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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인 Oct 03. 2020

내 남편의 별명은 미스터 담기 씨.

* Day 6 / 20200929 화요일

@Akaroa, Canterbury / Banks Peninsula




내 남편은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아니 사실은 이번 여행에 유독 본인이 사진 욕심을 많이 낸다고 그는 고백한다. 왜 그런 것 같냐고 물었더니 다시 이런 시간을 누리기 어려울 것 같아서란다. 맞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직장인으로 일 년에 열다섯 번 연차를 아껴가며 틈틈이 여행을 다닐 수야 있겠지만, 먼 나라 뉴질랜드에서 한 달 반이라는 시간의 긴 휴가는 다시 가지기 어려울 것이다. 아마 오랫동안.   

오늘도 열심히 뉴질랜드와 아내를 담는 담기 씨.


여행하면서 다시금 직면하는 나의 모습은 정말 인정하기 싫지만.. 추운 걸 못 견디고 느긋하며 살짝 게으르다는 것. 뉴질랜드 남섬 북단에 있는 일조량이 풍부한 따듯한 지역에서 10개월을 살다가 남단으로 내려오니 그렇게 추울 수가 없다. 운전 중에 핸들을 꽉 부여잡아야 할 정도의 강한 바람이 자주 분다. 그런데 차 창밖 풍경은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그렇다. 차 안에서만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차 밖으로 나가면 그 눈이 시리게 아름다운 풍경을 내 머리카락이 가려 버리고 무서운 바람이 시리게 몸을 감싼다. 날씨의 방해에도 우리의 담기 씨는 중간중간 차를 세우고 말한다. "여기 너무 좋다. 내려서 사진 찍자."

여보 추워...


'나는 차 안에서 보는 걸로 만족스러운데..' 차마 입 밖으로는 꺼내지 못하고 내린다. 나중에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걸 알기에 남길 수 있을 때 남기는 게 좋다는 건 알지만.. 남편의 여행에 대한 열정에 내가 못 따라가는 것 같아서 곤혹스러울 때도 종종 있다. 눈치가 빠른 남편은 그런 나의 속 마음을 알아채고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나를 행복하게 해 주려고 노력한다. 나도 열정적인 남편을 위해 이번 여행을 통해 귀찮음을 이겨내고 좀 더 부지런해지려고 한다. 차가운 뉴질랜드 바람을 있는 힘껏 안고 즐겨보려고 한다. 뉴질랜드에서 보내는 긴 여행보다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이 순간의 소중함을 잊지 않으며 후회 없이 사랑하려고 한다.

아이스크림으로 아내를 달래는 지혜로운 남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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