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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인 Sep 28. 2020

캠퍼밴을 빌리긴 빌렸는데..

* Day 4 / 20200927 일요일

#어쩌지, 도시 분위기가 너무 좋다. @Christchurch


그동안 우리가 소도시에 살았다는 걸 느끼게 해 주는 치치의 분위기. 서울 종로 청계천 가를 떠올리게 하는 치치 시내를 거닐고 있으니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다. 오늘은 아침에 정말 좋았던 숙소에서 퇴실하고 바로 Riccaton Sunday Market에 갔다. 치치의 명소?라고 해서 잔뜩 기대해서 갔지만 어김없이 떠오르는 넬슨의 토요 마켓이 그리워졌다. 우리가 정말 좋은 소도시에서 살았구나. 떠난 지 얼마 안 됐지만 계속 느끼고 감사한다. 다양한 종류의 푸드트럭, 동묘시장과 비슷한 분위기의 구제, 골동품들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제법 정돈된 구조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우린 별로 살 것도, 사고 싶은 것도 없었고 심지어 숙소에서 조식을 포식해서 아무것도 사 먹지도 않고 눈요기만 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앞 건물은 크라이스트처치 도서관, 가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다녀온 후에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시내로 돌아와 가 보고 싶었던 Christchurch Art Gallery를 갔다. 갤러리 건물이 현대식 인 데다가 규모가 컸다. 한국에서도 종종 미술관에 혼자 가서 멍 때리고 보는 걸 좋아하는 나는 너무 기대가 되었다. 우리가 가져온 여행 책에도 이 갤러리를 꼭 가보라고 추천해 주셨기 때문에 더 기대가 되었다. 모든 작품을 천천히 오래 보고 싶었지만 약간 피곤해 보이는 오빠가 안쓰러워 보여 나중에는 설렁설렁 (그래도 끝까지 다) 보고 나왔다. ;-) 아주 오래전에 뉴질랜드로 이민 온 프랑스 여성 작가가 그린 뉴질랜드 남섬을 묘사한 풍부한 색감의 작품들, 그리고 남편과 사별 후 그림의 분위기가 블루톤으로 바뀐 게 인상 깊었다. 작품에 사용된 색만 봐도 그녀의 감정이 얼마나 가라앉고 이전과는 달리 건조해졌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민자로 또 과부로 살아갔을 그녀의 삶이 떠올려져 마음이 아팠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기다려줘서 고마워.


주차비를 아끼려고 시내와 조금 떨어진 뉴월드 마트에 주차를 했는데 가는 길에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후회막심했다. 그래도 우리의 첫 캠퍼밴 생활 저녁을 멋지게 보내고 싶어서 오빠가 좋아하는 양고기 스테이크를 사 가지고 홀리데이 파크로 왔다. 홀리데이 파크는 개인, 가족이 캠프를 즐기며 샤워, 빨래, 음식 등을 할 수 있도록 시설을 제공하는 곳이다. 바로 무료 캠핑장을 가기엔 시간도 늦고 무엇보다 차에서 밤을 보낼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던 우리는 일단 가까운 그곳으로 향했다. ;-) 양고기가 생각보다 질겨서 턱이 아파 올 즈음 바람이 점점 세차 졌다. 캠퍼밴 내부에 잘 준비를 얼른 하고 차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어떻게 잘 준비를 하지? 좁은 공간에 가져온 짐을 테트리스 하듯이 차곡차곡 정리해서 매트를 깔고 이부자리를 만드는 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내가 왜 캠퍼밴을 로망이라고 했었나. 결혼도 로망이 있으면 현실이 있듯이, 캠퍼밴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6 주 간 이 차를 집으로 삼고 살아야 하는데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고, 앞으로는 더 수월해질 것 같은 기대감도 든다. 그래도 늘 내 옆에 있는 신랑이 있어 든든하고 이까짓 고생도 낭만으로 치부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오늘도 고마워, 짝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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