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서 열심히 읽다가, 다단계사업을 만나다
처음에는 불안이 뭔지도 몰랐다. 정확히는 그것이 '불안'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걸 몰랐다. 나는 그저 원래 긴장을 잘하는 소심한 사람이고, 위장절제술 후유증으로 생긴 과민성대장증후군이라는 긴 이름의 질환과 동거하는 불쌍한 환자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단순한 자기 진단이었는지.
정신과 의사는 운동이라는 처방을 주었지만, 나는 이것이 내면의 문제라고 확신했다. 책으로 해결하리라 마음먹었다. 내면을 깊이 파고드는 책이 뭔지 몰랐던 때라, 많이 팔리는 자기계발서를 골랐다. 감기에 걸렸을 때 점성술책을 펼쳐드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해결책이었다고 지금은 안다.
그 책들은 성공과 행복의 정답을 명확하게 제시했다. 목표를 종이에 적고, 미래에 이뤄질 꿈을 이미 이룬 듯 생생하게 상상하라고 했다. 내 심장이 빨리 뛰었다. 가슴이 뛴다는 건 좋은 신호라고 배웠으니까. 설렘, 기대, 뭔가 나도 바뀔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하루 종일 유지되지는 못했다. 오후 세 시쯤이면 다시 불안이 찾아왔고, 저녁이 되면 또 다른 자기계발서를 찾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내가 아직 '진짜' 깨달음을 얻지 못해서라고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고급스러운 마취제였다. 현실이 너무 차가워서 정면승부를 피하고, 아예 다른 세상을 그리는 쪽이 더 안전했다. 새로운 직업, 자유로운 삶, 성공한 나의 모습들. 참으로 매력적인 판타지였다.
그 무렵 회사 일로 만난 한 고객이 나를 집요하게 초대했다.
"좋은 정보가 있는데 관심 있으세요?"
아, 그 질문. 얼마나 완벽한 질문인가. 누가 나쁜 정보에 관심이 있겠는가? 그 말 자체가 이미 답을 유도하고 있었다. 마치 "혹시 행복해지고 싶으세요?"라고 묻는 것과 같았다. 나는 현실에서 벗어날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어느새 그의 끌어당김에 휘말리고 있었다.
자기계발서에서 배웠던 성공 철학을 몸소 실천할 때가 온 것 같았다. 그는 내 고민을 듣지도 않았는데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사실 그는 내 마음을 본 게 아니라 내 얼굴을 본 것이었다. '자기계발서를 믿으며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직장인'이라는 완벽한 표적의 얼굴을.
그러고 나서 벌어진 일들은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나는 설명회에 갔고, 가입서를 썼고, 매주 모임에 참석했다. 마치 뭔가에 이끌리듯이. 사실 이끌린 것도 아니었다. 그냥 너무나도 간절했던 것이다.
그 사업은 내 모든 문제의 해답처럼 보였다. 불안도, 무력감도, 과민성대장증후군도 모두 해결해 줄 만능 치료제 같았다. "곧 회사를 그만두셔도 됩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정말 그렇게 될 줄 알았다. 얼마나 순진했던지.
그 세계에는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매뉴얼이 있었고, 정해진 말투가 있었고, 할 일이 명확했다. '성공'이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는 고개를 약간 들어야 하고, '기회'를 말할 때는 눈빛에 힘을 주어야 한다는 것까지.
그 안에서 나는 누군가가 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불안했던 나 대신 성공을 확신하는 새로운 나로. 물론 그 '새로운 나'가 진짜 나인지는 의문이었지만, 그때는 그런 철학적 고민을 할 여유가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간절했고, 흔들렸고, 그래서 완벽하게 속았다. 불안이라는 어둠 속에서 누군가 빛을 보여주면, 그게 진짜 빛인지 가짜 빛인지 따져볼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일단 달려가고 봤다.
하지만 그 빛은 출구가 아니라 다른 동굴의 입구였다. 그리고 그 동굴에서 나오는 길은, 결국 내가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불안을 피하려고 했던 모든 노력들이 오히려 불안을 더 크게 만들었다. 자기계발서도, 다단계도, 모두 불안에서 도망치려는 시도들이었다. 하지만 불안은 도망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동반자란 걸 알기까지 적어도 나에겐 한참의 세월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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