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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인 Oct 02. 2020

로이스픽 대신 록키 산맥(?) 오른 날

* Day  8 / 20201001 목요일  

오빠가 꼭 가 보고 싶었던 Wanaka의 Roys Peak. 한국인 친구 준이 찍은 사진을 보고 인상 깊어서 메모장에도 적어 놓았다. 그런데 적어만 놓고 검색은 해 보지 않았던 우리. 일찍 등산할 준비를 마치고 가는 길에 검색을 하는데 이런.. 10월 1일부터 11월 10일까지 양들이 새끼를 배는 기간이라 등산로 입장을 금지한다고 한다. 이럴 때 하는 한국말이 있죠, 가는 날이 장날. Roys Peak으로 오르는 등산로 중에 사유지도 있고 그 안에서 길러지는 수많은 양들로 인해 피치 못하게 이 기간은 등산객들은 그들의 재미보다 양들과 양 주인을 배려해주어야 한다. 너무 아쉬웠던 짝꿍이 달려간 곳은 와나카 아이사이트. 아이사이트에 가서 하소연을 하며 로이스픽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는 다른 트랙을 추천해 달라고 외치는 그. 얼마나 아쉬웠을꼬. 그렇게 해서 아이사이트 직원이 추천해 준 곳은 Rocky Mountain이었다. 구글맵에 검색했더니 미국에 있는 록키 산이 나와서 깜놀. ㅎㅎ


로이스픽 트랙 앞에 붙어져 있는 안내판

로이스픽을 다시 지나 록키 산으로 갔다.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시무룩하던 그의 모습을 보며 "로이스픽 오르러 또 와야겠네." 한 마디 툭 던졌지만 아예 농담으로 하는 말은 아니었다. 언젠가 뉴질랜드에 또다시 오지 않을까. 말의 힘을 믿으며 미리 선언한다. 다시 올 거다, 뉴질랜드!


남편의 뒷모습. 신남이 느껴진다.


산을 사랑하는 남자의 딸로 태어나 산을 사랑하는 남자의 아내가 된 나. 나보다 먼저 늠름하게 걸어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순간적으로 아빠를 생각한다. 나에게 여전히 표현이 서툰 아빠지만 어렸을 때부터 매일 아침 조깅과 주말 산행을 함께 하며 마음과 몸의 근력을 키울 수 있게 도와준 아빠. 그 시간 덕분에 이 남자를 만나 지금 이 순간 함께 이 길을 걷고 있는 거겠지. 이 것이 등산의 또 다른 매력이다. 평지에 있을 때 쓸데없는 것에 빼앗기는 시간과 온전히 그 순간을 사유할 수 없게끔 방해하는 것들로 혼란스러움을 느낀다면, 산을 오를 때 그것들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것을 경험한다. 잡다한 생각을 정리하고 더 깊은 사유를 할 수 있게끔 산 공기와 새소리, 맑게 흐르는 물, 모든 것이 힘을 모아 도와준다. 남편과 함께 걸으니 괜히 어색한 대화 공간을 좁히려고 단백질 없는 소재를 생각해 낼 필요도 없다. 그냥 편안하게 걷는 이 시간이 좋다.



물론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이루 말할 수 없다. 넋 놓고 바라보고 있으면 그저 이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누릴 수 있게 해 주심에 감사한 마음뿐.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쓰러진 나무에도 움트는 생명의 신비
내려가는 길에 더 아름다워 보이는 풍경


비록 투고 리스트(To-Go List)에 체크는 못했지만 양들의 생태계를 존중하며 다른 대안적 장소를 찾아 간 짝꿍과 나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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