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램덩크>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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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사진이 표지로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산왕과의 사투에 모든 걸 쏟아낸 북산은
이어지는 3회전에선 거짓말처럼 참패를 당했다.
<슬램덩크>는 하이라이트였던 산왕전 이후, 다음과 같은 문장과 함께 갑작스럽게 끝이 난다. 이제는 '북산엔딩'이라는 하나의 밈이자 표현이 된 이 마무리는 <슬램덩크>를 전설적인 위치에 올려놓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만화를 다시 보며 종종 상상해본 적이 있다. 북산의 하계 전국대회 마지막 경기는 대체 어땠을까? 하지만 나는 북산이 최강산왕에게 대항해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었던 그 경기를 너무 사랑했다. 그렇기에 북산이 '거짓말처럼 참패를 당했다'는 경기를 애써 보고 싶지는 않았다. (진다는 게 나를 얼마나 무기력하게 만드는지 안다. 한 번쯤은 패배에 대해 내가 가진 태도를 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건 아마 다음 글에서 쓰게 될 것 같다.)
나는 이번 카타르 월드컵 국가대표팀을 여러모로 오래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브라질전을 보면서 유독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경기가 내가 절대 보고 싶지 않았던, 그치만 어쩌면 오랫동안 보고 싶었을 북산의 마지막 경기를 닮아있을 거라고 느꼈다.
선발 명단을 봤을 때부터 마음이 이상했다. 친구들은 선발 명단을 보고 이강인이 선발이 아닌 것을 아쉬워했다. 나도 이강인 경기 자주 챙겨보고 엄청 좋아한다. 그렇지만 이번 선발 명단은 이강인이 빠진 것조차 한 박자 늦게 알아챘을 만큼 탄탄해 보였다. 아마도 그것이 월드컵 4경기만에 처음으로 가동된, 벤투 감독이 월드컵 전에 구상했을 가장 최선의 베스트 일레븐이었기 때문이다(물론 라이트 백과 황의조와 조규성이 경쟁하던 스트라이커 자리는 주전이 확고하지 않았지만, 김문환과 조규성이 부동의 선발로 올라섰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당연히 상황은 좋지 않았다. 뎁스가 약한 팀에게 72시간 만에 하는 경기는 주전들의 부상을 담보로 90분을 걸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미 손흥민, 황희찬, 김민재, 김진수, 이재성 등은 소속팀이었다면 경기를 뛰지 못했을 만한 부상을 달고 뛰어야 했다. 손흥민, 김문환, 김영권, 정우영, 황인범은 조별예선 3경기를 거의 풀타임 소화했다. 게다가 상대는 풀핏의 브라질. 하지만 팀 곳곳이 정상 컨디션이 아닌 상황이든 뭐든 한국의 베스트 일레븐이 이제야 가동되었다. 그 자체로도 내심 감동이었다. 최선의 컨디션이 아니더라도 최선의 선수들로 우리가 준비한 축구를 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보였다. 감독과 선수들 한 명 한 명이 커다래보였다. 그들이 어떤 믿음을 전해주는 느낌이었다. 4년을 준비해온 팀이 마지막이 될 수 있는 하나의 경기를 앞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조별예선에서 모든 걸 쏟아낸 대한민국 대표팀은
전반에만 거짓말처럼 4골을 먹혔다.
골이 들어갈 때마다 마음이 무너졌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한 북산엔딩으로만 전반전을 묘사할 수는 없다. 선수들은 골을 먹히면서도 당황하거나 주눅 들며 라인을 내리지 않았다. 어떻게든 우리가 준비한 축구를 무너뜨리지 않으려 애를 썼다. 이게 우리가 해왔던 거야, 이게 우리 거야, 말하는 것처럼. 그걸 놓치지 않고 지켜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딱 전반 45분이었다. 베스트 일레븐이 뛴 시간은. 후반을 시작하며 벤투 감독은 김진수와 정우영을 교체했다. 김진수는 부상으로 앞선 두 번의 월드컵에 나오지 못했다. 두 번 모두 확고한 주전이었다. 정우영은 구자철과 기성용이 은퇴한 대표팀을 맏형으로서 4년 간 지켜온 선수였다. 들을 이유가 없었던 온갖 욕을 먹으면서도. 그렇게 이번 월드컵 전경기에 출전했던 선수들이 45분 만에 그라운드를 나갈 수밖에 없었다. 김진수는 경기 후 전반 실점 상황에서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고 인터뷰했다. 정우영이라고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재게된 경기를 보며 교체된 김진수와 정우영의 마음을 상상했다.
남은 45분 동안 선수들은 끝까지 우리의 축구를 했다. 브라질의 전방 압박에 최후방 김승규까지 버거워 하는 상황이 생기면서도 해온 대로 패스를 통해 풀어가려고 했다. 자세한 전술적인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하던 축구는 최종예선 때와도, 조별예선 때와도 다르지 않아 보였다. 팀이 전해주던 믿음은 그런 것이다. 우루과이전이 끝났을 때 친구들에게 너무 감동적이고 사랑스러운 경기였다고 말했다. 그 마음이 가나전, 포르투갈전, 브라질전까지 바뀌지 않았다.
<슬램덩크>는 북산이 참패를 당한 마지막 경기를 보여주지 않고 끝냈기 때문에 명작이 될 수 있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북산은 마지막 경기에서도 끝까지 몸을 던졌을 것이다. 그리고 경기가 끝났을 때 많이 울지는 않았을 것이다. 브라질전이 끝나고 한국 선수단 표정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이제 이노우에가 그리지 않은 북산의 마지막 경기를 보고 싶다. 정말로 그 경기를 외면하지 않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북산엔딩의 방점은 '거짓말처럼 참패를 당했다'가 아니라, '모든 걸 쏟아낸 북산'에 찍어야 한다. 4년 간 모든 걸 쏟아냈던 자리에서는 그렇게 패배마저 전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