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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인 May 11. 2020

한 여름의 연말 풍경

크리스마스 파티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는 것은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상하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데 춥지 않다. 햇살이 더 뜨거워짐과 동시에 사람들의 옷차림도 가벼워지고 있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플랫 주인이 파티를 열자고 한다. 이 곳에서 하나의 문화인 바비큐 파티.

각자 먹을 고기를 가져와서 바비큐 기기로 굽고 같이 나눠 먹는 것이다. 한국 사람 생각으로 하면 파티 주최자인 집주인이 '자, 오늘은 내가 쏜다! 마음껏 맛있게 먹어요, 사랑스러운 내 세입자들.' 할 법도 한데 '본인이 먹을 고기 가져와.'라고 쓰인 문자를 보며 '다르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든다.


플랫은 크리스천, 무슬림, 불교신자, 무신론자가 함께 살고 있다. (지금은 힌두교 인도 함께 산다.)

크리스천인 우린 돼지부터 소, 양, 닭 할 것 없이 잘 먹지만 무슬림인은 돼지를 안 먹고 힌두교인은 소를 안 먹는다. 요리일 벌리기 좋아하는 우리 부부, 아니 신랑은 고기랑 곁들여 먹을 야채 전도 만들었다.  


맛있게 즐긴 후 각자 포장해 온 선물을 한 데 모아 게임을 통해 나눠 갖는다. 신랑은 아프리카인들이 만들어 보내온 냄비 받침과 핸드크림, 나는 집주인 딸이 정성껏 포장해 온 성경책을 받았다. 내심 다이어리를 기대했는데 성경책이었다. 나 영어 성경책 한국에서 가져왔는데...


크리스천인 집주인은 각자 나라에서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냈는지 물어본다. 문득 나의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풍경이 떠오른다. 나는 사실 크리스마스보다 바로 전 날인 이브가 더 좋았다.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는 그 마음. 예수님께 죄송하지만 지금도 그런 것 같다. 이브날 저녁 '새벽송'을 위해 교회에 모여 성도들 가정에 찾아가 캐럴을 부르고, 과자와 귤 등을 받아오곤 했다. 교회에 다시 돌아와 친구들, 언니 오빠들과 밤새 마피아 게임을 하며 받아온 것들을 먹었다. 그 때문에 정작 크리스마스 이른 아침 예배 때는 늘 졸았었더랬지.



크리스마스이브(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어스름하게 해가 질 즈음, 'Carols on the Church Steps' 이벤트에 참여했다. 넬슨의 중심 길목인 Trafalgar Street 맨 위쪽으로 이어지는 대성당 계단 광장에 모여 캐럴을 부르는 이벤트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지역 이벤트를 통해 느낄 수 있는 뉴질랜드의 좋은 문화 중의 하나는 '가족 중심적'이라는 것이다. 어린아이부터 노인들까지 가족들이 모여 지역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보는 것은 마음을 흐뭇하게 한다.


교회 행사도 아니고 지역 이벤트였지만, '왕이 나셨다'(Joy to the world)를 다 같이 부르며 예수님의 생일을 축하하는 기독교 문화가 우리에게는 경이롭고 아름답게 다가왔다. 뉴질랜드의 복음화 비율이 50%라는 세계 복음화 지도를 한국에서 봤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머지 50%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 땅 뉴질랜드를 위해 기도하길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며, 캐럴의 가사처럼 그들에게 왕이 나신 것이 참 행복이고 기쁨이 되길 기도했다.

Carols on the Church Steps


크리스마스(12월 25일)


드디어 크리스마스날!

우리를 만나며 예수님이 누구신지 관심을 가지고 그분을 자신의 삶에 왕으로 모시고 있는 감동적인 일본인 친구 Aiko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받았던 영어 성경책! 성경책이 너무 예쁘고 무엇보다 책갈피 태그 스티커가 너무 귀여워서 내가 소장할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나는 이미 한국에서 영어 성경책을 가지고 왔었다. 남편도.

성경책을 두고 기도할 때 그 친구에게 주시기 위해 먼저 나에게 주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 가장 좋은 것(Good News=예수님)을 아끼지 않고 주는 것. 뉴질랜드에 와서 복음을 받아들인 것이 친구에게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길 소망하며 성경책을 선물했다. 기쁘게 받아주는 모습을 보며 고민했던 흔적이 무색하게 행복했다.

일본인 친구, Aiko.

박싱데이(12월 26일)


“박싱 데이가 뭐야? 포장하는 날?”

어학원에서 신랑반 선생님이 박싱데이를 설명해주었다고 한다. 무슨 날인지 가르쳐 주지 않겠다며 진짜 안 가르쳐주는 남편을 째려보며 구글을 검색하고 있는 나.

박싱데이(Boxing Day) 또는 성 스테파노의 날은 크리스마스 다음 날(12월 26일)을 가리키는 말로, 많은 영연방 국가에서 크리스마스와 함께 휴일로 정하여 성탄 연휴로 하고 있으며, 유럽에서는 영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공유일로 정하고 있다.
박싱 데이는 전통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물과 기부를 하는 날인데, 현대에는 크리스마스 재고 등 연말에 재고를 털어내기 위해 소매상들이 물건 가격을 대폭 할인 판매해 소비자들이 쇼핑하기에 유리한 날로 인식되고 있다. (출처: 위키백과)


이제야 남편이 이 날을 왜 비밀에 부치려고 했는지 알았다. 아기자기 소소한 기념품 가게를 지나치지 못하고 걸을 때마다 상점에 걸려 있는 상품들을 부지런히 탐색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불안해한다. 정작 구매할 때는 꽤 신중한 나인데 왜 그렇게 불안해하는 거지? :-(


남편에게 우리의 재정 상황을 브리핑하며 꼭 필요한 것들을 미리 리스트 화해서 시중가보다 50% 이상 저렴하면 구입하자고 말하며 안정시킨다. 우리의 리스트는 무엇이었을까?


백팩 (이유; 기내에 가지고 타려던 백팩을 무게 때문에 못 가져왔다. 백팩 안에 들은 게 많아서 통째로 거절당했다.)

텐트/침낭/캠핑도구 (이유; 뉴질랜드=트래킹=우리의 로망)  


두 가지밖에 없지만 '캠핑도구'를 명목으로 여러 가지를 구입했다. 이히히. 얼른 이 것들 챙겨서 뉴질랜드에서 트래킹 하고 싶다.

박싱데이날, 너무 신나서 방에 텐트 치고 잔 우리.

이 곳은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아 두 주 동안 나라의 공식적인 연휴다. 2주 연휴, 이 곳에서는 실화다.  

많은 사람들이 일 년 동안 열심히 일하며 저축해 둔 돈을 이 기간에 다 쓴다고 할 만큼 국민들이 가장 고대하는 홀리데이다.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어학원도 2주 간 방학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아무 계획이 없다.


둘 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가장 간절히 바라 왔던 조용한 연말을 우리가 보내게 될 줄이야. 꿈만 같다.

1년 사업 결과보고서를 피드백받고 다시 쓰고를 반복하다가 결재가 떨어지면, 다음 해 사업 계획서를 작성하며 똑같은 과정을 반복했던.. 그러느라 정작 내가 살아온 한 해는 충분히 돌아보지 못하고 다가 올 해를 기대할 여유도 없이 허무하게 맞아 버렸던 1월 1일.


특별했던 우리의 2019년을 함께 돌아보며, 새로운 도전들로 가득 채워질 2020년을 기대하며 우리는 뉴질랜드에서 한 여름의 연말을 아주 잘 보내고 있다.


(제 다이어리에 있는 일기를 옮겨 적고 있습니다. 저희 같은 세계에 살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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