곰 곰토토는 마법을 쓸 줄 아는 슈퍼파워 털북숭이다. 테바와 인간 세상 사이에는 테바를 위협하는 어둠의 숲이 있다. 그곳의 괴물들은 테바를 수만 년 간 공격해왔다. 그래서 테바의 국왕은 곰토토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간 세상에 가서, 그들의 지혜와 기술과 문화를 배워올 수 있는지 부탁한다. 그리하여 곰토토는 인간 세상에 가, 현호라는 아이의 집에서(정확히는 마당의 개집에서) 생활하게 된다. 평소 일상은 알바 구하기와 알바하기, 보고서 쓰기의 연속.


이 웹툰을 누군가한테 추천해 본 적은 기억상 거의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지나치게 귀.엽.기. 때문.. 내 주변에는 귀여움을 이유로 이걸 추천해 줄 만한 사람이 없슴,, 그리고 나 역시 이 웹툰을 귀엽다는 것만으로 좋아하는 게 아닌데, 쫌 심각하게 귀엽긴 해서 작품의 매력이 귀여움으로 퉁 쳐질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때문이기도 하다.


곰토토는 인간 세상에 살면서 현실적인 생존법을 터득한다. 개집을 제공받는 대가로 마당을 청소해 주고 월세를 준다든지, 함께 식사를 하지 않는다든지 하는. 하지만 현호네 집은 자본주의적인 바깥의 논리가 무화되는 곳이다. 현호의 엄마는 항상 늦게까지 일을 해야 했고, 그래서 초등학교 저학년생인 현호는 귀가 후 항상 집을 혼자 지켰다. 토토는 자연스레 그런 현호의 친구가 되어준다. 같이 밥을 먹고 시간을 보내면서.


눈물에 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우곰이>를 보며 나오는 눈물은 뭐랄까 원래 눈물의 속성이 그러하겠지만 그 순도가 넘나 투명한 것 같아서다. 나는 이 작품을 무엇보다 '선함'으로 기억한다. 동물을 무시하는 인간 세상에서 힘겹게 살아가며 현실의 각박함을 체화한 곰토토가, 현호와 현호 엄마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을 통해 선함을 통과해가는 이야기. <우곰이>에는 그 착함이의 옆에 외로움, 우울, 슬픔, 아픔 같은 아주 크고 깊은 일차원적인 친구들이 등장한다.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할 수 없는 감정들. 하지만 그 친구들의 곁에 착한 마음이 있어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착하다'라는 표현은 이 세상에서 너무너무 많은 오해와 무시를 받는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마음 놓고 착하다고 말할 수 있어서. 있는 그대로 선한 존재들 앞에서 마음 놓고 울 수 있어서.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닌데도,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그냥 그런 상상을 하게 된다. 내 마음 안에 마음 씨가 살고 있다는 상상. 마음 씨는 참 선한 존재인데 동시에 엄청 연약하기도 해서 그가 다치지 않게 항상 조심조심 보살펴 주어야 할 것만 같다. 그리고 마음 씨를 지켜주기 위해 나는 꼭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고. 그럴 수 있을 것 같고. 선한 마음 씨는 그렇게 끝내 살아남을 거라고 믿게 된다. 그래서 어릴 때 일기장에 쓰던 삐뚤빼뚤한 글씨로 쓰고 싶어진다.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정말 그렇게 될 수는 없을 것 같은 어른이 되어버렸지만, 그 바람 자체로도 얼마나 기적 같은 마음일까. (20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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